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후세시 Jul 10. 2022

눈물의 6월 해외 취업 준비 근황

30대 영국 워홀러의 해외 취업 (존버) 이야기

구직 전략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고 다시 square one부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스트레스를 안 받았다고 하면 정말 거짓말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이렇게 하는 것이 맞나, 기분이 왔다 갔다 롤러코스터를 타곤 했다. 근데 예전과 달라진 점은 더 이상 그 감정에 오랜 시간 매몰되지 않는다는 것. 비정상적 상황에서 힘들어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라는 글을 어디서 주워듣고 지금 이런 상황에서 스트레스는 불가피 한 것이라며 매일매일 내 스스로를 다독였다. 편한 것 다 버리고 내가 선택한 인생이니까 내가 책임져야지. 나 영국에 와서 정말 멘탈 세졌다. 여하튼, 6월 한 달 동안 있었던 구직 관련 소식/근황을 업데이트하고자 한다. 물론 꽤 희망적인 소식들이다.


우선 변경한 구직 전략 사항은 크게 4가지였다. 1. 디지털/테크 펌 쪽에 맞추어 이력서 업데이트 2. 최소 100명 이상의 기업에만 지원하기 3. 직무 Narrow down 하기 - 나 같은 경우는 디지털/이커머스 (특히 디지털 마케터, 데이터 애널리스트) 쪽으로 범위를 더 좁힘 4. 아무리 급해도 아무 데나 지원하지 않기/타협하지 않기 - 나도 사람인지라, 특히 4번이 제일 힘들었는데 타협하지 않길 정말 잘했다. 이유는 아래에 계속! 6월 총 결산이니 만큼, 총 6가지 테마로 정리해 보았다. 



  연락이 정말 많이 오기 시작했음

  인간은 적응의 동물 - 영어 면접 이야기

  타협하지 않기 위해 허벅지 찌른 순간들

  동생의 방문과 함께 찾아온 머피의 법칙

  구직은 남자 찾기와 같다(?)

  그래서 현재 남은 카드들



1. 연락이 정말 많이 오기 시작했음

같은 이화 친구 중에, 스웨덴에서 워홀로 정착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조언을 십분 활용해서 이력서를 가독성 좋게 업데이트했고, 수정된 업데이트로 지원을 하기 시작했더니 놀랍게도 연락이 정말 많이 오기 시작했다. 헤드헌터는 물론이고 서류 합격했으니 면접을 보고 싶다는 메일도 많이 받았다. 예전보다 적중률이 확실히 높아졌음을 체감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영국 구직 시장의 Openness에 깜짝 놀랐다. 물론 내가 그쪽으로 포커스 해서 지원을 하기도 했지만 이 회사에서 나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디지털/테크 펌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패션 업계에 쭉 있었다는 사실보다는 내가 실제로 한 업무와 경력에 대해 appreciate 해주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일일이 다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주에 1-2회씩은 꼭 면접을 보았던 것 같다. 연락이 온 회사 모두 다 최소 임직원 100명 이상, 전 세계 각지에 지사를 둔 글로벌 기업들이었다.


2. 인간은 적응의 동물 - 영어 면접 이야기

영국에서 첫 면접을 보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영어로 면접을 본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떨리고 걱정되어서 간단한 30분 면접도 며칠을 공들여서 준비를 했다. 예상 질문을 모두 정리해야 마음이 편했고 일일이 답변까지 써서 입에 익을 때까지 여러 번 연습했다. 이전 글에도 여러 번 언급했듯이 한국에서 나는 면접 준비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던 사람이었는데 여기서는 모국어가 아니라는 사실이 나의 발목을 그렇게 잡았다. 근데 인간은 정말 적응의 동물이라고, 그동안 면접을 꽤 많이 봐서 트레이닝이 되어서 그런지 이제는 1차 HR 면접까지는 1시간 정도 가볍게 그냥 슥 훑어서 면접관과 너스레를 떠는 정도의 레벨까지 발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직도 많이 떨리고 긴장되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다 보여주고 오자!라고 결심하니 면접에 임하는 마음이 한결 더 편해진 것 같다. 며칠 전에는 40분 동안 프레젠테이션 + 임원들의 질문 폭격에도 털리지 않고 살아남았을 정도니, 나 정말 많이 발전했다.


