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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중미를 떠나다

정든 니카라과 생활을 마무리하다.

by ANTONI HONG

과테말라에서의 1년 후 다시 시작한 니카라과에서의 생활은 바쁘지만, 여유도 있는 나름 참 괜찮은 생활이었다. 회사에서의 일도 자리를 잡아가고, 휴일이면 차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니카라과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렇게 니카라과 생활에 잘 적응하고나니, 다시 니카라과를 떠날일이 생겼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내가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


해외에서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혼자 생활한다는 것이, 여러가지 면에서 고민되었다. 우선, 스페인어 특기생으로 채용이 된 터라, 한국에 돌아가서 근무할 기회가 없어 보였다. 해외에서 경력을 쌓더라도 본사에 들어가 경력을 인정 받는 분위기가 아닌듯 했고, 해외에 적을 두고 있지 않은 내가, 계속 해외 근무를 할 것인가? 물론, 결국엔 한국에 들어가고 싶었다. 아직 신입사원 티를 벗지도 못하고 해외에 나오게 되어, 본사에서 나올때 명확한 내 의사를 밝히기조차 어려웠다.


내가 근무하던 회사는 미국 바이어의 오더에 OEM 공급을 하던 회사였는데, 회사의 시스템 자체가 바이어의 요구사항에 모든 것을 맞춰주야 하는 갑을 관계가 매우 확실한 사업이었다. 그 부분이 사실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갖기 어렵게 했다. 회사의 보수는 꽤 괜찮았지만, 회사 생활을 이제 막 2년을 넘긴 초년생에게는 의 입장에서 일한다는 것이 뭔가 불편했다. 무언가 내가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바이어님께서 시킨일을 그냥 잘 했을 뿐이라는 그런 느낌??


중미는 미국 바이어들에게 "노동 착취" 에 대한 관심을 끄는 지역인데, 노동 집약적 산업이 대부분인 지역이면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이어서, 미국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따라서, 미국 바이어들은 자신들의 오더를 처리하는 OEM 회사들이 해당 지역의 노동법을 잘 준수하는지까지도 체크를 하였다. 한 국가의 노동부가 해야 할 일을 미국 바이어가 함께 하는 것이었다. 당시 26살의 난 그런 부분들도 매우 자존심 상한다 느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그 일이 왜 필요한지? 잘 알게되었지만, 당시의 난 내가 다니는 회사가 그런 관리를 받는 대상이 된다는 것이 매우 싫었다.


니카라과의 회사 생활에는 점점 익숙해져 갔고 일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지만, 내 직업 자체에 대한 자부심이나 미래 비전에 대한 고민이 점점 생겨났다. 특히, 미국 바이어들의 일하는 방식이 부러웠다. 무언가 주도권을 가지고 일하는 그런 느낌? 그렇다..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중미에서 근무를 하다보니, 영어를 써야 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나는 해외에서 영어를 배우지는 않았지만, 대학생때 회화 공부에 꽤 많은 노력을 했다. 덕분에 어느정도 의사소통은 가능했고, 메일 소통을 잘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해외 어학연수 등을 한 사람들과 비교하면 내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항상 느끼고 있었고, 어디가서 영어 좀 한다고 하기엔 많이 부족했다. 그래, 영어를 잘 한다면 내가 좀 더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갖게 되지 않을까?


그러던 중, 본사에서 총무팀 담당으로 대리 한명이 파견을 나왔다. 중남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었고, 스페인어/영어 능력은 물론, 업무 경력도 상당해서 처음 파견을 나오자 마자 매우 적극적으로 일을 했다. 법인장님을 비롯 상사들에게도 많은 신임을 얻었다, 윗분들 비위를 맞추는데도 아주 능숙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너무 적극적인 성격은 점차 공격적인 성격으로 바뀌었고, 특히 현지인 직원들에게는 소리를 지르는 일이 많았다. 나와의 관계도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점차 선을 넘는 발언과 행동으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회사 분위기는 급속도로 바뀌었고, 점차 회사 생활의 재미도 잃어갔다.


그렇게, 여러가지 이유로 난 니카라과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한국으로 돌아가 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영어를 좀 더 잘해서,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다. 2년 남짓한 중미 지역에서의 회사 생활을 마무리하는 것이 매우 아쉬웠고, 조금 더 경력을 쌓아서 해당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내 젋은 날의 가능성을 그곳에 묶어두고 싶지 않았다.


place-central-america-nicaragua-mirador-catarina-01.jpg Caterina Mirador, Nicaragua (출처. https://www.visitcentroamerica.com/en/visitar/catarina-view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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