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겹다는 감정의 근원-사랑

영화 <네 멋대로 해라> 리뷰

by 하랑

오는 12월 31일 영화 <누벨 바그>가 개봉한다. 몇 해 전 작고한 장 뤽 고다르가 그의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를 만들던 시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로 개봉 전부터 많은 이의 이목을 끌고 있는 영화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보러가기 전 장 뤽 고다르가 누구인가와 함께 네오리얼리즘 사조와 그에서 이어지는 누벨바그 사조에 관한 이야기에 더해 영화 <네 멋대로 해라>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네오리얼리즘 사조와 누벨바그 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운동-이미지와 시간-이미지의 대립 개념이 필요할 것이다. 운동-이미지의 관점에서 제작된 영화들은 대부분 등장인물의 지각과 변화 그로 인한 행동의 연쇄가 중심이 된다. 이러한 고전적인 이야기의 전개 구조는 현대를 살아가는 다수의 관객들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며 흔히 개연성 혹은 핍진성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고전적이고도 정석적인 묘사 방식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존재했으니 그들이 바로 1940년대 이후에 등장한 네오 리얼리즘 사조의 작가들이었다. 그들은 운동-이미지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들에 대한 반감을 가졌다. 영화란 우리의 삶을 조명하는 수단이지 잘짜여진 이데올로기의 전달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상을 기반으로 그들은 무솔리니 시기에 제작된 현실도피성 오락물에 대한 저항을 나타내었다.


네오 리얼리즘 사조의 대표작 <자전거 도둑>

그러한 저항의 방식으로 탄생한 사조가 바로 네오 리얼리즘 사조다. 그들은 유명 배우를 섭외하는 것을 꺼렸으며, 인공적인 조명을 사용하지 않으며 낮에 촬영하는 방식을 채택했고, 엑스트라가 아닌 실제 행인들이 영화에 등장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이러한 방식은 저예산 제작으로 연결되었고,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에 대한 반항으로 연결된다. 네오리얼리즘 사조의 주요 특징들은 분산적 이미지, 우연에 의해 일어나는 사건들, 목적없는 방황과 클리셰 파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영화를 고를 때 중요하다 여기는 것들에 대한 파괴가 주요한 특징인 것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흔히 중요하게 보는 것 중 하나는 통합된 요소를 바탕으로 짜여진 필연적인 서사의 연결이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는 영화와 현실이 매우 달라지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현실은 잘 짜여진 필연적 서사의 연결보다는 근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얽힌 방사형의 그물에 가깝다.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하는 것에 큰 의미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타인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찾기 어렵고 그들과 진심어린 소통이 더 힘든 경우가 많다. 네오리얼리즘은 이런 것이 현실의 성격이라 생각하며 만들어진 미디어가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담는 그릇이 되어버릴 가능성을 말하며 경계하였다. 이러한 사조의 영향을 받아 전개된 것이 바로 누벨바그 사조다. 카이에 뒤 시네마 비평가 출신의 인물들이 연극 형태의 유럽 영화에 대한 저항B급 할리우드 영화에서 느낀 생동감, 네오 리얼리즘 사조의 연출적 영향을 모아서 만든 것이 누벨바그 사조이며 그 시초격인 영화가 바로 오늘 다룰 <네 멋대로 해라>다.


본 작의 이야기 구조는 다소 단순한 편이다. 미셸이 경찰관에게 총격을 날려 도망을 치던 와중 파리에서 파트리샤를 발견한다. 이후 둘은 이야기를 나누며 관계를 이어가다 결국 파트리샤가 미셸을 경찰에 신고하고 총격에 의해 미셸이 사망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인과관계가 아니다. 미셸이 경찰에게 총격을 가한 이유는 그를 죽일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죽일 계획을 짜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차선을 어긴 곳에 경찰이 있었고, 경찰을 따돌리던 도중 차가 고장이 나 벌어진 해프닝에 가깝다. 본작은 이와 같이 이야기에 당위성을 부여하기보다는 우연성에 의존한 전개를 가져간다. 단순히 이야기에 당위성을 부여하지 못한 작품이라기 보다는 운동-이미지의 관점에서의 해석 대신 시간-이미지에서의 해석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작중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하나의 주제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묻는 대화의 방식보다는 집단적인 독백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이 영화가 난해하고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르겠다는 인상을 받게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것이 삶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한다.


