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6 2020년 3월 17일
#나는_달릴때가_가장_행복합니다?
말아톤 봄방학이다. 3월 9일로 1주일 늦추더니, 23일로 2주를 더 연기했다. 그리고 다시 4월 6일로 2주가 더 미뤄졌다. 마라톤을 뛰는 기분이다. 3km 걷기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참여했는데 잘한다며 10km만 뛰어 보란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42.195km를 완주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난 페이스 조절에 실패했고 페이스 메이커가 필요하다.
'2 달인 겨울방학도 있는데 겨우 몇주를 못 지내겠어?' '제주도랑 미국에서도 둘이서 한달살기 해봤는데...' 생각으로 이 상황을 쉽게 생각했다. 이건 일반적인 방학도, 한달살기도 아닌 강제 방학이었다. 요가를 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도, 시장이나 병원을 가야 하는 엄마로서의 일들도, 회포를 풀 수 있는 친구와의 카페 탐방도, 키즈카페에서의 자유도, 그리고 남이 해주는 밥이 먹고 싶을 때 이용할 수 있는 외식 찬스도 사라졌단 얘기다.
#넷플릭스&유튜브챤스
아이와 온전하게 보내는 24/7 시간이 얼마만인지 생각해보았다. 아이를 낳고 회사에 다시 나가기까지의 1년간의 독박 육아 시절이 떠올랐다. 갓난쟁이를 챙기느라 아이가 먹고 자고 깨어있는 시간표에 내 모든 것을 올인했던 그때와 다를 바가 없다.
그래도 수월하다면 넷플릭스와 유튜브 찬스가 있다는 것. 이를 잘 활용해보기로 했다. 유튜브로는 내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만화영화를 찾아보고 있다. '모래요정 바람돌이'를 시작으로 '빨강머리 앤'을 본다. 이 두 만화영화는 내가 초등학생 때인가 보고, 고등학생 때쯤에 재방송을 해준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와서 이 만화영화 한편씩 보고 학원에 갔었다.
타이어를 한 입에 먹고 물을 싫어하는 이 고양이 같은 바람돌이는 400년 동안 어린이들의 소원을 엉뚱하게 들어주는 재미가 있어 아이가 매우 좋아한다. 지나가다 타이어 가게만 봐도 바람돌이가 좋아하겠다며 흥분하며 말한다.
그리고 초록지붕 집과 주변의 나무와 꽃, 그리고 고양이가 사랑스러운 빨강머리 앤에서는 '글쎄다'를 자주 말하는 매튜 아저씨를 무척 사랑한다. 말수가 적어 마릴라의 물음에 '글쎄다'만 말하는 매튜 아저씨가 재미있나 보다. 그 옛날 캐나다에서 고아였던 아이가 마릴라와 매튜의 가족이 되어 다이애나를 마음의 벗으로 사귀고 길버트와 선의의 경쟁을 하는 모습은 언제나 나를 어린 시절로 보내준다. 그렇지만 그때와 다르게 나는 마릴라나 매튜의 목소리에 울컥한다. 이 둘이 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품어주는 모습을 본받고 싶다.
그 외에도 넷플릭스에 올라온 지브리 만화영화들 중에 꽁이 수준에 맞는 것을 골라보았다. 오랜만에 토토로도, 마녀 배달부 키키도 다시 보기 했고 벼랑 위의 포뇨가 올라오길 기다리는 중이다. 물론 몰랑이, 실바니안 패밀리, 페파 피그, 인어공주도 꾸준히 보고 있다.
오랜만에 심야 영화관 놀이를 했다. 저녁을 일찌감치 먹고 목욕한 뒤 거실에 이불을 깔아놓고 팝콘과 음료수를 먹으며 인형 친구들과 만화영화를 보다가 자기로 한 밤이다. 꽁이가 영화관에 초대된 친구들에게 영화표와 간식 쿠폰을 준다. 지정된 자리에 앉아 우리는 1시간가량 빨강머리 앤을 관람했다.
#만화책타임
마라톤 육아 중 하루 1~2시간 페이스 조절해주는 유튜브, 넷플릭스 덕분에 나는 만화책을 다시 꺼내보고 있다. 책장 속 오래되어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만화책들이 빛을 발하는 중. 비디오방이 폐업할 때 떨이하던 만화책부터 돈 내고 오랫동안 모은 책들도 있다. 꽁이가 만화영화를 보는 동안 '인어공주를 위하여' '베르사이유의 장미' '오늘의 네코무라 씨' 등을 틈틈이 읽는다. 우리 집에도 이 귀여운 가정부냥이가 있으면...
커피와 과자, 만화책이 주는 짧은 힐링이 달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