대한민국 생존기(7) 성적이 곧 기회였던 시절

성적이 문을 열고, 순위가 기회를 나누던 세계

by 도민하

6월 모의고사는 생각보다 쉽게 느껴졌습니다.

답이 척척 보이고 문제 풀이도 깔끔했습니다.

뭔가 이상하리만큼 쉽다고 느꼈습니다.


역시, 저만 쉬운 게 아니었습니다.

다들 쉬웠던 모양입니다.

이전의 점수에서 다들 20점씩,

많게는 30점 이상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때도 운이 좋게 반에서 10등 안짝에 들었는데,

1점 차로 등수가 갈리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학교에서는 점수 인플레이션이 너무 심하다며

6월 모의고사의 성적은 반영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열람실 자리는 언급했던대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점수를 반영하여

성적순으로 배치하겠다고 했습니다.


A 열람실에 갈 수 있는 황금티켓이

손 닿으면 붙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때의 기말고사는 정말 중요했습니다.


전교 200등 언저리였던 배치고사 성적에서

전교 20등 수준으로 중간고사 성적을 올렸던 경험을 믿고

기말고사도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에

문제 하나 더 풀고, 단어 하나 더 외웠습니다.




기말고사를 무사히 마쳤고

열람실 자리 배치표를 보았습니다.


B 열람실에서 찾아보았는데,

아무리 봐도 제 이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 그럼 A 열람실에 제 이름이

적혀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설렘이 느껴졌습니다.


A 열람실 자리 배치표를 보는 순간

짜릿함과 기쁨이 온 몸을 감쌌습니다.

차마 다가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A 열람실에

제가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1학기 성적 우수상을 탔습니다.

3개월 전의 저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죠.

이 모든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했고,

가족들도 아주 기뻐해주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제 성적 우수상 상장을 보시고

코팅해놓으셨습니다.

코팅된 상장을 보면 지금도 그때 생각이 납니다.




다행히 한번 올라간 성적은

크게 곤두박질 치지 않았습니다.


더 올라갔으면 좋았겠지만

비슷비슷하게 유지되었습니다.

심하게 내려가지 않았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겠죠.


그래서 그 당시 학교에서

수시 전형을 준비하기 위한

여러가지 비교과 프로그램에

다행히도 모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 학교는 모든 것이 성적 우선이었습니다.


그 학교에 다니는 대다수의 학생이

수시 전형을 케어받을 수 있는

비교과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를 원하지만,

그 기회는 높은 성적을 유지하는 학생들에게만

돌아갈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입학하는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입학한 뒤 그 세계에서 살아남는게 중요했습니다.


다들 그 속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지냈지만

혼자만의 시간 동안에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하염없이 서글프고 우울하기도 했을 겁니다.

저도 그랬고요.


다행히 저는 운이 좋게도 그 속에서 살아남았지만,

못다핀 꽃이 된 아이도 있었고,

다른 곳을 찾아 떠난 아이도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일을 보면서

한국 사회가 구조적으로

패배의식을 양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속에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게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고등학교 시절이

다시 돌아가고 싶을 만큼 행복한 순간이라지만,

저에게는 다시는 되돌아가기 싫은 시절입니다.




그렇게 잔인한 고등학교 시절도

어느새 끝을 향해 갔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8월,

수시 원서 모집 기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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