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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층주민 Feb 12. 2023

사회부적응자에게 퇴사할 용기를 주십시오

누구는 회사가 좋아서 다니냐고?


조만간 퇴사를 해야겠다. 퇴사를 할 것이다.


23살에서 24살로 넘어가던 겨울방학, 모 대기업 인사팀에서 두 달간의 인턴 경험을 시작으로 내 사회생활은 시작되었다. 그 두 달간의 짧고도 굵직했던 인턴 경험으로 나는 대기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그 당시만 해도 신문방송학을 주전공으로 그 외 어떤 취업준비도 하지 않던 내게 그 당시 경영지원본부 상무님의 뼈 때리는 질문을 하셨다.

‘넌 KBS나 가지, 여긴 왜 왔냐’

이 질문 하나에 8학기에 경영학 복수전공을 고민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소 미친 짓 같기도 하지만 다른 경영학 전공 인턴 동기들처럼 한 큐에 회사 내 용어를 이해하고, 사용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었다. 늦었지만 취업 준비도 할 겸 8,9학기 바짝 21학점씩 채워 듣고 계절학기를 들으면 9학기 내에는 졸업이 가능하겠다는 판단 하에 일을 저질렀다. 주전공 학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절반 이상의 기간을 성의 없이 다녔던 학교였지만 절박한 마음으로 공부한 경영학만큼은 4.3에 가까운 학점으로 졸업을 하게 됐다.


여하튼 경영학 공부도 했겠다, 대기업은 가기 싫어졌겠다, 공기업을 가야겠다며 문과생 기준 공기업 준비를 위해 필수적이라 여겨지는 자격증(토익, 컴퓨터 활용능력, 한국사, 한국어 자격증 등) 등을 취득하며 25살 초반을 나름 내 인생에서 손에 꼽히게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도서관에서 자격증 공부를 하던 나는 옆자리에서 자유로운 영혼미 풍기며 외교부 인턴 자리에 같이 지원하지 않겠냐던 친구의 유혹 아닌 유혹에 넘어가 마감 한 시간 전 서류를 급하게 제출하고, 얼떨결에 그렇게 나는 해외 영사관 인턴생활까지 해 보게 되었다.


이따금 충동적인 내가 저지른 충동적인 일 중 가장 잘한 일이 아닐까 싶다. 내 취향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지

다방면으로 나 자신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내 인생 최고의 6개월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정말이지 한국에서 취업하기가 너무 싫었다.

이러려고 남들보다 한, 두 학기 더 다니며 공부하고 자격증을 준비했나 싶었지만 내 마음은 줄곧 내가 인턴생활을 했던 인도에 있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고, 우연한 기회에 다시 인도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1년 반을 그렇게 더 인도에서 보냈다. 아홉 시에 출근해서 다섯 시 반에 퇴근했다. 출근하면 한국은 점심시간이었고, 한 시간 반의 점심시간을 보내고 오면 한국은 오후 다섯 시 반이었기에 출근해서 여유로운 30분을 보낼 수 있었고 점심 먹고 온 이후에도 여유롭게 내 업무를 할 수 있었다. 퇴근하고는 심신 건강을 위해 요가의 본고장인 인도에서 요가스튜디오로 향했다.


직장 동료와의 호흡도 너무 좋았고, 전반적으론 만족했지만 한국에서 취업 준비를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는 일말의 아쉬움과 더 늦으면 영영 한국에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마음에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왜 그렇게 조급했나, 조금만 더 있다 올걸 아니 그냥 오지 말 것을 하는 후회가 이후에 종종 들었지만 어쩌겠나. 이 또한 겪어보지 않았음 몰랐을 일이라 생각한다.


