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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롱님 Oct 31. 2019

미국 잭오랜턴 줄까, 한국 잭오랜턴 줄까?

한 달 동안 두 번의 할로윈 준비 후기  


9월, 미국에서 인생 첫 잭오랜턴(Jack-O-lantern)을 만나다  

다음 주면 포틀랜드에서 돌아온 지 약 한 달이 되어간다. 포틀랜드를 떠날 때 가장 아쉬웠던 건 일주일간 집을 지켜주던 우리의 첫 잭오랜턴때문이었다. 나도, 아이도 태어나서 처음 만들어본 잭오랜턴. 무서우면서도 귀여운 면 투성의 호박을 한국으로 가져가지 못한다는 게 참으로 슬펐다.


"엄마 펌킨패치도 한국에 데려갈 수 있어?"라고 여러 번 물어봤고, "외국 야채나 과일은 한국에 못 가져가"라고 열심히 설명했지만, '호박씨도 다 파냈는데... 며칠 말렸는데... 옷으로 돌돌 싸서 몰래 가져갈까?'라는 생각이 맴맴 돌았다. 얘도 미국 농산물이라고 하니... 놔두고 가는 수밖에.


포틀랜드에 도착하자마자 펌킨패치와 애플피킹, 와이너리 등 미국에서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죄다 검색했다. 오리건주나 포틀랜드 웹사이트에 올라온 정보들과 구글에 뜬 페이지를 클릭해서 2019 펌킨패치 일정과 위치 등을 살펴봤다. 그중 찾은 곳이 포틀랜드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소비 아일랜드의 The Maize at the Pumpkin Patch 농장. 운이 좋게도 콘메이즈와 펌킨패치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해마다 드넓은 옥수수 밭에 대형 미로 도안을 그린 뒤 옥수수를 심는다. 그 옥수수가 사람 키 두배만큼이나 자라면 미로 단서만 가지고 미로 찾기에 도전할 수 있다. 보통 45분 정도 걸린다는 이 미로를 난생처음 와본 나와 7살 딸이 한 시간 정도에 성공했다. 첫 번째로 들어가 첫 번째로 나왔으니 본전은 거둔 셈. 2019 테마는 오리건주의 유명인(?)인 빅풋이었다. 이 신기한 콘메이즈에 펌킨패치까지 즐길 수 있고, 농장에서 직접 수확한 과일과 야채 등을 판매하고, 기념품 샵도 갖춰져 있었다.


거대해서 공포스러운 옥수수밭 미로찾기도 씩씩하게


미리 수확한 호박을 골라 가거나 직접 호박 밭에 가서 호박을 가져오는데, 첫 펌킨패치이니 직접 고르기로 했다. 한참 걸어서 옥수수밭, 양배추밭을 지나니 저 멀리 오렌지색이 점점이 보여왔다. 얼마나 걸어갔을까 흙투성이 된 채 맘대로 뒹굴고 있는 엄청난 크기의 호박들이 눈 앞에 들어왔다. '와 호박이다!' 소리를 질렀지만,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과연 내가 들고 갈 만한 적당한 사이즈의 호박이 있긴 한 걸까 걱정이 몰려왔다. 호박 넝쿨을 밟고 밟아 한참을 헤맨 끝에 동그랗고, 선명한 주황색의, 적당한 사이즈의 호박을 찾았다. 그 호박을 들고 걸어와 설렘에 무게를 달았다. 7.8 파운드니 3달러란다. 오 이 크기에 3달러라니... 첫 호박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내가 호박을 계산할 때 어린이용 호박 조각 도구를 잘도 찾아 골라왔다. 그걸로 씨도 파고, 눈과 잎도 만들었다.


호박, 옥수수 안녕!


미국은 9월부터 집 앞에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호박을 전시한다. 우리도 집 문 앞 계단 위에 호박을 올려뒀다. 외로울까 봐 미로 찾기 할 때 땅에 떨어진 옥수수 하나도 데려왔다. 며칠 지나 토요일 아침에 잭오랜턴을 만드는데 왜 그렇게 떨리던지... 과일칼로 먼저 뚜껑을 열었다. 호박 향이 퍼져나가며 안에 씨가 한가득 보였다. 마침 호박씨는 집 인근 마당에 사는 닭들에게 주기로 했기 때문에 따로 씨를 모아 꼬꼬에게 가져다주었다. 닭들은 생각보다 호박씨를 맛있게 잘 먹었다.


