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라는 개념은 정말이지 애매모호합니다. 지금 제가 글을 쓰고 있고, 여러분이 글을 읽으시는 이 순간을 현재라고도 할 수 있지만, 지금 이 문장을 읽는 순간을 기준으로 첫 문장을 읽던 시점은 과거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현재라는 개념 자체가 굉장히 짧고 찰나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현재를 살라는 말보다는 현실을 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고 <카우보이 비밥> 리뷰에서 말했었습니다. 현재라는 시간에 집착하기보다는 자신이 중시여기는 것을 가슴속에 품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화 <화양연화>는 이러한 관점에서 금단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명작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특징은 인물들의 성질적 특징(도덕주의적, 감상, 연민적)과, 화면 구도, 찰나의 감정을 통한 삶의 동력 회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인물의 성질적 특징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굉장히 독특합니다. 연민을 기반으로 맺어진 관계이자, 공감으로 강화된 관계이면서 금기를 넘는 사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굉장히 도덕을 중시하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주인공은 각자의 남편과 아내가 불륜으로 이어져있다는 것을 기반으로 이어져있습니다. 서로 그것을 눈치챈 이후 자기에 대한, 혹은 그 사람에 대한 약간의 연민을 바탕으로 관계가 진전됩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약간의 공감과 호감도 포함되어있죠.
둘은 점차 서로에 대한 호감이 커져갑니다. 불륜의 아픔을 달래고자 이어진 관계가 또 하나의 불륜으로 연결된 것이죠. 하지만 그들은 굉장히 도덕을 중시여기기에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라는 생각을 항상 품고 있습니다. 이를 조금 더 보여주는 인물이 양조위입니다. 그는 도박과 매춘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와 친구로 지내기는하지만 그와는 다른 인물임을 강조하는 등 그는 도덕을 중시여깁니다.
이는 불륜을 하는 인물이 도덕을 중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허나 상황적 맥락이나 육체적 관계의 부재로 그들의 관계를 마냥 부정적으로 볼수는 없습니다.
2. 화면 구도
이 영화에서의 화면은 상당히 독특합니다. 실내 야외할것 없이 굉장히 답답하고 밀실의 느낌이 나도록 촬영되었습니다. 화면의 구석구석 혹은 가장자리에도 장애물들을 배치하여 답답함을 유발합니다.
이는 홍콩의 특성이나 그들이 사는 집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홍콩은 다들 알다시피 인구밀도가 상당히 높은 곳입니다. 한정된 공간에 많은 인구가 몰려 다양한 문제가 생기는 곳인만큼 이 영화에서의 답답한 화면 구성은 홍콩의 지역적 특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구성은 그들이 사는 집과도 연관이 있는데요. 한 집에서 특정한 방을 세로 주는듯한 그들의 집은 좁은 곳에 모여사는 가족같은 분위기도 들지만 어떻게해도 부딪히고 마주칠수밖에 없으며, 의도치않게 서로를 감시하게되는 구조입니다. 이러한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두 주인공은 만날 수 있었지만 같은 이유로 인해 헤어져야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상당히 멋진 화면 구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찰나의 감정을 통한 삶의 동력 회복
이 영화는 1962년 홍콩에서 시작하여 1966년 캄보디아에서 끝나게 됩니다. 극의 비중과 상관없이 영화는 약 4년간의 시간을 다루고 있는 것이죠. 허나 두 주인공이 만나서 교감을 하고 사랑을 나눈 시기는 길어야 1년입니다. 상당히 짧게 느껴지죠.
허나 그 시간들이 단순한 과거의 것, 그 이상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둘의 만남 이후 한 명은 원래 좋아하던 일인 무협 소설 작가가 되는 일을 통해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었으며, 다른 한 명은 결국 남편과 헤어지고 자식과 함께 활짝 웃으면서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극의 전반에서 격정적으로 감정을 나타낸 경우가 후반을 제외하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흥미로운 요소입니다.
결론적으로 둘은 짧은 만남과 찰나의 추억으로 이루어진 관계지만, 둘이 서로의 삶에 미친 영향은 큽니다. 삶의 행복을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고, 감정을 드러내며 살 수 있어졌습니다. 그렇기에 양조위는 이 추억을 앙코르와트에 봉인합니다. 시간은 불가역적이기에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 찰나였지만 인생 가장 중요했고 아름다웠던 순간은 봉인을 통해 영원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양조위는 찰나의 화양연화을 영겁의 것으로 만들어냅니다.
영화 <화양연화>는 왕가위 감독의 대표작이자,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영화입니다. 대표적으로 <문라이트>가 그 예시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화양연화의 아성을 넘는 유사 장르의 영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본 후의 찰나의 감상을 기록을 통해 보존시키는 제 입장에서는 꽤나 의미가 깊은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