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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Aug 21. 2022

희망찬 미래를 꿈꿨던 소년소녀들에게

영화 <짱구는 못말려: 어른제국의 역습> 리뷰

 패션 트렌드는 20년 주기로 순환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를들어 90년대에 유행했던 오버핏, 힙합 농구문화 베이스의 의복같은 것은 10년대에도 유행할것이라는 이야기인데요. 우리는 이런 개념을 레트로 혹은 복고라고 합니다. 이러한 레트로는 크게 두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한 궁금증이라고 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내가 겪어본 것에 대한 향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패션 트렌드의 경우에는 전자라고 할 수 있겠죠. 그 당시 패셔니스타들이 입었던 아이템들은 어느정도 스타일리쉬하면서도 근래의 그것과는 결이 달랐기에 유행을 다시 한번하는 느낌이기 때문이죠. 허나 한동안 유튜브에서 무한도전, 1박2일과 같은 비교적 얼마 지나지 않은 예능들이 큰 인기를 끈 것은 이와는 다소 결이 다른 것입니다. 고단하고 잘못되었다 여기는 현재를 대신하여 저 매체를 좋아하던 당시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향수의 개념이죠. 그리고 오늘 리뷰할 <짱구는 못말려: 어른제국의 역습>(이하 <어른제국의 역습>) 역시도 이와 같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특징은 켄과 저녁놀 마을의 의미짱구 가족의 행동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켄과 저녁놀 마을

 이 영화의 메인 빌런은 비틀즈의 존 레논을 연상시키는 인물 켄입니다. 그는 과거의 향수에 취해 현재를 부정하고 과거에 상상했던 희망찬 미래를 동경하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그가 만든 20세기 박물관은 한국에서는 90년대 대전 엑스포로 묘사되지만 사실은 일본의 1970년 오사카 엑스포로 연출된 것이죠. 즉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있기 전, 고속 성장하던 시기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잘될것이라 믿어졌던 시절, 대중매체로 어떤 것을 만들더라도 흥행이 보장되었기에 작품성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던 시절이라는 일본의 부흥기는 잃어버린 10년(최근엔 20년 혹은 30년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을 겪은 이후 모든 것이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유래없던 성장 이후 이곳 저곳에서 터져나오는 사회문제들이 대두되었고, 모든 것은 불확실해졌으며 삶의 고단함 역시 전례없는 정도로 커졌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현재의 고단함은 과거의 향수로 곧잘 연결됩니다. 그리고 이런 연결점을 상징하는 인물이 바로 이 영화의 빌런 켄이죠. 하지만 켄과 같은 인물들은 본질적으로 한계를 가집니다. 과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죠. 이는 배진수 작가님의 웹툰 <금요일>의 역행 에피소드에서 단적으로 말하는 요소입니다. 현재의 기억을 가진채 돌아간 과거는 전혀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고 오히려 끔찍한 곳이었으며, 과거의 추억은 미화되고 고단함은 기억하지 못했기에 이런 선택을 한 것이라고 해당 웹툰은 말합니다.


 따라서 켄이 그저 과거를 동경하기만 하는 인물이었다면 그렇게까지 매력적인 인물이 아니었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있어서 켄이라는 인물을 매력적이라고 여기게 한 요소는 저녁놀 마을과 그의 몇몇 행동들이었습니다. 저녁놀 마을은 20세기 박물관 내부에 켄이 만든 일종의 세트장과 같은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언제나 저녁 노을만이 지는 마을이자 모두가 행복한 곳인데요. 이 부분이 그를 좀 더 매력적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극중 인물들은 저녁 노을이 아름답고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노을이란 본디 해가 지고 달이 뜨기까지의 시간을 말하는 것이자, 오늘이 끝나감과 동시에 내일이 찾아온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허나 사시사철 24시간 내내 노을만 지는 곳에서 이런 것들은 의미가 없습니다.


