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일주일도 더 지난 일이다. 출근도장을 찍듯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 제법 길다고 느껴지는 와중에도, 마음속 파업을 선언한 나와는 달리 더디지만 시간은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며 흐르고 있었다.
그저 시간이 약일 거라는 말에, '몇 밤을 더 자야 할까',라는 어린아이 같은 질문을 되뇌고 있는 나는 언제나 이별 앞에서는 그저 맥없이 목놓아 엉엉우는 것밖에 못할 정도로 여전히 자라지 못했다.
기억이란 자신의 죽어가는 생명을 연장이라도 하듯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상영을 멈추지 않았고, 나는 그 생명이 아직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거의 반사적으로 눈물을 흘려댔다.
갑자기 먼 타지에서 혼자인 것이 무서워진 건지 일상생활을 하려는 중에도 후드득 눈물이 자꾸만 나서 모두의 염려를 샀다. 분명 나는 괜찮다고 말하는데, 남들 눈에는 내가 아파 보였고, 피곤해 보였고, 괜찮지 않고 쉬어야 했다.
항상 나를 내가 몰랐다.
그래서 거울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스스로가 엉망이었던 걸 깨닫자마자 나를 좀 돌봐달라고, 그렇게 나는 전화를 붙잡고 엉엉 울어대었고, 따뜻한 온기 있는 집에서 따뜻한 온기 올라오는 밥을 억지로 밀어 넣고 나서는 또 안도감에 눈물이 펑펑 흘렀다.
그래, 나는 혼자가 아니니까. 하는 풀어진 마음. 누군가가 나를 걱정해 주고 여전히 붙잡고 있다는 마음.
나는 영영 혼자일 거라는, 이해받지 못할 거라는 오만함을 속죄하듯이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때는 다 그래,라는 웃음 섞인 말이 위로가 되었다. 그래, 내가 뭐라고. 내 이별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남들도 다 겪고 견디고 사는데, 내가 뭐라고 혼자 건방지게 그리 드라마틱한 이별을 겪을까.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던 해외여행이라는 것도, 그냥 마음만 먹으면 1분 만에 비행기 티켓을 예매할 수가 있었다.
서로의 일정을 맞추고 무언가를 하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 일이었다.
나는 혼자가 되었는데, 오히려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게 더 쉬운 일이 되는 것이 새삼 신기했다.
돈이나 현실에 어느 정도 조율을 해야 했지만 맞출 수 있다면 얼마든지 맞출 수 있는 것. 그렇게 맞춰가는 것.
그리고 언제든 되돌아볼 수 있는 다른 관계도 더러 있었다.
지금 당장은 익숙한 관계의 동굴 속에 나를 숨겨야 하지만, 조금 더 지나면 또 나 자신을 세상에 드러나 보이는 것도 할 수 있게 될 거다.
그래서 이렇게 나 여기에 있다는 신호로 어둠속을 손으로 더듬거리며 나아가려는 시도를 이렇게나마 해보는 것이다.
나는 요즘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전의 내 섬세함이 하루하루의 현실 속에서 무뎌지면서, 어떤 예민하게 정확한 표현이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나는 그 감각에 의존해 글을 쓰곤 했는데, 요즘은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았다. 내 것 아닌 말들로 쓰게 될 때의 좌절을 느끼고는 글을 쓰는 것도 최근엔 하지 않았다.
현실에서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들이 살아남기가 너무나 힘드니까점점 무뎌지는 쪽으로 스스로를 만들다 보니, 덜 반응하기, 덜 화내기, 덜 민감해하기로 애를 썼다.
하지만 여전히 눈물을 참기는 힘들다.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희망만을 생각해 자주 좌절하게 된다던 내게, '미래'라이팅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냐는 그 말이 힘이 되었다.
'미래라이팅', 내가 가장 잘하는 일.
지나온 힘든 때를 버티고 살아오게 했던 유일한 마약.
어릴 때의 그 예민하던 나는 미래라이팅을 곧잘 하곤 했는데 현실의 벽에 갇힌 나는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돼서 이제는 잘되던 미래라이팅이 되지 않는다.
미래든 현실이든, 지금은 내가 보는 방향이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나를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요즘 피곤해보인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난 분명 그대로인 거 같은데 아마도 내가 나를 보는 눈이 고장이 난 건지, 세상이 나를 억까할 정도로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건지 모르지만 어쨌든 내 당장의 관심사를 둘 곳이 없어, 내가 나를 돌보겠다고 마음먹은 때(돌본다기보단 얼마간은 스스로의 어리광을 받아주기로)에 문득, 크기에 맞지 않는 가방이 신경 쓰였다.
지나치게 큰 가방과, 지나치게 작은 가방밖에 없어서 딱 적당한 크기의 가방을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난 후에,이제는 잘 쓰지 않는 가방을 정리하다가 탐이 나서 돌려주지 않은 손수건이 눈에 들어왔다.
JTBC드라마 <인간실격>중에서
내겐 너무 큰 의미라서 못 돌려주겠다고 미안하단 핑계로 다시 연락을 했다. 애초에 돌려받을 생각도 없었다고 말하는 너를 나는 또 울릴 거 같았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날 울던 내게,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주던 그 따뜻하고 정돈된 촉감에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거친 옷소매도, 까끌한 휴지도, 나의 엄격한 손도 아닌 보드라운 촉감으로 뺨 위에 닿은 눈물을 닦을 때, 누군가의 앞에서 울어도 부끄럽지 않게, 손수건이라는 정돈된 매너로 얼마든 울라는 그 배려가 너무도 행복해서 손수건을 꼭 가져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언젠가는 더 좋은 손수건으로 보답을 할 것이고,
나는 또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이별의 끝에 또 눈물을 흘리는 나는 다시 또 그 손수건이 필요해졌다.
아직은 내 눈물밖에 닦을 수는 없지만, 언젠가 누군가에게도 건넬 수 있을 만큼 내가 자라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