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발전하고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우리는 더욱 나은 존재가 되고 있으며, 많은 정보를 접함에 따라 우리의 지식과 완전성은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진다고 우리는 착각합니다. 하지만 많아진 정보와 소식들로 인해 우리는 점차 황색선전의 선동에 시달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그런 것에 속지 않는다라고 당당하게 말하기에는 수많은 이들이 거짓 기사와 선동으로 수많은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상황이 낯설지 않게 된 상황에서 이 영화는 소규모 공동체의 모습을 통해 무비판적 수용과 선동이 인간 관계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1. 무비판적 수용의 문제점
영화 <더 헌트>는 주인공 루카스와 어린 여자아이 클라라 사이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친구들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던 인물 루카스는 자신에게 과도한 애정을 표현하는 아이 클라라에게 선을 긋는 행동을 합니다. 그러자 토라진 클라라는 자신이 루카스의 발기된 성기를 보았다는 거짓말을 유치원 원장에게 말하고 이 소문은 마을 전체에 퍼지며 루카스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에 놓입니다.
해당 상황이 이상한 요소가 상당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주민들은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원장의 발언하에 루카스를 성범죄자로 몰아갑니다. 성추행을 당했다는 아이들이 묘사한 루카스의 집과 실제 집의 모습이 공통점이 거의 없다는 점과, 루카스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말한 클라라가 자발적으로 루카스의 강아지와 산책하고 싶다며 루카스의 집을 찾아왔음에도 그들은 믿고 싶은 말만을 믿습니다.
심지어 경찰도 아무 증거를 찾지 못하고, 무죄를 판결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향한 주민들의 시선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평범하게 장을 보려는 그에게 욕하고 폭력을 행하고, 그의 창문에 돌을 던지는 등 더 심해졌다고 봐도 무방하죠. 상황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 루카스의 친구이자 클라라의 아빠인 테오는 사건을 바로 잡으려 하지만 그의 아내가 그를 막는 등, 사람들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의 마녀사냥은 익명성의 그늘아래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현재 사회에서의 황색언론과 악플을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보를 할 경우 반드시 정정기사를 기재하던 과거의 언론과 달리 현재는 오보 정정과 사과를 하는 기사를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그 기사와 악플로 인해 상처입은 사람들을 위한 그 어떠한 보상과 사과도 없이 다음 먹잇감을 찾고만 있죠. 눈물겨운 사투를 통해 무죄를 입증해낸다해도 그들을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과 낙인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모든 오해를 풀고 난 이후에도 총격을 당할뻔한 루카스처럼 말입니다.
2. 인간관계의 독성
외부의 적을 마주한 국가는 위기를 견딜 수 있지만 내부에서 분열한 국가는 멸망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서로에 대해 잘 알던 관계에 있던 인물은 서로의 약점조차 잘 알고 있기에 재기할 수 없도록 철저히 짓밟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보통의 친구보다 연인 관계에서 더 험하게 자주 싸우는 것이라고 저는 여깁니다.
이 영화의 루카스가 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자신이 유치원에서 일하는 것과 아이들과의 관계가 좋다는 것과 같이 루카스에 관한 거의 모든 특성을 알고 있는 이웃 주민들이 그에게 적대적 마음을 품자 그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고, 어떤 곳에서도 안정을 취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인간관계에서의 깊은 유대감은 상황이 잘못될 경우 가장 무서운 형태로, 엄청난 파괴력을 동반하여 찾아온다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무비판적으로 정보를 수용하는 종래의 습관과 그로 인한 선동,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악습과 폐단이 한 개인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 지에 관한 이야기 <더 헌트>였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루카스의 결백이 밝혀지길 바라면서도 내가 저 마을의 주민이었을 때 나는 그들과 다를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생각이 드는 명작으로 꼭 한 번 보시는 것을 추천드리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