3. 타협하지 않기 위해 허벅지 찌른 순간들

해외 취업 준비를 하다 보면 자존감이 하루에도 수십 번 바닥을 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구직 기간이 점점 길어질수록 전 세계에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기회를 찾기 위해 모이는 런던에서 내 자리가 과연 있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가끔 타협을 종용하는 악마의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바로 '후려치기'라는 악마이다. 영국에서는 보통 1차 면접에서 서로 연봉 레인지를 투명하게 오픈하는 편이다. 나는 런던에 오기 전부터 내가 최소 정한 연봉 목표가 있었다. 한국에서 어떻게 일궈낸 내 몸값인데, 특히나 런던의 물가를 감안했을 때, 한국에서 유사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으로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데 간혹가다 말도 안 되는 연봉을 제시하는 기업들이 있었다. 내가 연봉에 실망을 하는 눈치를 보이면 그들도 '아, 근데 너도 얼른 일을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라며 허울 좋은 말들로 나를 설득했다. 그리고 나도 사람인지라, 구직 기간이 점점 길어져 스트레스 받을 땐 그냥 이 기회라도 일단 잡아야 하나 싶을 정도로 혹했던 순간이 있었는데 결론은 허벅지 찔러가며 다 거절했다. 그렇게 처음부터 거절한 곳이 못해도 3-4곳은 되는 것 같다. 근데 결론적으로 너무 잘 한 결정이었다. 왜냐면 훨씬 더 좋은 연봉을 제안하는 곳들과 지금 계속 면접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내 가치를 오롯이 알아주는 곳에서 일하자'를 항상 되뇌어야 한다. 그러려면 스스로가 내 가치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는데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얼마나 똑똑하고 일을 잘하는 사람인데! 나를 데려가는 회사는 아마 쏘 럭키 일 것이라며 내 스스로를 다독였다.


4. 동생의 방문과 함께 찾아온 머피의 법칙


6월 결산 중에 가장 중요한 이슈는 동생의 방문이었다. 내가 영국에 오기 전부터 계획했던 일정이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백수일 것이라곤 우리 둘 다 상상도 못했지만(?) 동생이 6월 22일부터 7월 5일까지 2주 정도 런던에 머물렀고 3박 4일 스위스 여행까지 다 계획을 해놓은 상태였다. 근데 꼭 이럴 때 인생은 나에게 시련을 준다. 정말 거짓말처럼 동생이 오기 하루 전, 내가 너무 가고 싶어서 커버레터까지 쓴 테크 펌에서 면접을 보고 싶다고 연락이 온 것. 6월 21일 화요일, 부랴부랴 화상으로 1차 HR 면접을 봤는데 내가 너무 마음에 든다며 그 자리에서 바로 이번 주 내로 하이어링 매니저와 2차 면접이 가능하냐고 묻는 것이다. 하이어링 매니저는 말 그대로 나를 'Hire'하는 굉장히 중요한 사람으로 보통 면접에서 실무 이야기로 깊이 들어가기 때문에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6월 27일 월요일에 스위스로 떠나야 했기 때문에 여행까지 가서 면접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서 6월 24일 금요일에 보고 싶다고 회신했다. 그리고 낮 동안 동생과 관광을 하고 동생이 잠든 새벽에 면접 준비를 해야 했다. 이틀 동안 새벽 2시 넘어서 잠들었고, 부담감에 스트레스 받아서 잠도 푹 못 잤다. 그렇게 금요일 아침 9시부터 하이어링 매니저와 1시간 동안 굉장히 빡센 면접을 봤고, 여행 가기 전에 매를 먼저 맞아서 다행이라며, 이제 마음 편하게 스위스가서 놀자는 생각뿐이었는데, 이게 웬걸, 스위스에서 첫날 도착한 메일 한 통....

면접에서 털렸다고 생각했는데 피드백이 Very positive인 것도 놀라웠고 다음 3차 스테이지가 또 프레젠테이션이라는 것에 PTSD가 오는 듯했다. (5차 프레젠테이션 면접에서 최종 탈락한 충격이 아직도 채 가시지 않았는데...) 그리고 스위스에서 맘 편히 즐겁게 놀기는 글렀구나 생각에 한숨부터 나왔다. 그래도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갔다는 것은 당연히 좋은 소식이니까, 동생과 함께 간단히 축하하고 과제에 대해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 최대한 스위스에서 즐거운 시간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프레젠테이션 일정은 양해를 구하고 동생이 돌아간 이후로 잡았다.


그리고 정말 거짓말처럼, 다른 곳에서도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면접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덕분에 스위스에서 전화받고 면접 일정 조율하고 메일 쓰고 정신적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스위스에서 영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낮에 관광 + 밤에 면접 및 프레젠테이션 준비 모드로 들어갔다. 매일 너무 피곤했고 정신적으로 부담감과 스트레스 때문에 힘든 시기였지만 동생이 많이 도와주었고 그 모든 상황을 이해해 준 동생에게도 너무 고맙다. 그리고 동생이 와서 이 모든 운이 온 것 같기도 하다. 


무사히 동생을 7월 4일에 공항까지 바래다주고,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서 7월 5일에 첫 대면 면접으로 데이터 애널리스트 면접 1개, 7월 6일 꼬박 밤을 새우고 7월 7일 목요일 3차 프레젠테이션 면접을 무사히 마무리했다. 그동안 정말 힘든 스케줄과 정신 상태였지만 결국 어째어째 또 다 해냈다는 사실이 굉장히 뿌듯했다. 그래 사람은 자고로 힘들어야 성장하는 법이지. (그래도 이제 그만 힘들고 싶기도 함,,,,)


5. 구직은 남자 찾기와 같다(?)


