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체인소맨-레제편> 리뷰
만화 <체인소 맨>은 누계 발행부수 3000만부를 넘게 판매한 엄청난 인기를 지닌 히트작으로 그 인기에 힘입어 2022년에는 1쿨(12화) 분량의 TV애니메이션(이하 TV판 혹은 TVA) 역시 제작되었습니다. 허나 뛰어난 원작 IP, 엄청난 인기를 끈 요네즈 켄시의 OP <KICK BACK>과 달리 TVA는 다소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제작사 MAPPA의 입을 빌리자면 확실히 흑자인 것은 맞지만 동시기 다른 애니메이션 대비로도 블루레이 판매량은 상당히 저조하였고, TVA 자체의 평 역시도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본작의 개봉 소식이 공개되었을 때만 해도 그렇게 큰 주목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작은 개봉 첫 주에 제작비를 모두 회수하고 2025년 11월 2일 기준 1억 1400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기록하는 등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국내 역시 280만명 가량의 관객을 동원하며 2025년 개봉작 흥행순위 top 10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본작은 그렇다면 악재를 뚫고 어떻게 흥행에 성공하게 되었을까에 대해서 묻는다면 단연 완성도적 측면의 성취와 그에서 비롯된 바이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작의 화면 구성은 아름답고 액션을 다루는 과정에서 보이는 순간적인 호흡 조절들은 상당히 훌륭합니다. 원작의 표지를 생각나게하는 색배합이나 선의 두께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카오틱함은 본작의 매력을 배가시켰고, <멀홀랜드 드라이브>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 명작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몇몇 장면들은 보는 동안 미소짓게 하였습니다. TVA에서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영화이니만큼 진입장벽이 다소 존재하지만 만화책을 어떻게 영상화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모범적인 예시 중 하나라고 생각이 들만큼 만족하며 본 작품이었지만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수많은 상징이었습니다.
본작은 다층적인 상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이야기 할 상징 가운데 대표적인 요소는 물과 꽃, 그리고 쥐가 존재합니다. 물의 경우 본작에서 아주 다양하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소재입니다. 비와 수영장, 바다가 대표적인 예시인데요. 먼저 비의 경우 주인공인 덴지와 레제가 만나게끔하는 계기를 의미합니다. 단순히 비가 오는 날에 만났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두 주인공은 비를 피하다가 만났다는 점이 주목할만한 점입니다. 덴지는 갑작스레 마주하는 비를 피하고자 전화부스 안에 들어섰고, 레제가 그를 뒤따라 비를 피하기 위해서 같은 부스에 들어오는 것을 계기로 둘은 만나게 되고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까지 물이 의미하는 것은 피해야 할 존재입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겪어온 시련과 고난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이어지는 수영장의 장면에서 이러한 물의 의미는 다소 다른 느낌으로 변주됩니다. 수영장의 경우 물에서 헤엄쳐본 적이 없는 덴지에게 레제가 수영을 알려주는 곳으로 이곳에서의 물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이자 그로 인한 추억을 상징한다고 보입니다. 후술하겠지만 레제는 물에서 위력이 감소하고 약점으로 묘사되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선뜻 먼저 물에 들어가 덴지에게 수영을 알려주고 좋은 추억을 쌓아가는 장면은 덴지를 향한 레제의 마음이자 각오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해당 장면은 물이 피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존재로 묘사되는 장면입니다. 그런 둘의 감정에도 불구하고 해당 시퀀스에서 나타나는 거미줄에 걸린 나비와 거미를 보여주는 장면과 이후 물방울이 맺힌 거미줄과 거미줄로 둘러쌓인 나비의 모습은 레제와 덴지의 관계가 추후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후 레제를 저지하기 위해 바다로 동귀어진한 덴지는 바다 끝까지 가라앉고 그 순간 레제는 덴지와 수영장에서 겪었던 일을 회상합니다. 이 장면에서의 물은 다시 한 번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존재이자 얽히고 얽힌 그들의 운명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물은 다른 의미를 내포하는 듯 하지만 끝내 공통적으로 현실이라는 단어로 귀결됩니다. 과거 그들이 피해야 했던 거부적 속성의 존재이자 함께라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존재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들을 떨어뜨리는 존재 이 모든 것은 그들이 마주한 현실이었습니다.
