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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빅토리아, 캐나다 어학연수

빅토리아 캐나다에서 보낸 시간들..

by ANTONI HONG

일년 남짓한 니카라과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막상 떠나려니, 역시나 좋은 것들이 더 보이기 시작한다. 좋은 사람들, 맛있는 음식, 덥지만 맑은 공기 그리고, 자연. 1년여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이도 가까워진 니카라과, 막상 떠나려니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든다. 왠지 내 생애 다시 니카라과에 돌아올 일은 없을 것 같아서, 더욱 그랬다.


캐나다 빅토리아는 벤쿠버에서 배(Ferry)나 소형 비행기를 타고 들어갈수 있는 인구 10만이 거주하는 도시로, 2004년 당시만 해도 한국인들에게 조금씩 알려지는 곳이었다. 네이버, 다음 카페 등을 통해 빅토리아 UVIC 대학 어학당 코스를 알게되었고, 학교 수업은 물론 홈스테이까지 등록을 마치고, 캐나다 빅토리아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나를 반기던 홈스테이 맘 (Mom) Barbara 에게 중남미식 볼키스 (besito) 인사로 반가움을 표시했고, 예상치 못한 나의 인사 방법에 살짝 놀라던 Barbara 의 표정이 기억난다. 더이상 볼키스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문화권으로 넘어왔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기도 했다. 홈스테이집은 UVIC 대학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했는데, 집앞에 해변도 있어 위치가 매우 훌륭했다. 나보다 나이가 두살정도 많은 일본인 룸메이트가 있었는데, 그도 나처럼 직장생활을 하다가 영어를 공부하고 싶어 왔다고 했다. 홈스테이 가족은 부부의 첫째딸, 그리고 형제 아들을 둔 5인 가족이었는데, 말레이시아에서 오래 거주한 경험이 있어서, 아시아 문화에 꽤나 친숙한 사람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홈스테이를 선택한 것은 매우 좋은 선택이었다. 무엇보다 홈스테이 가족들과 북미권 문화를 체험해 볼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사실 홈스테이맘 Barbara 는 스웨덴 출신의 이민자였는데, 아주 어렸을때 캐나다로 이민와서 Native Canadian 이라 할수 있었다. 매일 저녁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는데, 아이들도 함께 저녁 준비를 하던 모습이 매우 좋았다. 저녁 식사 대화는 항상 나와 룸메이트도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메뉴 중 홈메이드 햄버거와 고기 스프는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


어학당 코스를 마치고 한국에 복귀하기 전 캐나다 다른 도시로의 여행을 계획했는데, 당시 홈스테이 가족중 첫째딸이 캘거리에 있어서, 함께 여행할 것을 제안해 주었고 할머니집 숙소까지 제공해 주었다. 캘거리에서 드럼핼러 캐년/ 공룡 박물관으로 향하는 약 2시간의 드라이브길은 양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후 산과 아름다운 호수로 유명한 벤프 (Banff)로 혼자 이동하여 아름다운 풍경에 Refresh 하고 빅토리아로 돌아왔다. 홈스테이 가족이 있었기에 보다 알찬 여행을 할 수 있었고, 당시에는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할 기회가 없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캐나다로 찾아가 보고 싶은 사람들이 되었다.


Moraine_Lake_17092005.jpg 캐나다 Banff (출처. Wikipedia / Gorgo)


중남미 문화에 익숙해져있던 나에게, 캐나다 빅토리아에서의 삶은 정말 다른 세계였다. 선선한 날씨, 유럽풍의 건물들, 깨끗한 거리, 특히 빅토리아는 캐나다에서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첫 직장에서 약 3년의 시간을 한국/중미에서 직장인으로 보낸 후 어학 연수생으로 살아가려니, 모든게 너무 감사했다. 하루의 모든 시간을 영어 공부 하나만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 지금 생각하면 참 사치스러운 시간이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UVIC 어학당에는 한국인, 일본인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멕시코 학생들도 몇몇 있었다. 난 자연스럽게 멕시코 학생들과 친해졌지만, 되도록 스페인어를 쓰지 않았다. 사실 한국 학생들과도 되도록 영어를 사용하려 했다. 내 생애 마지막 어학연수 생활이 될 캐나다에서의 시간을 최대한 이용하고자 했다.


