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 리뷰
지난 몇주간 저는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어느것도 하기 싫었고, 글도 제대로 쓰지 않았으며,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는 것 역시도 하지 않은채 1차원적인 쾌락과 삶을 원동력 삼아 움직였습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무기력증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좋은 것을 보고, 좋은 말을 들으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제가 무기력증에서 벗어나게끔 도움을 준 영화가 바로 오늘 다룰 <헤어질 결심>입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주요 특징은 언어와 시간의 어긋남, 식욕과 수면욕, 완전과 미결의 대조입니다.
저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오해하고 상처받는 안타까운 존재라고 여깁니다. 그런 인간이 본질적 불완전함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이 대화, 언어, 문자라고 생각하는 입장이고요. 우리는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 생각, 느낌과 같은 요소를 비교적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언어 혹은 문자를 통한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의 송서래와 장해준은 서로의 마음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습니다.
극중 탕웨이가 연기한 송서래는 중국인입니다. 한국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간을 살았기에 기본적인 언어 표현을 통한 대화는 문제가 없는 편이지만, 현실의 언어라기 보다는 드라마에서 등장할 법한 언어들을 자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며, 복잡한 말은 한국어로 구사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반대로 박해일이 연기한 장해준은 뼛속부터 한국인입니다. 중국어에 능통하다는 묘사 혹은 중국어를 배운 적 있다는 묘사는 없으나, 송서래를 만난 이후 기본적인 중국어 회화를 배우려는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송서래와 장해준 모두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자 합니다. 자신의 언어로는 상대방에게 온전한 진심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상대방에게 접근하기 위해, 상대방을 더 이해하기 위해, 상대방을 더 사랑하기 위해 서로의 언어를 배웁니다. 허나 송서래는 복잡한 진심을 한국어로 표현할 수 없고 장해주는 간단한 말 이외에는 중국어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이용하는 것이 바로 휴대폰 번역기입니다.
휴대폰 번역기의 특성상 그들의 언어는 비교적 서로에게 잘 전달됩니다. 하지만 이 방법이 온전하지는 않죠. 한 언어로 번역기에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타언어로 번역한 후, 음성으로 내보내는 번역기의 특성상 의미가 호도될 수 있고, 대화의 시간 자체가 길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극중 송서래와 장해준의 대화를 보면 약간은 겉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서로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 말하면서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느낌이 적은 씬들이 존재하죠. 서로가 서로의 진심을 파악하기는 했지만, 극중 송서래가 말했듯이 장해준의 사랑이 끝날 때 송서래의 사랑은 시작된 것처럼 그들의 시간은 다소 엇갈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엇갈린 시간은 엔딩에 이르러서 다소 슬프고도 아름다운 방식으로 마무리되죠.
엔딩씬에서 송서래는 밀물 시간에 맞춰 모래구덩이에 들어가 익사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장해준 역시 송서래의 뒤를 쫓아 그 장소에 오기는 했지만 이미 물은 밀려들어온 상황이고, 그녀가 파놓은 모래구덩이는 이미 밀려들어온 모래와 바닷물로 인해 서로 찾을 수 없게 된 상황입니다. 이처럼 그들의 처음과 마지막은 모두 시간이 제대로 맞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처음 만난 순간은 서래의 남편은 없지만 불완전하게나마 해준에게는 가족의 형태가 계속 유지되던 상황이었고, 그들이 다시 만난 순간도 역시 비슷합니다. 해준은 서래를 잊기 위해 이포로 떠났지만 서래가 다시 찾아온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들은 시간이 어긋나는 소통 방식인 번역기를 사용했고, 그들의 마지막 역시도 시간의 엇갈림으로 인해 끝이 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송서래와 장해준을 상징하는 욕구들이 있다면 각각 식욕과 수면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 일부인 식욕과 수면욕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허나 극중 두 인물은 서로 각각의 정상적인 식욕과 수면욕이 결여된 상태입니다.
송서래는 작중에서 혼자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저녁을 아이스크림으로 떼운다거나 아이스크림만 먹은 이후 바로 담배를 피며 꾸벅꾸벅 졸고 있다던지, 정상적으로 식욕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 송서래입니다. 반대로 장해준의 경우에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인물입니다. 잠이 오지 않아서 잠복근무를 한다는 대사에서도 알 수 있고, 1분에 47번 깬다는 이야기와 운전을 하는 도중에 수면을 취하는 위험한 모습들 역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송서래와 장해준은 비정상적으로 식욕을 채우고, 수면에 취하지 못하는 인물이지만 서로가 서로의 결여된 면을 채워주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우선 송서래는 장해준과 만난 상황에서 정상적인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처음 만난 순간 취조실에서 먹었던 음식이 바로 값비싼 초밥이었으며, 추후 송서래가 장해준의 집에 갔을 때 장해준이 만들어준 것은 엉터리 중국식 볶음밥이었습니다. 음식의 퀄리티에 대해서는 편차가 있긴 하지만 그녀가 작중에서 해준과 있을 때 정상적인 식사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장해준의 경우에는 송서래 덕분에 잠에 들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앞서 말했듯이 불면증에 시달리는 인물이지만 서래의 존재로 인해 그는 잠들 수 있었습니다. 침대에서 그녀와 숨결을 맞추며 잠들기도 했고, 심지어는 그녀를 의심해야하는 장소인 경찰차에서조차 그녀와 숨결을 맞추며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졌죠.