그동안 구직 준비하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는, 직장을 구한다는 것은 흡사 연애 대상 찾기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구직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뿌리고 지원을 하다 보면, 다양한 회사들에게서 연락이 오기도 하지만 무수히 많은 거절 통보를 받는다. 거절 메일을 받기라도 하면 다행이지, 대부분의 회사들은 그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는다. 나의 경우엔, 3월부터 구직을 시작해서 6월까지 거의 4개월 동안, 링크드인 통해서 지원한 숫자를 보니 무려 400개가 넘는다. 최근에서야 구직 전략을 변경해서 적중률이 높아졌지만 초반에는 너무 간절했기 때문에 될 대로 되란 식의 마인드로 되는대로 미친 듯이 지원했다. 400개 중에 연락이 온 곳은 아마 5%도 채 안 될 것이다. 당연히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쯤 되면 나에게서 문제를 찾게 될 수밖에 없다. 나도 그랬었다. 내 경력이 혹시 부족한가? 내가 외국인이어서 안 뽑는 건가? 등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나에게 불합격을 통보한다고 해서 혹은 나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그 회사보다 못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내가 가고 싶고 관심이 있는 회사여도 그 회사가 당장에 사람을 뽑지 않으면 지원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에 타이밍도 매우 중요하다.


연애와 비슷한 메커니즘이다. 좋아하는 상대에게 차였다고 해서, 혹은 헤어졌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보다 부족한 것이 아니다. 단지 나와 그 사람이 맞지 않았던 것이고 그 사람이 이상적인 파트너로 찾던 사람이 내가 아니었을 뿐이다. 반대로 생각해도 똑같다. 상대방이 내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내가 그 사람과 Compatible 하지 않다고 생각이 들면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시간 낭비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이득이다. 그리고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도 당장 그 사람의 옆에 누군가가 있으면 그림의 떡일 뿐이지 그 사람이 시장에 다시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나에게 맞는 사람(회사)이 어딘가엔 있고, 언젠가는 내 앞에 뿅 하고 나타나서 열렬히 사랑할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사실 '3번 - 타협하지 않기 위해 허벅지 찌른 순간'과 연결되는 내용이기도 한데, 그래서 급하다고(=외롭다고) 아무 데나 들어가면(=아무나 만나면) 정말 큰일 난다. 절박한 심정이어도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하루에도 몇 번씩 되새기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타협할 수 있는 부분은 어떤 것인지 등 계속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을 추천한다. (연애에서도 물론 마찬가지이다.) 5월에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회사에 최종 불합격했고 그 이후에도 수많은 회사들에게서 거절 메일을 받았고 아직도 받고 있지만, 좌절하지 않고 계속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 나섰더니 지금은 너무 감사하게도 그때 떨어진 회사들보다 더 좋은 조건의 회사, 내가 더 원하는 기회들이 다시 찾아왔다. 회사가 나를 면접을 통해서 알아가듯이 나도 그 회사를 알아간다고 생각하고, 나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알아주는 곳(사람)에서 일해야(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6. 그래서 현재 남은 카드들


그래서 현재 내가 가진 카드들은 총 4개이다.  

    테크 펌 A/Digital Account Manager/임직원 수 1,800명/총 4차 면접 중 3차 프레젠테이션 완료, 현재 결과 기다리는 중  

    파이낸스 펌 B/Data Analyst/임직원 수 50,000명/최종 면접 완료, 현재 결과 기다리는 중  

    테크 펌 C/Project Manager/임직원 수 4,500명/차주 1차 면접 앞두고 있음 

 아마존/임직원 수 UK에만 70,000명 이상/바로 어제 Availability 회신 후 기다리는 중

놀랍게도 4번은 어제 오전에 메일을 받았다. 아마존이라니... 내가 언제 아마존 영국 지사에서 면접을 보겠어요??? 이건 떨어지더라도 나중에 후기 쓸 생각하니 심장이 쿵쾅거림!!! 꺅!! 전 세계 제일 잘나가는 원 오브 테크 펌에서 나라는 사람이 궁금하다는데, 그동안 받은 수많은 거절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바로 위의 글을 입증해 주는 좋은 예시인 것 같다.


그간 내가 수많은 거절 통보를 받았던 것은 Blessing in disguise(전화위복) 이었다. 나와 맞는 회사가 그동안 안 나타났 뿐이지 내가 모자라서가 절대 아니라는 것.


내가 모든 카드들을 이렇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이유는, 결과를 떠나서 나의 모든 일련의 과정들을 기록하기 위함도 있지만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모든 워홀러들/해외 취업 준비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어서이다. 난 영국에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왔고, 그래서 기존에 일했었던 모든 것들을 버리고 다른 새로운 기회들에 굴하지 않고 도전했다. 나도 내가 저렇게 규모가 큰 글로벌 기업들과(그것도 나랑 가장 거리가 멀다고만 생각했던 테크 펌들) 면접에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런던은 정말 생각보다 많이 열려있는 곳이다. 


나도 할 수 있으니 여러분들도 할 수 있어요! 조만간 좋은 소식을 들고 올 수 있길! 런던에서 얼른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고 싶다. 으으으 Finger Crossed!!




매거진의 이전글 가시밭길 행복하게 걷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