 켄은 20세기에 남아 희망찬 21세기를 기대한다고 합니다. 자신이 바란 21세기는 지금같은 모습이 아니었다면서 말이죠. 허나 그는 내일이 찾아오지 않는 마을을 만들어버립니다. 그리고 그는 이 마을이 안락할지언정 미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순응한 아이들을 자신이 생각한 21세기를 만들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키겠다는 말도 하죠. 결론적으로 그는 본인이 과거에 사로잡힌 망령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만든 세상이 불완전한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죠. 그렇기에 더더욱이 지금의 21세기에 희망이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졌을 수 있습니다.


 작중에서 켄은 기이할 정도로 자신에게 대적하는 짱구 가족에게 많은 기회를 줍니다. 자신을 막아볼 수 있으면 막아봐라는 말을 하고 그들의 몸부림을 마을로 송출해 20세기의 냄새 수치를 스스로 낮추기도 하며, 낮아진 냄새 수치를 어떻게든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고 깔끔하게 모든 것을 포기하죠. 저는 이러한 행동들이 켄을 더욱 매력적인 인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일련의 사건들을 경험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21세기를 싫어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짱구 가족이 현실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서도 보았고, 짱구와 같은 어린이가 미래를 쟁취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한 번 믿어보기로 했을 것입니다. 짱구와 같은 사람이 살아갈 21세기에 대해 일련의 기대를 갖기로 말이죠.


2. 짱구 가족의 행동 변화

 이 영화의 도입부는 짱구의 아버지인 신형만이 태양맨 에피소드를 촬영하는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20세기 박물관에서 자식이나 가족을 생각하는 것 대신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죠. 자식인 짱구와 짱아는 시설에 맡겨두고 자신들의 행복만을 추구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짱구의 요청은 무시한채 다음날에도 어떻게 놀지만 궁리합니다.


 이후 가족들이 20세기 박물관의 포로가 된 이후에는 이러한 성질들이 더욱 강화됩니다. 신형만과 봉미선의 행동 패턴이 완전히 아이와 다를 바 없이 변하였고, 아이들은 방치되었습니다. 허나 이후 신형만의 발냄새로 대표되는 현실의 냄새를 맡고는 정신을 차리고 그들은 책임감을 가지게 됩니다. 이 영화의 최고 명장면은 <히로시의 회상>이 나오는 그 장면이지만 저에게 있어서 가장 인상깊던 변화는 봉미선에게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봉미선은 작중 고소공포증이 있는 것처럼 연출되는 인물입니다. 그런 봉미선은 영화 후반부에 다다라서는 현실을 되살리겠다는 대의와 가족을 유지하겠다는 공동체적 책임하에 본인이 두려워하는 것에 당당히 맞섭니다.


 20세기의 냄새가 향긋하고도 정겨운 냄새로 묘사되고 21세기의 냄새는 신형만의 지독한 발냄새로 대표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전자는 현실을 마주하지 못하게 하는 장막이고, 후자는 현실입니다. 현실은 언제나 가혹하고 힘듭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부정하고 허상에 얽매인 삶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요. 허상이 달콤하긴 하지만 현실에서 좋은 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신형만의 회상 씬에서 나왔던 것처럼 이리저리 치이고 전철에서 선채로 졸음에 빠질 정도로 현실은 고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고됨 뒤에는 가족이란 행복이 여전히 그에게는 실존합니다. 이처럼 짱구 가족의 행동 변화는 과거라는 달콤한 허상에 빠져있던 인물들이 현실의 고단함 속 가족이라는 행복을 깨닫고 움직인다는 점을 내포합니다.




 향수란 다양한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통하는 요소입니다. 일본이 대표적이지만 한국이나 미국 역시도 추억과 향수의 문화는 실재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단한 현재를 부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일본의 버블 붕괴 이후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신세기 에반게리온>, <카우보이 비밥>과 같은 훌륭한 작품들은 등장했으니 말이죠. 달콤한 허상에 빠져 현실을 부정하지 말고 현실의 행복과 희망을 찾자는 이야기 영화 <어른제국의 역습> 리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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