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곳을 보면 그 곤충을 알 수 있다.
아야진초 ‘강원행복더하기 학교’ 시절, 2학년 아이들과 통합교과 (곤충 단원)수업을 하던 시간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그때의 장면이 또렷이 되살아나 이렇게 글을 써 봅니다. 참으로 행복하게 가르쳤던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문득문득 다시 학교로 가고 싶어집니다.
그해 여름, 『꿀벌 마야의 모험』을 따라 칠판 위에 숲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노린재, 무당벌레, 장수하늘소, 나비, 메뚜기, 거미, 사슴벌레, 반딧불이, 쇠똥구리, 사마귀, 개미, 벌, 말벌….
패랭이꽃, 잔대꽃, 용담꽃, 달맞이꽃, 초롱꽃….
하루하루 칠판은 조금씩 숲이 되어 갔고, 교실 안에는 여름의 기척이 스며들었습니다.
“풀숲에 숨어서 종다리에게 들키지 않게 곤충을 찾아보자.”
그 말 한마디에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합니다. 칠판 앞으로 몰려들어 작은 몸을 기울이고, 눈을 반짝이며 숲을 들여다봅니다. 교실은 금세 작은 생태계가 됩니다. 아이들의 숨결과 웃음, 기대와 발견이 뒤섞여 여름이 됩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자랍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또 다릅니다. 그래서 칠판그림도 그대로 머무르지 않습니다. 하루는 잎이 늘고, 하루는 꽃이 피고, 하루는 곤충이 더해집니다. 여름이 깊어갈수록 식물은 다양해지고, 곤충은 많아집니다. 어느새 물가의 풍경이 더해지고, 물속 곤충들까지 자리를 잡습니다. 준비는 늘어나지만, 그만큼 교실의 세계도 넓어집니다.
아이들 공책 속 그림도 ‘전체’로 자라납니다. 한 장면이 아니라, 하나의 계절처럼 이어집니다. 수채화 물감이 번지듯, 아이들의 느낌도 번져 갑니다. 색을 고르고, 선을 긋고, 다시 지우고, 또 덧그리며 아이들은 여름을 배웁니다. 머리로가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여름을 통과합니다.
만물이 금색과 녹색으로 빛나는
따뜻한 여름날
장미꽃 피어있는 동안만
세상은 내게 아름다운 것
나는 고향도 모르는 신세지만
내게 소중한 것은 장미꽃 빛을 받으며
하루를 즐겁게 사는 것
세상에 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나는 이 세상에서 행복하네
장미꽃 시들어 떨어지면
나 또한 가야 하지.
- 꿀벌 마야의 모험/발데마르 본젤스/비룡소. 31쪽-
“꽃무지가 노래하는 시가 참 좋아요.”
아이들은 말합니다. 나는 아직 헷갈려 다 외우지 못하는데, 아이들은 책을 보지 않고도 환하게 낭송합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아, 지금 이 아이들 안에 여름이 살고 있구나, 싶어집니다.
사진 속 아이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웃고 있고, 나는 사진 밖에서 그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시간이 그렇게 귀한 줄을. 그저 하루하루가 좋았고, 아이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을 뿐인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됩니다. 아, 나는 참 행복하게 가르치고 있었구나.
칠판 위의 숲은 지워졌지만, 아이들 안의 숲은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 안에도, 그 여름의 숲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다시 학교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조용히 고개를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