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Korea
캐나다에서의 영어 어학연수를 마치고, 2005년말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2003년 중순 한국을 떠난지 약 2년 반만의 복귀다. 해외에 있을땐 꽤 긴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익숙한 한국에 돌아오니 왠지 여행이라도 하고 온 것처럼 짧은 시간으로 느껴진다. 역시 고국의 품은 편안했다. 한국에 돌아올 때마다 자주 경험했는데,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이민국을 지나고 나면 속이 아주 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어떤 심적 편안함이 그렇게 전달되는 것으로 느낀다.
한국에 돌아와 다시 취준생이 되면서, 처음에는 기존에 내가하던 일과 관련이 있던 해운, 물류 회사쪽 면접을 보았는데, 한진, 현대 등 대기업 계열사는 경력직 요구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고, 중소기업의 경우 회사의 규모나 처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내 첫직장의 급여수준은 높은 편이었고, 그보다 좋은 직장을 구하고자 캐나다 어학연수까지 마쳤는데, 처우를 낮출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선택의 폭을 넓혀서 수출해외영업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중미에서 2년간의 주재원 경험과 스페인어 전공을 가지고 있었지만, 영어 어학연수를 막 마친터라, 스페인어 보다는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영어 우대를 하는 해외영업자리를 찾았고, 한 중견 휴대폰 제조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다. 회사는 꽤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였고, 미국, 베트남 등에 진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휴대폰 제조는 워낙 많은 첨단기술이 적용되는터라, 초반에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았다. 제품의 개발, 테스트, 악세사리, 마케팅 등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조금씩은 다 알고 있어야 했기에, 여러 부서의 사람들과 Co-Work 하는 재미가 있었다. 입사 후 약 3개월 이후 부터는 LA, 미네소타, 라스베가스 등 미국의 여러도시에 출장을 가기도 했다. 여러 프로젝트로 바쁘고, 일도 많았지만 즐겁게 일했다. 당시 회사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숙소가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퇴근을 일찍할 생각도 없었던 때였다. 잦은 술자리, 야근도 많았던 시기였다.
다만,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던 만큼, 리스크도 큰 회사였던 듯 하다. 회사의 대표가 워낙 공격적으로 일을 벌이다 보니, 회사의 자금 회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입사 8개월만에 회사가 부도날 위기에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회사 대표는 곧 출시할 폰이 유럽쪽 바이어들과 큰 딜이 마무리 되면서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라 했으나, 출장자들 사이에 출장비가 안 들어온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내부 직원들 사이에 대박 기회라는 거짓 소문을 흘려 회사 주식을 사기에 좋은 시기라고 부추기기까지 했으나, 결국 월급이 안 나오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와 재취업한 회사생활은 짧게 종료되었다. 2005년 당시 해당 회사는 수출 3억불을 달성할 정도로 성공 가도를 달리는 듯 보였으나, 부도가 나기까지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퇴사 후 바로 여러 회사에 입사 지원을 했다. 부도가 난 회사에 있어보니 무엇보다 회사의 안정성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꼭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졌다. 여러 대기업에 입사 지원서를 냈고, 이번에도 내 전략은 영어를 기본으로 스페인어가 가능하다는 컨셉이었다. 결국 여러번의 도전끝에 OO 전자에 입사했다. IT 마케팅팀에 대리로 입사하여 업무에 적응해 나갔다. 입사초기 나는 회사생활에 적응하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 대기업의 보고 체계나, 보고자료를 준비하는 방법이 그때까지 내가 중견 기업에서 해왔던 것과는 매우 달랐다. 어느쪽이 꼭 더 좋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원칙과 룰이 명확한 대기업 업무 스타일은 배워야 할것이 많았다. 그토록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였으나, 초반 6개월 가량은 매일 퇴사를 고민할 정도로 어려움이 있었다.
