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미 최빈국 니카라과에서의 새로운 시작
2004년 초, 과테말라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마침내 니카라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과테말라를 떠나는 아쉬움, 니카라과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조금의 긴장감이 뒤섞인 채로 새로운 파견 생활이 시작되었다.
약 1시간 정도의 짧은 비행 끝에 니카라과의 아우구스토 C. 산디노 공항에 도착하자, 경리부에 근무 중인 선배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와 주었다. 선배의 차를 타고 공장으로 향하던 중, 그는 갑작스럽게 "차 안 살래요? 싸게 줄 테니까 이 차 살래요?"라고 제안했다. 예상치 못한 말이었지만,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선배의 차를 구매하기로 결심했다.
과테말라에서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차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마침 선배는 가족과 함께 탈 수 있는 더 큰 차로 바꾸려던 참이었고, 덕분에 타이밍도 딱 맞았다. 외국 생활에서는 자동차가 필수다. 사실 그 당시 나는 운전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주말마다 차를 몰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이 내 유일한 취미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니카라과에서, 내 인생 첫 차를 갖게 되었다.
공장에 도착하자, 공사가 한창인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은 거의 완공 단계였지만, 도로 공사 등 부수적인 작업들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니카라과는 역시 더웠다. 이곳은 한낮 기온이 40도를 웃도는 지역이라, 특히 연중 가장 더운 시기에는 숨이 턱 막힐 정도의 더위를 체감할 수 있다.
내 첫 임무는 현지인 직원을 채용하는 일이었다. 출근 첫날, 회사 정문 앞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이력서를 들고 몰려와 있었다. 나는 큰 소리로,
"¿Quién tiene experiencia en exportación e importación?"
(수출입 경력자 있나요?)
하고 외쳤고, 한 사람이 손을 들며,
"¡He trabajado en la aduana!"
(세관에서 일한 경험 있어요!)
라고 대답했다. 당시 니카라과의 실업률은 40%에 육박한다고 했고, 실제로 공장 공사가 한창일 때부터 정문 앞에는 매일 같이 사람들이 이력서를 흔들며 찾아왔다.
세관 근무 경험이 있다는 사람을 우선 채용했다. 수출입 업무를 세팅하기 위해서는 세관과의 협업이 필수였고, 그녀의 경력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왜 세관을 그만두었는지 물었더니, 정부가 바뀌면서 기존 세관 직원 대부분이 교체되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다고 했다. 이런 정권 교체에 따른 인사 이동은 니카라과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한다.
당시 그녀의 월급은 약 250달러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니카라과는 중미 지역에서도 특히 평균 급여 수준이 낮은 나라였기에, 낮은 급여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경험은 회사 업무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입사한 지 3개월쯤 되었을 무렵, 더 나은 보수를 제안한 회사에 취직하게 되어 퇴사했다. 이후에도 우리는 SNS를 통해 계속 연락하며 지냈고, 그녀는 내가 니카라과에서 만난 사람들 중 손꼽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당시 공장은 여전히 셋업 마무리 단계였다. 사무실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고, 식당도 없어 외부에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필요하면 직접 통역도 해야 했고, 본업인 수출입 업무보다 잡다한 일들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그런 새로운 경험들 자체가 나에게는 꽤 재미있었다.
공장의 셋업이 마무리되고, 이제 수출입팀 현지인 직원 4명의 팀장으로서 업무를 했다. 내가 일하던 공장은 Zona Franca (보세 구역) 에 위치했기에, 수출입 과정의 컨테이너들은 세관원의 실물 확인이 필요 했는데, 세관원들이 시내버스를 타고 와서 검사를 하고, 교통비를 지불하는 형태로 업무가 진행되었다. 세관원들이 공무차량도 없던 시절의 니카라과였다. 가끔 세관원들에게 부탁이 필요할 때는 교통비를 조금 더 주면 어렵지 않게 일을 해결할 수도 있었다. 그 시절 니카라과는 일처리 방법에 특별한(?) 노하우가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회사 입사 2년만에 나름 한부서의 팀장으로 일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기회였다. 그렇게, 공장 셋업 단계부터 공장이 정상 가동하여 루틴한 운영이 될때까지 여러 업무경험을 하면서, 나름 업무적 만족감도 생기고, 니카라과의 삶에 곧 적응하게 되었다.
니카라과는 역사적으로 독재 정권과 사회주의 정부가 반복되어온 나라로, 중미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그래서인지 니카라과 사람들에게서는 대체로 순하고 착한 인상을 많이 받았고, 때로는 약간 순진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것이 오랜 억압과 통제 아래 살아온 영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5년 현재, 현 대통령인 다니엘 오르테가는 다섯 번째 임기를 보내고 있으며, 그의 부인이 부통령 직을 맡고 있다. 그는 과거 공산주의 성향의 산디니스타(Sandinista) 혁명군의 리더로서, 소모사 가문이 이어오던 세습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더 강력한 독재 체제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내가 근무하던 2004년은 민주 정부가 집권하던 시기로, 당시의 니카라과 사회 분위기는 내 눈에는 오히려 매우 평온하고 안정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니카라과에서 지내는 동안 가장 좋았던 점을 꼽자면, 나는 단연 로컬 음식을 소개하고 싶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즐겨 먹었던 음식은 니카라과의 주식인 콩볶음밥 "Pinto" 였다. 겉보기에는 한국의 콩밥과 비슷하지만, 조리 방식은 전혀 다르다. 기름에 볶아낸 형태이며, 약간의 채소가 곁들여져 있어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이 Pinto는 니카라과 바로 아래에 있는 코스타리카에서도 주식으로 먹지만, 두 나라 사이에는 약간의 조리법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니카라과 스타일이 더 입맛에 맞았다.
또 다른 기억에 남는 음식은 소고기 스테이크인 Churrasco다. 이 요리는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 즐겨 먹는 대표적인 스테이크이지만, 이상하게도 니카라과에서 먹었던 그 맛이 가장 진하게 기억에 남는다. 내가 느끼기엔 니카라과 음식은 인공적인 조미료 사용이 적고, 보다 ‘자연 그대로의 맛’에 가까운 점이 큰 매력이었다.
음식은 아니지만, 니카라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바로 럼(Rum)이다. Flor de Caña는 니카라과를 대표하는 럼 브랜드로, 중남미 전역에서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다. 풍부한 향과 깊은 풍미, 그리고 깔끔한 마무리 덕분에 현지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니카라과는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나라는 아니지만, 실제로 방문해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의외로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뭔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여유롭고 소박한 니카라과의 분위기는 내 기억 속에 늘 긍정적인 인상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