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퇴사하고 홀로 서보기
회사에서 중동 지역 영업 업무를 약 3년간 담당한 후, 미주 지역 영업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당시 나는 과장 직급이었고, 회사 일에 대한 자신감이 어느 때보다도 높았던 시기였다. 내가 맡은 국가는 미국이었고, 매출 규모가 가장 큰 핵심 시장이었기에 팀 내에서도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었다. 입사 후 약 4년이 지나며 팀 내 선임 역할을 맡게 되었고, 이는 내게 아주 좋은 기회였다. 업무 성과만 잘 낸다면, 몇 년 안에 미국 법인의 주재원으로 파견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보였다. 대기업의 해외 주재원이라는 타이틀은 처우 측면에서도 유리했지만, 무엇보다 내 커리어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그 무렵, 전공이었던 스페인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중남미 마케팅 전담 그룹이 따로 있었고, 나는 가능한 한 영어를 주 언어로 사용할 수 있는 시장을 선택해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영어를 계속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력이 눈에 띄게 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반복되는 업무 표현 속에서 영어는 점차 ‘소통의 도구’가 되었지만, 언어 자체에 대한 흥미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오랜 시간 쓰지 않아 약간 어색해진 스페인어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미국 비즈니스를 담당하면서 나는 LA와 산호세 지역의 대만계 IT 딜러들부터, 미네소타에 위치한 National급 대형 유통사까지 다양한 채널의 바이어들을 상대했다. 바이어들의 규모가 큰 만큼, 모든 의사결정에는 세심한 검토가 필요했고, 보고서나 기획 자료도 수시로 준비해야 했다.
당시에는 채널별 마케팅 전략, 프로모션, 가격 정책 등 4P와 3C 분석에 기반한 전략 수립에 대해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업무 강도가 높았던 만큼, 동료들과는 종종 “우린 소설을 쓰고 있는 것 같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기획안을 짜야 할 때면 특히 그랬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소설 쓰기 같은’ 고민과 노력들이 결국은 내 사회생활과 사업에 있어 아주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업무는 물동 예측(Forecasting)이었다. Excel을 이용해 PSI(Production, Sales, Inventory)를 수치화하고, 3~12개월의 판매 예측을 통해 공장에 생산 수량을 요청하는 일이었다. 사람마다 차이가 큰 일이었는데, 나는 이 업무에 유독 흥미를 느꼈고, 꽤 정확한 예측 결과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공장에서는 과잉 생산이 없었고, 해외 법인에서도 재고 부족 사태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실적도 꾸준히 좋았고, PSI 업무는 훗날 내가 사업을 하면서도 계속 활용하게 되는 소중한 도구가 되었다.
다행히도 내가 미국 법인을 담당하는 동안 회사의 실적도 좋았고, 업무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었다. 그 결과, 입사 5년 차에 접어들던 해, 미국 법인 주재원으로 나가는 것이 구두로 확정되었다. 이는 그동안의 노력이 인정받는 순간이었고, 가족들과 함께 미국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부풀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조롭게만 흘러가진 않았다. 2010년 중반부터 회사 전체의 실적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2008년 애플의 아이폰 출시 이후 시장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고, 회사는 그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결국 부회장이 자진 사퇴하고, 그룹의 오너가 직접 CEO로 부임하면서 회사 분위기는 크게 바뀌었다. 비용 절감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회사는 해외 주재원 수를 줄이기로 결정했고, 내가 속한 팀의 미국 주재원 포지션 두 곳 중 한 곳이 최종적으로 폐지되었다.
갑작스러운 회사 상황의 변화는 많은 고민을 안겨주었다. 특히 미국 주재원 발령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감도 그에 비례해 크게 다가왔다. 게다가 내가 속해 있던 ODD(Optical Disc Drive) 사업은 이미 시장 트렌드 자체가 하향세였고, 앞으로의 비전을 찾기에도 어려운 구조였다.
당시 회사 내부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인원 감축을 유도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업부로 이동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선택이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은 사업부 내에 남아 최대한 ‘버티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문하게 되었다.
스스로 비전을 찾을 수 없는 조직에서 그저 버틴다는 게 과연 나다운 선택인가?
비전이 없다고 느끼면서, 과연 어떤 미래를 기대하며 버틸 수 있을까?
내 나이 34살.
회사의 사업이 성장 곡선을 그릴 때, 나는 그 흐름 속에서 착실히 경력을 쌓아왔다. 마치 계단을 하나씩 밟아 올라가듯, 회사가 제시하는 비전을 따라가며 성실히 걸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누군가가 정해주는 방향이 아닌, 내가 스스로 설정한 비전을 따라가야 할 시점이 되었다.
영어, 스페인어, 해외 경험, 중견기업과 대기업에서의 커리어까지 —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이력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갈증이 있었다.
실제 ‘사업’이라는 무대에서,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는 진짜 자립 능력을 갖고 싶었다.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야생의 감각 같은 것을 키우고 싶었던 것이다.
2011년 초, 우연한 계기로 LED 조명을 수출하는 사업가 한 분을 알게 되었다. 회사는 규모가 매우 작았지만, 그분이 이야기하는 비전에는 어딘지 모를 매력이 있었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언제나 조직 안에서,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기에 '회사 밖의 사업'이라는 개념은 나에게 낯설고도 막연한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분의 비전이 다소 근거 부족하게 느껴졌음에도, 이상하게도 나는 그 방향성에 자연스럽게 끌렸고, 큰 의심 없이 참여를 결심하게 되었다.
아내와도 여러 번 상의를 했고, 그녀는 내 결정을 존중해 주었다. 반대하지 않았고, 묵묵히 응원해 주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들어가고 싶어 했던 대기업에서, 5년 반 만에 나는 스스로 사직서를 내고 걸어 나왔다.
2003년 대학을 졸업한 후, 2011년 자진 퇴사하기까지 약 8년.
나는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을, 비교적 성실하게 걸어왔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길이지만,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그 길이 좋든 싫든, 그게 ‘맞는 길’이라고 믿으며 걸어온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