이 영화에서 식욕과 수면욕은 서로의 인생에서 꼭 필요한 것임과 동시에 결여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로가 상대방에게 채워줄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서래와 해준은 천생연분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은 앞서 말한대로 다양한 엇갈림들로 인해 서로의 사랑이 닿지 못합니다. 이러한 이들의 관계를 나타내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영화에 등장하는 산입니다.
영화에는 송서래를 중심으로 두가지 산이 나옵니다. 하나는 첫번째 남편이 가장 좋아했던 산이고, 또다른 하나는 자신의 외조부가 가지고 있었다는 산입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언제든 갈 수 있지만 첫번째 남편의 강요와 고소공포증의 요소를 이길 정도로 가고 싶지는 않은 장소이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다릅니다. 그 산은 더이상 법적으로 자신의 산이 아니고, 쉽사리 갈 수 없는 장소이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무엇보다 원하는 곳입니다. 고소공포증을 이기면서도 가고 싶은 곳이자, 어떻게든 자신의 것으로 남기고 싶은 곳으로 이러한 산들은 각각 자신의 남편들과 해준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장해준은 사건을 해결하고자하는 욕구가 강한 경찰로 등장합니다. 그렇기에 그는 미결 사건들의 사진을 벽에 걸어놓고 지내는 등 완결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집착과 갈망이 강한 인물입니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완결된 사건은 과거의 것으로 남아 더 이상의 의미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중반부에 해준이 서래의 범행을 알아차린 이후 그들의 관계는 한차례 끝난 것입니다.
사건의 모든 내막을 그가 직접 알아내었지만 결국 사건은 완결되었습니다. 공식적으로도, 해준의 마음속에서도 그 사건은 완전히 끝난 것이 되었죠. 그렇기에 서래를 향한 해준의 사랑은 끝났다고 묘사됩니다. 허나 직업 정신과 당당함이 신조였던 해준이 서래를 위해 신념을 꺾고 무기력한 삶을 선택한 순간, 해준을 향한 서래의 사랑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영화 후반부 핸드폰에 남아있던 녹음 파일의 제목은 "부서지고 깨어짐"이었습니다. 이는 앞에서 나온 붕괴의 뜻을 서래가 찾아보았을 때 나온 말이었죠. 해준이 자신을 지탱해오던 모든 신념을 포기하면서까지 서래를 도와준 것, 그로 인해 자신이 붕괴된 것을 서래는 사랑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해준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된 서래는 이윽고 그가 했던 것처럼 그의 삶을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허나 그 순간 그녀가 마주한 해준은 기존과는 다른 모습이었죠. 미제 사건 해결을 목적으로 언제든 뛸 수 있도록 호카오네오네사의 운동화를 주로 신던 해준은 구두를 신고 자신의 용모를 관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완전히 붕괴된 상태이자 아직 서래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죠. 그렇기에 서래는 해준과 자신의 사랑을 영원한 것으로 만듦과 동시에 그에게 인생의 활력을 불어넣는 선택을 합니다.
해준은 미제사건을 통해서만 삶의 가치를 느낍니다. 완결된 것에 가치를 두지 못하고 완결된 삶에대해 우울감을 느낍니다. 그런 그를 위해 서래는 자신을 찾을 수 없도록 바다 아래 묻히는 선택을 합니다. 서래가 없어진 삶에서 해준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할 것 입니다. 그리고 서래는 죽었기에 더 이상 어떠한 음식도 먹을 수 없게 되었죠. 하지만 서래의 죽음으로 그들의 사랑은 미결됨과 동시에 완전성을 띕니다. 영화 마지막 해준은 다시 한 번 운동화 끈을 묶고 서래를 찾아 나섭니다. 서래가 묻힌 장소와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그녀를 찾을 가능성이 한없이 0에 수렴해가지만 괜찮습니다.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그녀의 사진은 해준의 벽에 영원히 걸려있을 것이고, 그녀를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이빈다. 그는 미제 사건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경찰이었고, 그녀는 그가 쫓아야 할 용의자였으니까요. 그들의 사랑과 추격은 비로소 그 순간 완성된 것입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정말 훌륭한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엄청나게 큰 심장의 요동을 느꼈습니다. 매순간순간은 아름다웠고, 구석구석 숨겨진 요소들과 치밀하게 짜여진 각본은 몰입감을 전혀 저해시키지 않았습니다. 제가 비록 올 한해 많은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약 99% 장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제게 있어서 2022년 최고의 영화로 기억될 것입니다. 제가 왜 영화라는 분야를 좋아한다고 느끼게 해준 영화가 <위플래쉬>였다면 무기력한 저에게서 다시 한 번 제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점을 각인시켜준 영화가 바로 이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