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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다시, 스페인어를 꺼내며

콜롬비아 커피를 찾아서, 다시 중남미로

by ANTONI HONG

중동 지역 마케팅 업무를 하던 시절, 출장을 가면 현지 주재원들과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중 한 주재원은 아랍어에 능통했는데, 그와 함께 바이어 상담에 나가면 유창한 아랍어로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주도하곤 했다.

‘아랍어를 잘하는 한국인’이라는 스펙은 현지에서도 매우 특별하게 받아들여졌고, 바이어들 사이에서 좋은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당시 나는 스페인어를 잘했지만, 오히려 스페인어권 지역을 담당하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영어를 더 많이 쓰고 싶었고, 그래서 중동 업무에 더 적극적으로 임했다. 그 선택 덕분에 중동 시장을 잘 알게 되었고, 이후에는 미국 시장까지 담당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에는 늘 스페인어권 비즈니스에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남아 있었다.


5년 이상 근무한 회사를 퇴사하면서 내가 꿈꾸던 일은 바로 콜롬비아의 한 커피 브랜드를 한국에 소개하는 일이었다. 커피뿐만 아니라, 카페 프랜차이즈를 들여오는 계획도 함께 있었다.
해당 브랜드는 이미 중남미 여러 나라와 미국에 진출하며 성공적인 입지를 다진 브랜드였지만, 2011년 당시 한국에서는 그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 브랜드를 한국에 소개하고자 사업을 제안해 주신 분은 나름대로 안목이 있었던 것 같고, 그 브랜드가 한국에서 대박날 것이라 굳게 믿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커피를 좋아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소비자의 입장이었고 전문적인 지식은 전혀 없었다. 커피를 어떻게 추출하는지도 잘 몰랐고, 어떤 커피가 맛있는지도 분간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롬비아 커피 수입 사업에 참여하고 싶었던 이유는, 콜롬비아뿐만 아니라 과테말라,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파나마 등 수많은 중남미 국가들이 커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내 스페인어 실력과 현지 경험이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 물론 지금 돌이켜보면 다소 무모한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간절했고, 꼭 한 번은 도전해 보고 싶은 일이었다.


Roasted_coffee_beans.jpg 커피 원두 (출처. Wikipedia / MarkSweep)


처음 커피 일을 시작했을 때,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노트북 한 대와 핸드폰뿐이었다. 콜롬비아의 한 커피 회사에 미팅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긍정적인 답변이 도착했다. 그들은 한국 시장에 관심이 있다며, 언제 콜롬비아로 출장 올 수 있는지를 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한 커뮤니케이션이었지만, 당시의 우리는 그저 “미팅하자”는 답변 하나만으로도 큰 성취를 이룬 것처럼 기뻐했다. 의지는 앞서 있었고, 경험은 부족했지만, 그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항공권을 예약하고, 미팅 준비에 필요한 자료를 정리하며, 우리는 약 한 달 뒤 콜롬비아 본사를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의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2011년 당시, 한국의 커피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스타벅스와 카페베네를 중심으로 수많은 커피 브랜드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고, 카페의 숫자도 급증하고 있었다. 그때 이미 커피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지금의 시장과 비교하면 당시에는 여전히 초기 단계였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2011년 한국 커피 시장 규모는 약 3조 원 정도였으며, 2025년에는 11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즉, 2011년 당시 커피 시장은 아직 충분한 성장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출장을 준비하면서 나는 한국 커피 시장에 대해, 그리고 좋은 커피란 무엇인지에 대해 부지런히 공부했다. 시장을 알아갈수록 이 일이 결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대학교 은사님이자 선배이기도 한 교수님께서 삼청동에서 잘 알려진 로스터리 카페를 운영하고 계셨기에, 직접 찾아가 이런저런 조언을 구했다. 새 출발을 하는 나에게 교수님은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해주려 애쓰셨지만, 동시에 커피 사업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나는 절실했다. 꼭 해내겠다는 강한 의지로 부딪혀 보고자 했다. 출장 날짜는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왔고, 드디어 나는 콜롬비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콜롬비아에 도착하기까지, 나는 약 7년 동안 스페인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너무 오랜만에 꺼내 쓰는 언어라 그런지, 혹시 말이 어눌하진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우리가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반복해서 연습하며, 잊고 있던 스페인어의 감각을 조금씩 되살려 보려 애썼다.


콜롬비아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가 넘은 늦은 시각이었다.
한국에서 LA 를 거쳐 총 20시간이 넘는 긴 여정으로 몸은 피곤했지만,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보고타 (Bogota) 시내의 풍경은 역시나 익숙한 느낌이다.


호텔에 체크인을 마치고 씻고 나니, 시간은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시차 탓에 쉽게 잠이 오지 않았지만, 다음 날을 위해 억지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새벽 6시 정도 였을까? 창밖으로 차들이 다니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이었지만, 부지런히 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호텔은 보고타 시내 중심가에 있었고, 주변에는 오피스 빌딩이 꽤 많았던 듯하다. 이렇게 새벽부터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고, 활기찬 분위기라니... 내가 알던 ‘중남미’의 느긋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물론 짧은 출장으로 한 도시의 분위기를 완전히 파악하긴 어렵지만, 실제로 콜롬비아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중남미에서 가장 ‘비즈니스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도 콜롬비아인이라는 말도 있다.


중남미 여러 나라에 유통되는 의류나 공산품의 상당수가 콜롬비아에서 만들어진다는 것도 그 증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아침 새벽녘 — 그 부지런한 출근길의 풍경 속에 이미 답이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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