한국에 들어와서는 정확히 3개월 만에 국내 모 대기업 계열사에 중고신입으로 재취업을 하게 되었다. 대기업은 싫다던 과거의 내 다짐은 그새 잊어버리고 괜스레 마음이 조급해져 지원 가능한 공고에는 다 지원을 했더랬다. 그리고 그곳에서 4년 반 동안 일했다. 우여곡절 겪으며 순탄치 않은 회사생활이긴 했지만 나름 미운 정 고운 정 많이 들어 내겐 고맙고 가끔은 그립기도 한 곳이 되었다. 그리고 작년 8월,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직을 했다. 이전 회사보다 인지도 측면에서나 커리어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해 옮겼다. 물론 처우도 아주 큰 차이는 아니지만 더 나아졌다.


이전에는 감정적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없다면 업무 강도가 어떠할지언정 나는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이곳에도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을까? 싶은 사람들이 있지만 또 그 사람의 입장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행동들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6개월이   순간, 짧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이곳에 입사해서  하루도 마음 편히 숨을 쉬어  적이 없다. 상대적으로 이전 회사에 비해 너무나도 시스템화가 잘 되어있는 이곳에서 나는 부속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237번째 부속품쯤 될까? 얼마 전 희망퇴직과 수많은 사람들을 불합리하게 순환배치 시키는 점 등을 보면서도 퇴사까진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오래 다닐 결심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6개월 동안 계속해서 업무가 바뀌어 현재 세 번째 업무를 맡아 울며 겨자 먹기로 고군분투하며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는 데도 지쳐간다. 추가로 최근 조직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많아지다 보니 관련하여 각종 업무들이 쏟아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나아지겠지 싶었으나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오는 전화와 메일과 쪽지들. 하나하나 올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힌다. 모르는 내용이 수두룩한데, 하나하나 물어보자니 다들 바쁘다. 눈치 보다 겨우 죄송합니다란 습관성 사과를 덧붙이며 질문하기 일쑤. 하루에도 몇 번씩 눈시울을 붉히며 꾸역꾸역 업무를 이어나간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지옥 같은 하루를 시작하려고 억지로 몸을 이끌고, 그렇게 정신없이 아침을 급한 업무 처리로 보낸 뒤 점심시간에도 밥만 급하게 먹고 올라와 일을 한다. 심할 때는 하루에 화장실 한 번 갈 시간도 겨우 만들어 내고 9~10시까지 야근을 하고 11시쯤 귀가한다. 9시 전에 회사로 들어가 10시까지 바깥공기를 쐬지 못하는 요즘. 점점 내 상태가 악화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일하다 죽을 것 같은 피로를 안고 침대에 누워도 불안함에 쉽게 잠에 들지 못한다, 겨우 잠에 들어도 새벽 네시쯤 무의식 중에 눈을 뜨고 왠지 모를 감정에 대성통곡하다 여섯 시쯤 잠에 든다. 다시 일어난 아침엔 빠른 심박수로 열일한 심장이 살짝 아파옴을 느끼며 또 억지로 출근 준비를 한다.


한국 나이로 내 나이 서른셋, 결혼도 안 했고 모아 둔 돈도 별로 없다. 누군가에겐 미친 짓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너무 지쳤다. 이직준비할 힘도 더는 없고, 더는 조직생활을 하고 싶지 않다.


나와 가까운 누군가는 그랬다. 회사 생활 너만 힘드냐고, 너만 안 맞느냐고. 이 세상에 회사 다니기 좋아하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나도 안다. 대부분 월요병을 달고 사는 것 안다. 그렇지만 나처럼 이렇게 한국에서 회사생활을 하는 내내 숨이 막혀 하루가 멀다 하고 퇴사 궁리를 하고 경미한 교통사고를 기다리는 사람이 대부분일까? 그렇다면 그건 더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까, 그렇다면 더더욱 내가 이상한 것은 아니지 않나 싶다.


내가 인도에서 느꼈던 자유로움과 행복은 어쩌면 과열된 경쟁과 존버의 세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면서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희망적인 건 남들은 수군댈지언정 우리 부모님은 때론 나조차도 의아할 정도로 나를 믿어주신다는 점이다. 이 선택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실수가 될 수도 있지만, 결국 어떠한 선택이든 그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 어쨌든 나는 조만간 퇴사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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