고다르가 해당 작품을 만들던 당시의 유럽 영화계를 보면 메인스트림과 카이에 뒤 시네마 비평가들 사이의 영화에 대한 관점이 상이하게 달랐다. 메인스트림은 고전적인 방식의 전개에 의존하는 정석적인 연극 형태의 작품을 선호하였고, 고다르와 같은 비평가들은 이러한 운동-이미지 위주의 전개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지적하며 새로운 변화를 주장하던 시기였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전자 혹은 후자는 영화를 사랑하지 않은 인물들이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었겠지만 그들 사이의 대화는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형태가 아닌 집단적 독백의 형태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같다고 하더라도 기저에 가지고 있는 가치의 근간이 다르기에 벌어진 일이다. 이처럼 현실에서는 서로가 추구하는 바가 같다고 하더라도 그 가치 판단의 근간이 다르기에 대화가 성립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연인끼리 서로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은 같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과 각자 중시하는 가치의 차이가 있어서 갈등하는 사례처럼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작중 등장하는 "역겹다"는 표현은 큰 의미를 가진다.



작중 주인공인 미셸이 파트리샤에게 하는 말은 양극단에 있다. 예쁘고 귀엽고 아름답다고 말하다가 추악하고 비겁하고 역겹다고도 말한다. 후자의 경우는 대게 파트리샤가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등장하는 말들이지만 묘사를 통해 보았을 때 그것이 진심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녀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소유로 할 수 없음을 인지할 때 튀어나오는 자기방어적 형태의 언어에 가깝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는 미셸이 파트리샤를 향해 역겹다고 말하고 스스로의 손으로 눈을 감으며 죽음을 맞이한다. 이후 파트리샤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역겹다는 말이 무슨 의미죠? 라고 물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필자는 이러한 씬의 의미는 당시 관객들의 반응을 사전에 예측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이 영화를 처음 보게 될 관객들은 영화 제작의 기본조차 따르지 않는 본작을 보며 당황하고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고다르는 관객들의 당혹감의 끝에 나타날 언어를 역겹다로 예측한 것이다. 그렇기에 해당 감정을 느낀 근간에는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졌다. 역겹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 감정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은 단순한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가 관객에게 하는 심문의 일종이다. 결국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를 보며 느끼는 거부감은 영화에 대한 애정에 근거한다. 자신들이 사랑하던 영화의 문법이 깨진 상황에서 그들은 역설적이게도 사랑을 찾을 수 있다. 혹자는 진정한 영화가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 더욱 정석에 따른 영화를 만들것이고 혹자는 비평가 출신의 신인 감독의 행동에 영감을 받아 더욱 파격적이고 형식을 깨는 영화를 만들 것이다. 결국 이 영화를 보고 거부감을 느낀 이와 감명을 받은 이들 모두 다시 영화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를 뛰어넘기 위해 혹은 이 영화보다 더 나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제 멋대로 말이다.



좌측 상단부터 이창동 감독의 <버닝>,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 픽선> 그리고 <액트 오브 킬링>

현대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네 멋대로 해라>의 연출들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점프컷 연출은 이제 다수의 영화, 다큐, 드라마, 유튜브 영상들에서도 보일 정도의 연출이 되었으며 등장인물이 화면을 바라보며 말을 거는 연출은 <살인의 추억>, <데드풀 시리즈> 등 다수의 영화에서 차용되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이 작품을 필두로 고다르가 보여준 누벨버그의 연출과 마인드는 현대까지도 많은 제작자에게 영감을 주었다. 작가주의를 표방하는 이창동 감독을 비롯한 수많은 제작자, 마이너 장르에 대한 격한 애정으로 작품을 만드는 타란티노, 연출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은 왕가위나 베리 젠킨스 감독과 주류에서 벗어난 마이너리티의 감성으로 잔혹한 현실을 비추는 <액트 오브 킬링>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영화를 보고, 그리고 31일에 개봉할 영화 <누벨버그>를 본 이후 경의를 담아 이 문장을 외칠 수 있다.


이 영화는 정말 역겨운 영화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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