다음은 꽃입니다. 꽃은 크게 2가지가 존재하는데 하나는 덴지가 받아온 하얀 데이지꽃이고 다른 하나는 레제가 받은 빨간 데이지꽃입니다. 하얀 데이지꽃은 덴지와 레제를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존재합니다. 덴지가 레제에게 건내주었고 그로 인해 자신이 일하는 카페로 덴지를 초대하게 되었으니 둘의 사랑을 연결짓는 존재로써 존재합니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이 꽃은 불행한 그들의 마지막을 상징함과 동시에 그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작중에 등장하는 해당 꽃은 더 아름답게 변할 수 없습니다. 이미 잘라졌기에 물병에 꽂아 두더라도 시드는 것을 늦출 뿐 그 꽃이 더 아름다워질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 시드는 것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꽃은 결국 이루어 질 수 없는 그들의 운명과도 닮았지만 그들이 느낀 감정만은 진실된 것이기도 합니다. 레제가 자신을 사랑한 것이 연기였다 하더라도, 그들이 함께 나눈 ‘헤엄’만큼은 진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장면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도 감정의 진실성만큼은 남는다는 사실을 표현합니다.
붉은 데이지 꽃의 경우에도 상징하는 바는 거의 동일합니다. 다만 하얀 꽃에 비해서는 비극적 요소가 더욱 강조되곤 합니다. 레제가 도망치려던 차에 마주친 빨간 꽃은 덴지와 했던 카페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떠올리게 했고 결국 그녀의 죽음의 원인이 됩니다. 이후 쓰러진 레제의 모습이 붉은 꽃과 닮았다는 점은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덴지에 대한 레제의 마음과 레제의 죽음이라는 요소는 궁극적으로 그들의 이루어지지 못한 아련한 사랑을 부각하는 장치로 훌륭하게 활용되었습니다.
이솝우화 <시골쥐와 도시쥐>의 이야기를 빌려 레제가 묻는 시골쥐와 도시쥐 중 어느 쪽을 선호하냐는 이야기에서 덴지는 도시쥐를 선택하고 레제는 시골쥐를 선택합니다. 그 이유로 각각 덴지는 도시에는 맛있는 것과 재밌는 것이 많기 때문이라 말했고, 레제는 안정적이고 안전한 것이 좋기 때문이라 밝힙니다. 이처럼 시골쥐와 도시쥐 이야기는 둘의 가치관이 상이함을 나타내는 요소로도 해석되지만 저는 오히려 같은 것을 꿈꾸는 둘의 뒤틀린 관점 차, 그로 인해 어긋나는 그들의 비극적 운명을 상징한다고 보았습니다.
덴지는 데빌헌터가 되어서 밥을 먹을 수 있고, 편한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레제는 그것은 일본인이라면 응당 누려야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이를 통해 나타나듯이 덴지와 레제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삶을 상징합니다. 덴지의 경우에는 그 마음이 자신이 먹지 못했던 음식과, 누리지 못했던 평범한 요소들을 누리고 싶다는 말로 표출되었고, 레제의 경우 남들과 같이 안정적이고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싶을 뿐이라 말로 표출되었을 뿐 둘이 추구하는 것은 거의 같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함께 학교를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타이밍이 엇갈렸지만 서로 함께 도망치자는 이야기를 하는 등 공통된 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들이 자라온 환경과 그들이 삶을 대하는 관점의 차이로 인해 어긋나고 말아버리는 비극적인 운명을 지니고 있었을 뿐입니다.
궁극적으로 이 작품은 인간의 감정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가장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을 주축으로 삼아 역설적으로도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부르짖습니다. 사실은 학교에 가본 적 없지만 덴지와 함께라면 학교에 가보고 싶었다는 레제의 마음은 결국 우리의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평범하지 않은 존재가 평범이라는 허상을 쫓는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 그것이 본작이 사랑받는 이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