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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콜롬비아 커피를 만나다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의 첫 비지니스 미팅

by ANTONI HONG


출장 첫날, 우리는 호텔 근처에 위치한 해당 커피 브랜드의 매장을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다. 도착한 카페는 예상보다 훨씬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인테리어는 현대적이면서도 지역적 감성이 어우러져 있었고, 전체적인 브랜드 톤앤매너도 잘 정돈되어 있었다.


단순히 커피만 파는 곳이 아니라, 디저트류는 물론 머그컵, 텀블러 같은 굿즈 제품까지 다양하게 갖춰져 있어 ‘브랜드 경험’을 잘 설계한 공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 퀄리티는 스타벅스, 카페베네, 투썸플레이스 등 2011년 당시 한국의 주요 커피 브랜드들과 견주어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오히려 라틴 특유의 색감과 디자인에서 묻어나는 ‘차별화된 정체성’이 강점으로 느껴졌다.


‘이 브랜드가 한국에 들어온다면, 분명 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그 자리에서 더욱 커졌다.


낯설지만 간절했던, 첫날의 발걸음


출장 첫날의 일정은 시장 조사와 다음날 미팅 준비가 주요했다. 보고타 시내 곳곳을 다니며 브랜드 매장을 직접 방문하고, 실제 인지도가 어느 정도인지, 거리의 사람들은 이 카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하고자 했다.


또한, 내일로 예정된 미팅 일정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혹시 담당자가 갑작스럽게 자리를 비우진 않을까? 해외 출장에서 종종 있는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떠오르며 괜한 걱정도 앞섰다.


대기업에 다닐 때 수십 번의 해외 출장을 다녀봤지만, 이번 출장만큼은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단 한순간도 허투루 보낼 수 없을 만큼, 이 여정은 나에게 특별했다.


이번 만남이 잘 풀린다면, 이후 사업 진행의 판도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모든 것이 간절했다.


SAM_0979.JPG 카페 매장 사진, 출장시 직접 찍은 사진이다



시장 조사를 위해 보고타 시내를 이곳저곳 걸으며, 이런저런 가게와 노점상들을 둘러보다가, 길가에서 악세사리를 팔고 있는 한 청년이 말을 걸어왔다.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고, 무얼 팔고 있는지 물어봤더니 이것저것 설명을 이어간다. 그러다 말없이 내 손목에 무언가를 감더니, 콜롬비아 국기 색상이 들어간 끈 팔찌를 채워준다.


"No, gracias. 고마워, 그런데 괜찮아."
조심스럽게 사양하려 했지만, 그는 웃으며 말한다.
"Es un regalo. No te preocupes. 선물이야, 걱정하지 마."

처음엔 슬쩍 물건을 팔려는 수작인가 싶어 경계했지만, 선물이라는 말에 순간 마음이 뭉클해졌다.
'내가 혹시 콜롬비아 사람들을 너무 경계했던 건 아닐까?'
속으로 살짝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사실, 그 팔찌는 돈으로 샀어도 얼마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청년이 보여준 자연스러운 배려와 환대는, 낯선 이방인에게는 꽤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물론, 어쩌면 그는 마음속으로 다른 물건 하나쯤은 사주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느껴진 건, 그의 미소와 여유있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출장 첫날의 오후를 보내고, 저녁에 한국과 연락을 하여 당일 시장조사에서 확인한 부분을 공유하고 내일 미팅시 전략에 대해 다시 한번 준비를 하였다.


다음날,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그 커피 브랜드 본사에 도착했다. 리셉션에서 담당자 이름을 말하니, 곧 담당자가 나와 나를 맞이했다. 주니어 급으로 보이는 20대의 담당자는 미팅룸으로 나를 안내하고, 곧 메니저급인 그녀의 상사도 미팅에 참석한다. 이메일과 전화로만 연락해오다가 직접 만나서 하는 대화는 또 달랐다. 어제 이미 시장조사 겸 돌아다니며, 스페인어 연습을 한터라 오랜만의 스페인어 대화는 큰 무리는 없었다. 그래도, 중요한 미팅에 있어 긴장도 되고, 주어진 시간안에 최대한 많은 성과를 얻어야 겠다는 마음이 압박으로 다가온다.


미팅은 우리 쪽 회사 및 한국 커피사장 소개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해당 커피 브랜드의 카페를 한국에 런칭하고 싶다는 우리의 의사를 정중하게 전달했다. 콜롬비아 본사 측의 반응은 예상보다 긍정적이었다. 그들도 한국 시장을 유망하게 보고 있었고, 기회만 된다면 진출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다.


그들은 준비해 온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요구 조건이 간략하게 요약된 Summary 버전으로, 기본 투자 필요 금액, 브랜드 가이드라인 준수 여부, 그리고 3년 내 최소 3개 지점을 오픈해야 한다는 등 꽤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서류는 이번 출장의 첫 번째 목표이기도 했던 ‘브랜드 측 요구 조건 파악’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즉, MOU (Memorandum of Understanding) 체결 가능 여부에 대한 의사를 타진한 것이다.


우리가 준비한 MOU의 핵심은,

**“콜롬비아 본사가 일정 기간 한국 내 다른 업체와 동일한 사업 협의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아직 구체적인 계약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독점 협의권을 확보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대 측의 입장은 분명했다.
그들이 준비한 서류는 어디까지나 LOI(Letter of Intention), 즉 의향서였다. 그 안에는 구체적인 권리나 제한 사항은 없고, 오직 자신들의 요구 조건만이 명시된 간단한 형태였다.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아직 누구에게도 독점권을 줄 생각은 없다”는 뜻을 전해왔다.


미팅은 약 한 시간 남짓 진행되었다. 20시간 넘는 비행 끝에 겨우 한 시간— 시간만 놓고 보자면 너무 짧게 느껴졌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그들의 입장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는 컸다. 다만, MOU 를 체결하여, 사업진행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자 했던 우리의 계획은 원하던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이 사업을 함께 시작했던 이(Lee) 사장님과 나는 두 가지 파트로 역할을 나누었다. 나는 커피 브랜드 업체와의 협상 및 조율을 맡았고, 이 사장님은 한국에서의 투자자 발굴을 책임지기로 했다. 당시 50대 초반이었던 이 사장님은, 주변에 투자에 참여할 수 있는 충분한 인맥이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으며, 이들을 설득하기 위한 증빙 자료로 MOU 체결을 원했다.


업체 측과의 미팅을 마친 후, 한국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이 사장님과 통화를 했다. 우리가 원했던 MOU는 받지 못했다고, 업체 측은 내부 기준이 매우 명확하여, MOU보다는 LOI 수준 이상의 문서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공유했다.


그렇게 콜롬비아에서의 출장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비록 우리가 기대했던 결과, 즉 MOU 체결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해당 업체의 특성과 그들이 요구하는 조건들에 대해서는 보다 명확한 그림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귀국길에 오른 공항에서는 군인들이 철저하게 가방 검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들의 날카로운 눈빛과 삼엄한 분위기는, 왠지 앞으로의 사업 여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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