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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Nov 12. 2021

중세 기사도의 이면과 진실의 상대성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리뷰

1. 개요

기사가 사라진 현대까지도 우리는 이상적인 남자를 기사에 빗대어서 표현하곤 합니다. 이는 백마탄 기사가 나타나 공주를 구한다는 전형적인 이야기에서 비롯된 표현이죠. 이처럼 중세 기사는 우리에게 있어 고결하고 성스러운 이미지의 소유자입니다. 명예와 기사도 정신을 숭배하고,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거는 존재들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이 영화는 한가지 메시지를 전달해줍니다.


현대인의 시점으로 본 중세 기사의 현실은 낭만과 이상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오늘 소개할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의 장점1. 플롯 2. 메시지 3. 캐릭터성이라고 할 수 있고, 아쉬운 점 1. 진실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 2. 시간감각을 꼽겠습니다.


 2-1. 장점-플롯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이하 라스트 듀얼)는 3막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설정-대립-해결이라는 전형적인 형태의 3막이라기보다는 덩케르크와 유사한 3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덩케르크>가 비슷한 시간대에 존재하는 세 인물의 시점으로 극이 전개되는 형태이듯이 <라스트 듀얼>도 이와 비슷합니다. 다만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같은 사건에 대한 서로 엇갈리는 묘사관점 차이가 주요 포인트라는 점이지요. 그렇기에 이런 묘사는 관객으로 하여금 법정에서의 삼자대면을 보고 있는 판사처럼 느끼도록 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결투 재판을 주제로 만든 영화에서 차용하기에 더할 나위없이 멋진 플롯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중심 사건을 포함한 다양한 사건들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을 드러낸 등장인물들의 묘사를 기반으로 극을 전개시킵니다. 이러한 플롯은 관객들로 하여금 "우리가 생각하는 진실이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함과 동시에 누구의 서술이 가장 진실에 근접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극의 몰입감을 한층 더해주는 좋은 플롯이죠.



2-2.장점-메시지

이 영화는 진실이라는 것, 엄밀히 따지면 진실이라고 우리가 믿는 것은 상대적인 것임을 관객에게 상기시켜줍니다. 

 장은 본인은 용맹스러우며 유능한 지휘관이고, 전투 도중 본인이 자크의 목숨을 구했기에 자크가 그에게 목숨을 빚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크의 시점에서 본 해당 전투는 오히려 장이 도발에 넘어간 안일한 판단의 소유자이며, 오히려 자크가 장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서로는 서로가 상대방을 구했다고 믿는 것이지요. 이는 자크가 마르그리트를 덮치는 장면에서도 나옵니다. 자크의 관점에서 본 해당 사건은 앞서 피에르의 저택에서 다른 여성들과 관계를 맺을 때에도 사용한 방식과 유사하게 상황이 전개되었으며, 그녀의 저항도 의례적인 수준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마르그리트의 관점에서 본 사건은 다르죠. 자크가 강제로 힘을 써서 침실로 들어왔으며 전력으로 도망치는 마르그리트를 잡아 그녀의 비명과 울음, 저항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겁탈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처럼 관점과 기억의 차이가 있기에 자크는 최후의 순간까지 강간하지 않았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야합니다. "과연 자크는 거짓말을 한 것인가?" 작중 묘사로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더 가깝습니다. 객관적 관점에서 거짓을 말했으나 개인적 관점에서는 진실을 주장하는 아이러니함이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는 거짓말 탐지기가 법정에서 증거로써 효력이 없는 이유를 증명하기도 합니다. 자크의 입장에서 그가 자신이 실제로 강간을 하지 않았으며, 그녀의 반항과 저항은 의례적인 수준이었다고 믿는다면 거짓말 탐지기에서는 그 말이 진실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가 강간을 하지 않았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과 진실의 괴리는 언제나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이 진실이라고 함부로 확답을 내려서는 안됩니다. 그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우리의 조작된 기억과 사상, 관점에 의해 영향을 받아 완성된 왜곡된 것일 수 있기 때문이죠.


2-3. 장점-캐릭터

 이 영화에서 장은 중세 기사의 명예의 덧없음을 말합니다. 그는 파산하여 용병 생활을 하며 근근히 생활을 이어가는 스콰이어(지주)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를 가지고 있지만 배신자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가문의 미인 마르그리트와 결혼을 하면서 막대한 양의 토지를 결혼 대가로 받아내죠. 그러면서 자신의 장인어른에게 자신의 명예로운 이름을 주겠다고 합니다. 결혼 한 이후에도 체통과 안전을 명목으로 마르그리트를 영지내에 가두어놓고, 관능적인 차림으로 장을 반기는 마르그리트에게 매춘부처럼 보이지 않게 조심하라는 폭언을 하면서 다시 한 번 명예를 운운합니다. 또한 자크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말하며 남자를 두려워하고 있는 그녀에게 당신을 마지막으로 품은 사람이 그 자식이게 둘 수 없다며 그녀와 잠자리를 가지기도 합니다. 또한 아내의 목숨까지 걸고 진행한 결투 재판이 끝난 이후에도 아내의 목숨을 지키고, 무죄를 입증한 것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명예를 지켰다는 사실에 취해 아내의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명예롭고 숭고한 기사들의 모습이 허울뿐이며 미화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반면 자크는 중세 기사의 로맨스의 이면을 다룹니다. 자크는 여러모로 장과는 대비되는 인물입니다. 그는 능력은 출중하나, 가문의 이름 즉 명예가 없던 지주인데요. 그런 그는 라틴어를 읽을 줄 알기에 책을 좋아한다는 마르그리트에게 사랑에 대한 남성의 왜곡된 환상으로 쓰여진 책 "장미 이야기"를 읽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마르그리트는 자신은 순박하지만 명예를 좇는 신실한 주인공이 좋았다며 자신은 "퍼시벌의 호의"가 좋았다고 말합니다. 여성 편력이 화려하고 가식적인 자크보다 다소 우둔해보여도 장이 좋다는 암시를 표현한 것이었지만 자크에게 그 메시지는 닿지 않았습니다. 호의로 베푼 미소에 눈이 멀어 그녀의 집에 찾아가고 그녀를 겁탈하죠. 기사가 귀족 부인의 집에 찾아가자 그녀가 약간의 거절을 하다 침실로 인도하고 침실에서 사랑을 맺는다는 전형적인 중세 로맨스에 취해 그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합니다. 그는 로맨스를 중시 여기는 듯 보이지만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는 오만한 인물입니다. 즉, 그는 중세 기사의 왜곡된 로맨스를 상징합니다.