이제 눈코잎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이가 눈과 잎을 볼펜으로 그려줬다. 그 밑그림을 바탕으로 아이가 조각칼로 파내기 쉽도록 칼로 선을 그어 줬다. 그렇게 조각칼로 쓱싹쓱싹 위아래 움직이더니 삼각형 눈이 빠지고, 지그재그 입이 완성되었다. 엄마와 아이의 첫 잭오랜턴~ 어서 밤이 되어 불을 켜볼 수 있기를, 얼마나 무서운지 볼 수 있기를 기다리며 오후를 보냈다. 그날 밤, 우리 집을 지키는 잭오랜턴을 드디어 만났다. Hello

 

잭오랜턴 3단계, 파기, 그리기, 조각하기
밤이면 나타나는 너


며칠 밤 집을 밝혀주다가 마지막 날 호스트 가족에게 선물로 전달했다. 내가 처음 만들어본 잭오랜턴이라고 소개하자 매우 놀란 것 같았다. 한국에선 보통 할로윈 코스튬 입고 사탕 나눠주는 놀이 위주로 즐긴다고 했다. 한국에선 호박으로 직접 잭오랜턴을 만들지 않는다고 하자, 아주 맘에 드는 얼굴인데 못 가져가서 아쉽겠다고 말해줬다. 마이크는 우리가 한국에 돌아간 이후에도 집 밖에 계속 놔두겠다고 했는데 할로윈인 오늘 밤까지 잘 지내고 있는지 보고싶다.


10월, 한국에서 할로윈 100% 즐기기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온 뒤 나는 미국에서 미처 다 경험해보지 못한 할로윈을 한국에서 제대로 준비해 주고 싶었다. 펌킨패치는 아니지만 아이와 펌킨피킹도 하고, 잭오랜턴도 만들고, 할로윈 분장도 하고, 집집을 돌아다니며 트릭오어트릿도 하고... 나와 비슷한 성향의 엄마들과 뜻을 모아 아이들을 위해 즐거운 된 할로윈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먼저 제일 중요한 호박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다 한국엔 미국같이 샛 주황 호박이 없음을 발견하고는 직접 시장에 나가보기로 했다. 5일마다 열리는 모란시장을 방문해 호박만 수소문했다. 주로 호박즙 만드는 늙은 호박이나 초록색 단호박 외에 그런 호박은 없다고 하며 저기 안에 호박 아저씨에게 가보란다. 그렇게 물어 찾아간 곳에서 주황색 빛의 약으로 쓰는 호박이 있긴 하다는 희소식을 듣게 되었다. "단호박 정도 되는 사이즈인데 3~5,000원 정도이니(미국보다 비싸다) 필요하면 다음 장날에 가져올게요. 이맘때쯤 물어보시는 분들 있어 몇개 따와서 팔아요"하시길래 "네네 많이요. 한 10개요"라고 했다. 5일 뒤 나와 아이랑 다녀올 펌킨피킹에 몇몇 엄마와 아이들이 더해져 꽤 규모가 큰 나들이가 되었다. 아이들이 직접 호박을 고르는 재미부터가 할로윈의 시작이니까! 작은 호박을 골라 각자 개성의 잭오랜턴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한국에서 찾은 오렌지빛 호박 (제공: 호박사장님)


미국에서 코를 못 파줬다며 이번 잭오랜턴엔 눈코잎을 모두 그려 조각했다. 일주일 전에 조각했더니 호박이 시들면서 수축해버려 뚜껑이 안으로 쏙 빠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뚜껑 아래 종이를 받히는 응급처치를 한 뒤에 할로윈에 사용할 예정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트릭오어트릿(Trick-or-treat)을 할 할로윈 모험 지도를 만들었다. 아파트 단지 내 4집에 2개의 놀이터를 더해 총 6곳에 트릭오어트릿 장소를 표시했다. 4살부터 7살까지 10명의 아이들이 직접 장소를 찾아와 사탕을 받아가는 미션이다. 나의 똥손으로 그려진 호박, 유령, 거미, 고양이 등이 지도다운 지도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이 엄마표 할로윈 지도는 아래 지도로 레벨업 ^^


아이들은 제각각 할로윈 복장을 입고, 엄마들은 모험 지도의 마지막 미션 집에 모여 데코레이션과 간식을 준비할 예정이다. 한국답게 귤과 감에 몬스터 얼굴을 그리고, 할로윈 장난감으로 놀아볼 참이다. 물론, 음악도 필수. 오랜만에 CD장에서 크리스마스의 악몽과 유령신부 OST를 꺼냈다. 매를린 맨슨 버전의 This is Halloween 노래가 며칠 전부터 입에 맴돌아 아이와 계속 불렀는데, 진짜 할로윈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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