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좋은 친구들>, <카지노>,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디파티드> 등등 해당 감독님의 웬만한 영화를 다 재밌게 본 사람이고 가장 최근에 나온 <아이리시맨>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한 단 한 개의 상을 받지도 못한 것을 <아이리시맨>이 넷플릭스 영화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저에게 <아이리시맨> 이전 가장 스콜세지 다운 영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이 <갱스 오브 뉴욕>을 꼽을 정도로 이 영화는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피로 물든 대지와 모순이라는 비료를 통해 일궈내진 미국이라는 제국에 대한 영화를 보여주는 명작이죠. <갱스 오브 뉴욕> 리뷰 시작하겠습니다.
이 영화의 특징은 미국이 세워지기 위해 바스러져간 이민자들의 역사,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연기한 빌의 상징성, 이민자들의 현실입니다.
1. 이민자들의 역사
이 세상에 완벽한 지도자란 없습니다.우리 역사 상에 손꼽는 성군인 세종도 백성들의 강제 이주 정책이라는 패착을 둔 적 있고 가장 깔끔한 미국 대통령으로 여겨지는 존 F 케네디 또한 피그만 침공이라는 엄청난 실책을 저질렀습니다. 이처럼 현재 좋게 평가되는 모든 기업, 국가, 인물은 모두 그 성공을 이루기 까지의 실책들이 존재합니다. 현재 지구상의 가장 강력한 나라로 꼽히는 미국 또한 지금의 자리를 얻고 명성을 얻기까지 흘린 피와 저지른 실책이 많다는 것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주장합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탈신화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신격화되거나 우상으로 여겨지는 여러 대상들이 그 자리에 있기 위해 저지른 다양한 일들을 주제로 영화를 많이 만들죠. 돈이 최우선시되는 현 사회의 폐단을 보여주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나 미국인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시기를 마피아들의 시점에서 풀어낸 아이리시맨 같은 영화처럼 말이죠. 이 영화에서도 이런 법칙은 이어져 내려옵니다. 정치적 희생양이 죽는 사형식 장면 직후 성가대가 나오는 장면은 성스러움과 속세를 번갈아가며 보여주는 등의 장치를 통해서 말이죠.
이 영화의 초반부를 보면 암스테르담의 아버지가 암스테르담에게 자신의 피가 묻은 면도칼을 쥐어주며 칼에 피가 말라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이는 폭력의 연쇄가 끊임없이 일어나며 만들어진 국가가 바로 미국이며 이 폭력의 굴레로부터 우리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점을 효과적으로 말해주는 장면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연기한 빌의 패거리는 자신을 미국의 네이티브라고 주장하고 뒤이어 이민 온 아일랜드계 청교도인들을 무시하지만 정작 본인들도 미국에 이민온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미국의 원주민들은 빌과 그 일당이 아닙니다. 다양한 부족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존재했고 그들 중 모히칸족의 대표인 테머넌드는 프랑스인들에게 학살당해 죽었지만 영화내에서 시청에 동상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민을 통해서 온 자들이 폭력을 통해서 몰아낸 존재를 숭배하지만 정작 다시 이민 온 대상들에게는 무시와 핍박을 가하는 아이러니함이 바로 미국의 현실인 것이죠. 이러한 점은 아일랜드 출신의 이민자들을 대하는 빌의 대사에서 더욱 더 부각됩니다. 빌은 이민자들을 보며 자신의 조상은 미국을 위해 목숨바쳐 전쟁에 나선 사람들이며 저들은 그런 희생으로 이루어진 땅에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해 온 것이라며 매도합니다. 하지만 그 직후 이 감독이 보여준 씬은 이야기가 조금 다릅니다. 아일랜드 이민자들은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시민권을 얻어 가족들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 남북전쟁에 참전합니다. 테네시 지방이 어느 곳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말이죠.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은 과연 미국이라는 국가를 위해서 싸운 것일까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니라고 말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묻죠. 빌의 조상들은 과연 미국을 위해서 싸운 것일까요? 빌은 그렇다고 믿고 싶지만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우리와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영문도 모른채 전장에 끌려갑니다. 가족들을 지키겠다는 일념하나로 말이죠. 자유 평등과 같은 대의보다는 자신의 안위가 더 우선입니다. 그것은 아일랜드계 이민자도, 이전에 온 이민자들도 다르지 않은 것이지요. 영화의 결말부에서 빌은 결국 마지막에 진정한 미국인으로 죽어서 다행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빌 또한 이민자이며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징집 거부에 의한 과잉 진압에서 비롯되었다는 점도 아이러니한 부분이죠.
2. 빌의 캐릭터와 상징성
이 영화의 주인공은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암스테르담이지만,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연기한 빌입니다. 빌은 우스갯소리로 자신이 뉴욕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진지하게 받아들일 가치가 있습니다. 그는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을 죽였고 그런 폭력을 통해 뉴욕의 권력과 부를 손에 넣었습니다. 뉴욕은 빌처럼 이민자들의 피와 폭력이 밑바탕에 깔려있는 도시입니다. 사실 미국 전체가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이 영화에는 불법 격투와 도박 장면이 나오게 됩니다. 이런 것은 엄연한 불법이며 당시에도 공권력에 의해 제재받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법을 교묘하게 속여 부둣가에서 불법 격투를 이어나가죠. 이런 점은 미국이 현재의 강대한 제국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고, 이민자들이 처음 미국 땅을 밟는 부두 연안에서 이런 폭력 행위를 이어나간다는 점을 통해 미국은 처음부터 폭력으로 쌓아 올려진 나라라는 점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3. 이민자와 하층민들의 현실
이 영화를 보다보면 암살 시도에서 겨우 살아남은 빌이 바로 술을 마시며 여자를 끼고 향락에 빠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장면을 보며 켄드릭 라마의 DNA라는 노래가 생각났는데요. 해당 노래에서는 sex money murder our dna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섹스와 돈 살인은 흑인들을 있게 만든 것들(DNA)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흑인들을 죽게만든다(Dead Nxxxa Association)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 빈민층의 삶을 담고 있는 노래로 과거의 이민자들의 삶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살인과 돈은 예로부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살인을 비롯한 폭력을 통해 부를 쌓아나가기도 하지만 그것을 통해 결국 자신이 파멸하는 결과를 맞이합니다. 이러한 성질은 몇십년 아니 몇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일이고 이 감독이 영화를 만들며 비판하고자 했던 점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엔딩에서는 당시의 참상을 보여주는 묘비들이 잔뜩 서있는 공동묘지를 보여준 후 그 무덤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동안 그에 대비하여 점점 올라가는 빌딩들이 나타납니다. 이 점을 통해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미국의 건국 과정과 그 흑역사를 잊은 채 살아간다는 경각심을 감독은 일깨워줍니다.
저에게 이 영화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영화입니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 영화는 아닙니다. 약간 우연에 의존한 전개가 있기도 했고 사랑때문에 우정을 배신하는 캐릭터 또한 지금 보기에는 너무 낡은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명작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죠.
미국이라는 신화의 뒤에 가려진 뉴욕 징병 거부 운동이라는 흑역사를 다룬 야사이자 탈신화화 영화 갱스 오브 뉴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