스페인어 원어민들의 경우 영어를 빨리 배우는 편이다. 초반 기초를 잡는 기간에는 그 속도가 오히려 느린 편이겠지만, 어느정도 영어를 배우고 나면 가속도가 붙는다. 특히, 어렵고, 긴 단어들은 거의 동일한 단어를 쓰는 경우가 매우 많다. 언어는 결국 단어를 많이 알아야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기에, 스페인어 원어민들이 영어 스피킹에 유리하다. 물론, 발음은 안 좋은 경우가 많은데, 그 조차도 영어 원어민들은 잘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같은 알파벳을 쓰는 사람들인만큼 상호간 발음 이해도가 좋은 듯 하다. 나는 스페인어를 구사하는데는 꽤나 자신감이 있었지만, 영어 공부를 하면서 딱히 스페인어가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학당 수업 코스를 마치고, 난 인턴으로 직업 체험을 해볼수 있는 코스에 등록을 했다. 무료가 아니고, 무려 1천불 정도를 pay 하고 등록했다. UVIC 어학당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 이었는데, 여러 (비영리) 단체에 면접을 보고, 일도 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돈을 내고 해볼 경험은 아니었는데, 니카라과에서 이미 등록을 하고 온터라 그대로 진행을 해야했다. 몇군대 면접을 보고, 선택한 곳은 Dragon Boat Festival 이라는 중국인 커뮤니티의 축제 행사였는데, 당시만 해도 캐나다에 중국인 커뮤니티에 대한 감이 별로 없었으나, 행사의 규모가 상당히 큰 것은 물론, 중국인들만의 행사가 아닌 캐나다 커뮤니티에 완전히 녹아든 것이었다. 다만, 인턴 경험은 만족스럽진 않았다. 사실상 바쁘게 돌아가는 행사 준비에 영어가 아직 완전하지 않은 인턴이 할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2005년 당시 캐나다에서 한국인의 존재감은 2025년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강남 스타일도 없었고, K-POP 이라든가 한국 음식도 알려진게 별로 없었다. 다만, 절대 다수를 차지하던 한국 학생들이 있었다. 내가 살았던 홈스테이 가정에 내가 오기전 한국인 학생들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하루는 그들이 낮에 김치찌게를 집에서 해먹었고, Barbara 가 외출했다가 돌아와 김치찌개 냄새에 깜놀한적이 있다는 에피소드를 들었다. 한번은 수업중에 자유 주제로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한국 학생 하나가 김치에 대한 소개를 했다. 유럽, 터키, 중남미 등지에서 온 학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한 반면, 일본 학생들은 다들 한국음식 맛있다고 한마디씩 한다. 당시 빅토리아 다운타운에는 한식당이 딱 1개 있어던 것으로 기억한다. 2025년 지금은 10개가 넘는 식당이 운영중인 것으로 구글맵으로 확인된다.


캐나다에서 보낸 6개월 남짓한 시간, 친절하고 배울점이 많은 홈스테이 가족을 알게된 것, 그리고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 모두 감사한 인연이었다. 내가 살던 곳은 가끔 사슴이 집앞 마당에 들어오기도 하는 자연과 함께 하는 곳이었고, 아름답고 평온한 UVIC 캠퍼스, 바다를 끼고 있는 다운타운 등 너무나 멋진 곳이었다. 일할 기회가 있다면 꼭 와보고 싶은 곳이었으나, 주요 산업이 관광인 빅토리아에 취업의 기회는 별로 없어 보였다. 특히, 백인 인구가 60~70%인 곳에서 마이너리티 이민자로 살아갈 생각도 없었다. 영어가 완전하지 않으면, 차별도 종종 감수해야 할 것이다. 중미나 멕시코에서도 한국인은 마이너리티에 속하지만, 스페인어를 잘 못한다고 해서, 차별을 당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많은 한국회사들이 생산기지를 세우고, 현지인 고용창출에 이바지하기 때문에, 중남미 지역에서 한국인의 위상은 좋은 편이라 할 수 있다.


1280px-Fairmont_Empress_Victoria_Harbour_view_2018.jpg 빅토리아 다운타운 선착장 전경 (출처. Wikipedia / Wpcp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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