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쫀쿠 한 입에서 시작된, 나를 허락하는 연습
요 몇 주간 ‘두바이 쫀득 쿠키’,
이른바 두쫀쿠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유행에 늘 한 박자 늦는 저는,
예전에 두바이 초콜릿을 먹었다가
너무 달아서 혼이 난 기억이 있어서
괜히 건강 걱정도 되고, 애써 관심을 두지 않으려 했어요.
그런데 뉴스에까지 ‘두쫀쿠 대란’이 나오고,
새벽 6시부터 오픈런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얼마나 맛있길래 저럴까?'
순수한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배달 어플을 샅샅이 뒤지며
몇 번의 실패 끝에 어렵사리 두쫀쿠를 구했습니다.
혼자만 먹기엔 괜히 미안해서
약국 직원분것과 가족들 것까지 함께요.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카다이프의 바삭한 식감이 먼저 느껴졌습니다.
왜 ‘쿠키’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그제야 이해가 됐어요.
생각보다 많이 달지 않았고,
고소하고 담백해서 오히려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맛 그 자체보다도,
나를 위해 내가 준비한 작은 선물이라는 사실이었어요.
사실 저는 저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데 꽤 인색한 편이었습니다.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사고 싶은 게 있어도
대부분은 애써 무시하고 지나쳤거든요.
나에게 쓰는 돈이 늘 아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마음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내가 나를 먹여 살리려고 이렇게 애를 쓰고 있는데,
나에게도 이 정도의 대접은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졌어요.
그때부터 허용 가능한 선에서
나를 위한 작은 선물을 하나둘 허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두쫀쿠도 저에게는 그런 선물 중 하나였어요.
예전의 나라면 분명히 사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더 이상
나를 늘 뒤로 미루고 싶지 않았고,
두쫀쿠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아, 이 선택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하루는 비슷비슷해서
어느 순간부터는
버텨내는 시간처럼 느껴질 때도 많습니다.
무채색 흑백사진 같은 일상 말이에요.
그런데 그 일상에 색을 더해주는 건
큰돈이나 대단한 성취가 아니라,
두쫀쿠처럼
조금 달고, 조금 바삭한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더군요.
그동안 저는
소소한 행복보다는 큰 결과를 더 중요하게 여기며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애쓰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운이 좋으면 좋은 결과는 남겠지만,
그건 인생 전체로 보면 정말 잠깐의 순간이라는 걸요.
참는 삶보다,
허락하는 삶이
조금은 더 따뜻하고,
조금은 더 오래 행복하다는 걸
두쫀쿠 한 입이 가르쳐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