다행이도 일은 조금씩 익숙해져 갔고, 또 새로운 기회도 생겼다. 팀내 중동 지역 마케팅부서에 합류하여 중동의 두바이, 이란, 이집트, 터키, 이스라엘 등 국가를 담당하게 되었다. 중동 지역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전무한 상태였지만, 새로운 문화권을 배울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후로 거의 3개월에 한번씩 중동 지역 출장을 다녔다, 처음 터키를 방문했을때, 거리에 울리는 무슬림 기도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매우 강한 인상을 주었다. 터키는 알아갈수록 매력이 있는 나라였다. 한국과는 형제의 나라 라는 인식이 있어서 특히 한국인들에게 친밀도가 높았고, 비지니스에 있어 인간적 관계도 매우 중요해서 한번 친해지면 사업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출장시 현지 음식은 또 다른 즐거움 이었다. 케밥으로 대표되는 터키 음식은 처음에는 특유의 향이 부담될 수 있지만, 한번 맛을 이해하고 나면 계속 찾게된다. 실제 터키인들은 터키음식에 대한 많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조금은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 있었던 곳이었다. 날씨도 좋고, 도시도 깨끗하고, 음식도 맛있는, 전반적으로 미국과도 비슷하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었으나, 식당이나, 마트에서 종업원들이 선을 넘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예를 들어, 레스토랑에서 직원이 서빙을 하다가 이스라엘에 왜 왔는지? 기회가 되면 여기와서 살 생각도 있어? 하고 묻는다. 출장중이고, 나라가 예쁘다. 기회가 되면 와서 살아도 좋을 나라 같다. 그냥 인사치레로 답을 하니, Please don't come to Israel! 하고는 가버린다. 황당 그 자체였으나, 함께 하던 주재원 형님은 "원래 저런 애들이니 신경쓰지마" 하고 넘겨 버린다. 아마도 비슷한 경우가 몇번 있었던 듯 하다. 또 한번은, 공항 면세점에서는 상온에 전시된 무화과 말린 디저트 를 사려다가, 이거 혹시 냉장보관해야 하나요? 하고 물으니, 넌 그게 지금 냉장고에 보관된 것으로 보이니? 라고 답하는 직원... 친절을 기대하지는 않아도, 문화적 차이라고 하기에는 그들의 대답 방식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두바이는 그 명성만큼 멋진 곳이다. 높은 빌딩들과 고급 호텔들이 즐비하고, 고급차들은 거리를 누빈다. 다만 날씨는 정말 참기 어려운 곳이다. 한번은 두바이의 항구 Jebel Ali 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에어컨이 나오는 사무실안에서도 후덥지근해서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두바이에는 인도인들이 많은데, 내가 담당하던 IT 제품의 딜러들도 인도계가 아주 많았다. 그만큼 인도 사람들과 비지니스할 기회가 많았는데, 시장 정보를 잘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회사의 법인 세일즈맨 조차도 정보 공유를 잘 안할 정도다. 그만큼 터놓고 이야기하는 타입이 아니라 느꼈고, 친구가 되기도 어려웠던 것 같다. 터키를 비롯, 중동의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다 인간적 관계를 맺고, 서로 윈윈하는 비지니스를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외에도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 이란, 파키스탄 등 여러나라를 다녀보았는데, 이란의 경우 이란 기업체의 초청장이 없으면 입국도 안되고, 공항 분위기가 꽤나 삼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제 입국 후 시내를 돌아다녀봐도 뭔가 경직된 사회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교통체증이 심해서인지, 운전자들이 인내심이 좀 없어 보였다. 앞뒤 차간 간격이 거의 없이 운전하는 스타일이어서, 범퍼가 부딛히는 경우는 다반사고 서로 문제도 삼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집트는 입국과 동시에 비자 수속이 너무 오래 걸렸던 기억이 난다. 직원의 업무 처리가 느린 것도 문제지만, 창구에 직원이 딱 한명만 있어서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이후로 다시 공항 검색대를 지날때도 줄이 아주 길었는데, 갑자기 한무리의 현지인 여자들이 새치기를 하고 맨 앞으로 나간다. 검색대 앞의 보안요원이 다그치듯 소리를 질렀지만,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대응하는 그들.... 한동안 고성으로 다투는 듯 하더니, 결국 그 여자들을 우선 수속해 준다. 길게 줄을 섰던 우리들은 "Excuse me" 를 외쳤지만, 전혀 미안하다거나 하는 대답은 없다. 여성에게 양보를 하는 것이 무슬림의 문화적 특징이어서 그랬을 수 있지만, 공항에서까지 그렇게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집트는 회의 참석차 방문하였고, 일정 중 기자(Guiza) 피라미드를 가볼 기회도 있었다. 다만, 생각보다 관리가 너무 안된 모습에 좀 실망스러웠던 기억이다. 특히, 피라미드 중 일부는 꼭대기 부분이 그냥 시멘트로 메꿔진 모습이어서, 차라리 보수를 하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리아의 경우 요르단에서 육로로 입국했던 적이 있는데, 국경 이민국에서 한 유럽계 방문객이 이스라엘에 다녀온 것을 들켜서, 시리아 이민국 관료에게 GO BACK!! 윽박지름을 당하는 장면을 직접 보기도 했다. 중동 일부 나라는 이스라엘과 적대적 관계에 있어서, 이스라엘 이민국은 외국방문객들의 여권에 도장을 찍는대신 스티커 처리를 한다. 만약 이스라엘에 입국한 경험이 있는데, 시리아 등 반 이스라엘 국가를 가야 한다면, 해당 스티커를 제거하고 입국해야 가능한 것이다. 시리아에 입국 후 거리에 (2008년 당시) 대통령 바샤드 알아사드의 거대한 사진이 걸려있는 풍경이 매우 신기했다. 바샤드 알아사드는 2000년부터 2024년 까지 무려 24년간 시리아를 통치하였고, 비밀 경찰 등을 이용해 정부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처벌하는 등 독재정부를 이끌었다. 당시 난 지식이 부족하여 바이어에게 왜 길가에 큰 대통령 사진이 걸려있는지 이유를 물었다가, 당연히 존경하니까 큰 사진을 걸어 놓지? 라는 답변을 받은 적 있다. 바이어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느껴졌다. 공부 좀 하고 시리아에 오시지? 하는 표정이었다. 바이어는 시리아에서 꽤나 큰 백화점 사장이었는데, 그 조차도 비밀경찰의 감시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것이다. 2024년말 알사드 정권은 결국 막을 내렸다.
대략 3년간의 시간동안 중동 7~8개국을 출장 다니며, 여러 나라의 문화와 특징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중동이라는 곳이 매우 보수적이기도 하고,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사실 출장 기간동안 항상 친절한 사람들과 접대 문화에 감사했다. 한동안은 중동의 매력에 빠져, 중동 지역 전문가가 되길 꿈꾼적도 있으나, 이후로 난 미주(America)지역 마케팅그룹으로 배정되어 또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