 마르그리트는 중세 사회의 여성 혐오에 대해 다룹니다. 마르그리트는 극 중 강간을 당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그녀를 보는 시각은 전혀 위로의 말은 커녕 2차 피해를 상상도 못할 정도로 쏟아냅니다. 가장 친했던 친구가 그녀의 말을 고의적으로 잘라내어 그녀가 자크를 마음에 들어했다는 주장을 하고, 절정에 이르지 못하면 임신할 수 없는데 당신은 왜 임신을 한 것이냐며 심문관이 묻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족인 시어머니가 강간을 당한 마르그리트에게 그녀가 사실을 밝히며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비난합니다. 또한 결혼을 한 배우자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영지에 있는 유서깊은 전투마 가문의 씨암말(백마=작중 장과 마르그리트를 상징)과 같은 취급을 받습니다. 갑자기 난입한 흑마(작중 자크를 상징)가 교미를 시도하자 장은 그를 떨어뜨려 놓기 위해 매질을 하다가 암말을 다치게 하였고, 건강을 해치더라도 안전을 위해 마구간을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또한 그는 강간을 당했다고 밝힌 마르그리트의 목을 졸랐습니다. 그녀는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목숨이 걸린 일에 본인의 의사를 표명하지 못한 불쌍한 인물입니다. 이처럼 마르그리트는 중세 유럽에서 여성을 다루는 시각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3-1. 단점-진실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

 이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 영화는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3막에서 반감시키는 선택을 하고맙니다. 3막의 시작에서 영화는 "진실"이라는 글자를 의도적으로 남깁니다. 이는 3막 즉, 마르그리트의 시점이 진실이라고 영화가 밝히는 것인데,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마르그리트의 입장과 그녀의 주장을 보는 것일 뿐, 그것이 진실이라고 확언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앞선 두 관점을 거짓으로 치부하고 마르그리트의 관점을 진실이라고 세우는 것은 다소 아쉬웠습니다. 그 몇 초 안되는 장면만 삭제했더라면 저는 개인적으로 더 만족했을 것 같습니다.


<라스트듀얼>은 여러모로 <라쇼몽>을 연상시킨다

 <라스트 듀얼>과 구조가 비슷한 고전 영화 <라쇼몽(1950)>의 경우에는 비슷하게 하나의 사건을 다루는 여러 인물들의 견해를 다루되, 사건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인물인 나무꾼의 시점을 추가하여, 사건의 진실을 드러냅니다. 나무꾼의 시점이 진실이라고는 말할 수 없더라도, 왜곡될 확률이 가장 적은 시점이라는 점을 부인할수는 없습니다.


 이에 비하면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마르그리트의 시점을 진실로 표현한 것은 다소 아쉬운 점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저는 진실이라는 문구만 없었다면, 이 영화의 구조를 <라쇼몽(1950)>의 구조보다 더 높이 평가했을 것입니다. "인물들이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다가 누군가는 죽었다. 그렇지만 살아남은 이의 주장이 과연 진실이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잔혹한 질문을 영화의 엔딩까지도 던지는 셈이 될테니까요.



3-2. 단점-시간감각

굉장히 사소한 단점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거라도 잡아야겠습니다. 이는 이 영화가 너무 흠 잡을 요소가 없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화면의 색감이 전반적으로 시간 흐름에 관계없이 유사합니다. 첫 장면에서 전투를 할 때나 결투를 할 때나 전부 냉랭하고 쓸쓸한 느낌의 푸른 빛이 감도는 화면의 색감을 지닌 것이 이 영화의 특징인데요. 이는 결투의 배경이 되는 겨울과 현실의 냉혹함을 드러내는 구성으로서는 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 전환이 꽤나 다양하게 이뤄지는 극의 특성상 시간의 흐름이 직접적으로 체감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계절하면 떠올리는 색감들이 존재하는데, 화면은 항상 겨울에 어울리는 색감이 유지됩니다. 대표적으로 결투를 앞둔 순간에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장면이 있는데 화면의 색감은 이전과 그대로 유지되니, 시간의 흐름이 제대로 와닿지 않았습니다.


4. 마무리

라스트 듀얼은 중세 유럽의 민낯을 보여주는 좋은 시대극이자, 독특한 3막 구조로 관객이 재판관이 된 듯한 느낌을 주는 좋은 영화입니다. 또한 우리가 진실의 상대성중세 기사도의 현실을 마주하게 하는 멋진 작품이기도 했죠. 허나 약간의 단점이 존재하고 너무나 적나라한 장면들이 등장한다호불호 요소도 충분히 존재하는 영화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본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2021년에 극장에서 접한 영화 중 손에 꼽을만큼 좋은 영화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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