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 2020년 2월 26일
#디지털카메라
신랑도 졸업 및 입학 선물로 뭔가 해주고 싶다며 문자가 왔다. 나는 제일 먼저 디지털 피아노가 생각나서 답장했다. 그런데 가격대가 높았다.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스마트폰 대신 버스카드를 선물한 엄마에게 꽁이는 나중에 꼭 카메라가 있는 핸드폰을 사달라고 했었다. 친구들과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싶다고. 신랑에게 얘기하니 수중에서도 촬영할 수 있는 어린이용 디카를 골라왔다. 뭔가 20년 전 디카가 보급되던 시절 나의 첫 디카가 생각나기도 했다. 니콘 쿨픽스라니 :)
노란색의 예쁜 카메라는 며칠 지나 도착했고 꽁이는 빨리 완충되지 않는다며 조급해했다. 카메라의 몇 가지 기능을 설명 듣고 나서 본인의 앵글로 집안 이곳저곳을 찍기 시작했다. 친구 집 가는 길, 친구의 얼굴, 그리고 엘사 안나 놀이, 몰랑이 졸업사진 등을 사진과 영상으로 찍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욕조에서 물놀이하며 수중으로 촬영해보기도 했다.
#같은앵글 #다른느낌
분명 나랑 꽁이가 같은 앵글로 사진을 찍었는데, 나 보다 더 멋진 사진을 꽁이 카메라에서 발견할 때가 있다. 나무와 꽃을 보는 시선, 고양이를 바라보는 마음, 엄마 아빠를 사랑하는 순간이 담겨 있다. 꽁이 카메라의 메모리를 빼서 내 노트북에 옮길 때 나는 궁금한 마음에 미칠 지경이다. 빨리 큰 화면으로 보고 싶다.
#레트로선물 #맥북
10년 전인 2010년, 회사에서 한 달간 리프레시 휴가를 받았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지내기로 하고 맥북을 사러 용산 전자상가에 갔다. 여러 가지 맥북 중에서 가장 베이직한 아이템이었던 맥북 화이트를 골랐다. 이 맥북을 가지고 토론토에서 뭐라도 할 기세였지만, 그냥 채팅과 인터넷 서핑 정도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맥북은 신랑이 가끔 쓰다가 어느 새부터 잠들고 있었다. 사상 초유 코로나19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이 3주간(지금은 5주) 연기되면서 학교에서는 자기주도학습 사이트가 적힌 알림장을 보내왔다. 예비초딩인데도 뭔가 수업을 미리 들어야 하나 싶어 그중 가장 익숙한 ebs 사이트에 로그인을 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들을 수 있는 국영수 외에 다양한 과목들이 인강으로 올라와 있었다. 집콕 중에 국어 1-1, 수학 1-1, 영어 파닉스를 한 강의씩 들어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맥북을 꺼내보았다. 최근 몇 년간 초경량 노트북을 사용해서 그런지 맥북의 무게가 쌀 한 가마니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옮길 때마다 손목이 뻐근하고 팔꿈치가 에려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10년 전 모델이라 그때로 초기화시키고 꽁이 이름으로 로그인 한 뒤 맥북 사용법을 가르쳐 줬다. 기본적인 전원 켜기/끄기, Safari 찾기, 그리고 Pages 열기 등 말이다.
맥북은 꽁이의 손으로 다시 태어났다. 인스 노트에 모아뒀던 각종 스티커들을 가져와서 맥북을 꾸미기 시작했다. 엄빠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덕분에 이 사과 로고를 잘 안다. 이 사과가 왜 한쪽이 베어 먹은 것처럼 되어 있는지, 애플과 픽사의 주인공 '스티브 잡스'라는 분의 이야기를 동화책으로 읽은 적이 있다. 아이는 사과 주변으로 사과들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고양이, 엘사, 유니콘 등 다양한 소재들로 데코 했다.
#너의제페토
벌써 스마트폰에 중독된 아이들이 꽤 있다. 어른 8명, 아이 6명이 떠난 졸업여행에서도 몇몇 아이들은 게임이나 틱톡 같은 SNS를 하느라 친구들보다 핸드폰 찾느라 바빴다.
꽁이도 돌아와 게임을 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그동안 게임을 전혀 안 한 건 아니다. 아이패드로 아이가 할 수 있는 미로 찾기나 숨은 그림 찾기 같은 게임을 깔아주기도 했고, 헤어 살롱 같이 미용실 놀이 앱도 다운로드하였다.
8세 여자아이에게 어울리는 게임을 찾아봤다. 친구 엄마가 숙제하고 나면 제페토를 조금씩 시켜준다기에 나도 제페토를 오랜만에 다시 다운로드하였다. 싸이월드 미니미 같은 아바타를 꾸며봤던 우리 세대라면 제페토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크진 않다. 꽁이와 닮은 아바타를 만들고 꾸미고 사진 찍는 정도라면 칭찬 스티커 같은 보상용으로 어떨까 생각해봤다. 꽁이 얼굴과 닮은 아바타를 생성하고 옷과 구두를 골라 입혔다. 방도 꾸몄다.
본의 아니게 나는 아이 몰래 매일 제페토에 출첵을 한다. 그렇게 일주일 모은 코인으로 일주일에 한 번 아이는 아바타 옷을 바꿔 입힌다. '나만 고양이 없어' 시대가 된 요즘, 아이의 자존감은 지켜주면서 선을 지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 과연 없을까? 뭔가 제페토를 보여주면서 나 역시 내 선을 이미 넘은 느낌이다.
#카공족놀이
우린 카(페에서)공(부하는)족(사람들)이 되었다. 물론 진짜 카페를 가지는 못하고, 집에 긴 나무 테이블 위에서 카공족처럼 각자 하얀 노트북을 켜고 할 일을 한다. 나는 브런치에 '8살, 벚꽃입학생'이란 주제로 글을 쓰며 봄방학을 의미 있게 보내려고 애쓴다.
꽁이 맥북은 예전 OS라 유튜브도, 넷플릭스도 잘 안 된다. 다행히도 ebs 인강은 재생이 된다. 가끔씩 수업을 듣기도 하고, 흰 화면에 독수리 타법으로 일기도 쓴다. 몰래 쓴 뒤에 엄마한테만 읽어보라고 보여준다. 그러고 나서 저장해달란다. 요즘은 한컴타자연습을 하고 있다. 손가락 8개로 키보드 위 한글 자음과 모음을 자유자재로 치기 시작하면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법을 익힐 수 있을 것 같다.
부디, 좋은 생각과 감정이 담긴 글로 세상과 소통하길 바란다. 온라인 세상 속 아이의 자아를 올바르게 키워주는 것도 부모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