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의 여운

누군가의 고생을 알아주는 사람들

by 도민하

약국에서는 정말 다양한 처방전을 만납니다.

가장 흔한 건 일주일치 감기약이나 위장약입니다.

포수도 많지 않고 들어가는 약도 단순해서

조제하는 데 큰 부담은 없습니다.


그런데 가끔 대학병원 처방전을 받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120일, 180일치 처방전은

포수가 많아 전자동기계의 도움을 받아도

시간이 제법 걸립니다.


또 어떤 처방전은 기간은 길지 않아도

한 포에 열두 알, 열세 알씩 들어가

하나하나 검수하다 보면

몸보다 먼저 마음이 먼저 지치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런 일들이

유난히 ‘고생스럽다’고 느껴진 적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가 하는 일이었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으니까요.




며칠 전, 단골 손님 한 분이

120일치 처방전을 맡기고

조금 이따 다시 오겠다고 하셨습니다.

처방은 단촐했습니다.

한 포에 네 알,

그중 하나는 반 알이라 자르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렸을 뿐이었지요.


조제를 마치고 잠깐 숨을 고르고 있는데

그분이 다시 약국 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아, 오셨군요. 조제 다 됐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약사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날따라 유난히 힘들었나 봅니다.

그 한마디가

이상하리만치 마음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손이 가는지,

얼마나 신경을 써야 하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기꺼이 그 수고를 떠올려주신 마음이

참 고맙고, 또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누군가의 고생을 알아주는 말 한마디가

이렇게 오래 남을 줄은

그날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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