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워킹홀리데이 정착기 - 런던 사무직 취업 후기 + 타임라인 정리
드디어 이 순간이 왔다. 영국에 온 지 정확하게 167일 만이다. 소감? 이루 말할 수 없이 정말 x100 기쁘고 무엇보다 순전히 내 힘으로 성취해낸 거라 더 뿌듯하다. 정말 극적으로 모아 놓은 돈이 마침 똑떨어졌고 이번 달에 취직을 못하면 알바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늘 그랬듯이 신기하게도 인생은 바닥을 쳤을 때 뭔가를 해내게 만든다. 그동안 마음고생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2012년 영국으로 처음 교환학생을 왔을 때부터 런던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속으로 늘 했는데 그 꿈이 10년 만에 진짜로 현실이 되었다. 2년짜리 워킹 홀리데이 비자 하나만 믿고 왔고 심지어 내가 해왔던 일, 직무 모두 바꿔서 런던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겠다는 호기로운 다짐을 했다. 그래서 더더욱 쉽지 않았던 여정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 우선은 간단한 후기와 타임라인을 정리해 보았다. 영국에서 나처럼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사무직에 취업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었으면 한다.
대학교에서 의류학과를 전공했고 패션 업계에서 상품 기획 MD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일 자체는 즐거웠다. 운 좋게도 그동안 프로젝트나 신규 브랜드 론칭하는 일을 많이 해서 지루한 것을 딱 싫어하는 나에게는 적성에 딱 맞는 일이었다. 그러나 일을 하면서도 커리어의 한계가 계속 느껴졌다. 그래서 나중엔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내 커리어의 최종은 어딜까? 의구심이 자꾸 들었다. 이미 대기업, 외국계, 스타트업 모두 다 경험했었기 때문에 이직에 큰 욕심도 없었을뿐더러 특히 팬데믹 영향으로 업계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2년 가까이하다 보니 커리어를 바꾸어야지 이 고민이 끝나겠구나 생각했다. 제조업은 무너지는데 이커머스나 IT, 디지털 관련 업계는 고공행진을 했다. 누구나 '디지털라이제이션(Digitalisation)' 에 목숨을 걸었고 연관된 경력과 스킬을 가진 사람들은 어딜 가든 환영받았다. 그리고 나는 궁극적으로는 디지털 노매드가 꿈인데 나는 정통적인 제조업 베이스의 인력이었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은 현장업에 가까운 일이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재택근무를 한 적이 손에 꼽으니..) 지금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여기가 내 커리어 무덤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영국에 가서 IT나 테크 인더스트리로 갈 것, 디지털/이커머스 관련된 직무로 바꿀 것. 구직이 아무리 힘들어도 패션 업계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
그렇게 뚝심 있게 흔들리지 않고 밀고 간 결과, 디지털 마케팅(특히 퍼포먼스 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테크 펌에 Merchant Account Manager로 최종 합격하게 되었다!!! 이 회사는 원래 Affiliate Marketing(제휴 마케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었는데, 점점 성장하면서 작년 11월에, 뉴욕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에 인수가 되었다. 나는 그들의 유럽(런던) 지사에서 근무를 하게 되는 셈이다. 마지막 최종 면접을 하러 오피스에 갔는데, 사무실이 정말 으리으리하고 또 최근에 리노베이션을 했는지 가구며 인테리어며 너무 예뻐서 진짜 여기서 일하면 기분 째지겠다고 생각했음.
내가 하게 될 일은,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광고주(Merchant)들을 관리하는 역할인데, 퍼포먼스 마케팅과 관련된 테크 펌이다 보니 데이터 분석 능력이 필요했고 또 광고주(주로 브랜드) 들과 함께 일을 해야 하는 직무라 브랜드 경험도 필요했다. 한국에서 브랜드 전략가/MD로 일하면서 데이터를 다루고 브랜드 매니지먼트를 했던 경험이 아주 큰 자산이 되었다. 이 모든 게 다 지금을 위한 빅 픽처였다니.. 영국에 오기 전부터 내가 고려했던 2가지 - 테크 펌, 디지털 관련 직무 -를 모두 가진 곳이라, 지원하면서부터 정성스레 커버레터까지 쓴 곳이었는데 결국 이렇게 마지막 최종 후보자로 선정되어서 8월 22일부터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런던에서 커리어를 새로 만들어갈 생각을 하니 설레고 기대된다.
나는 주로 링크드인을 통해서 지원했다. 다른 구직 사이트보다 훨씬 up-to-date 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매일 정말 많은 포지션이 올라온다. 예전부터 블로그에 썼지만 처음에는 닥치는 대로 막 지원했다. 그리고 도중에 전략을 바꾸기도 하면서 선택과 집중을 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거의 5개월 동안 절대적인 양으로 따지면 총 442곳+a의 직무에 지원을 했고 여기서 연락을 받은 곳은 10곳이 채 되지 않는다.
취업은 0 아니면 100이다. 아무리 많은 면접을 봐도 결국 최종 합격하지 않으면 0이 되고, 반대로 하나라도 합격하면 100이 된다. 나의 글을 그동안 읽은 사람들은 아마 알겠지만, 처음에 5차까지 간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면서 뼈저린 실패를 경험하고 멘탈이 무너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면접을 꽤 봤는데 나도 사람인지라 아무 기약 없이 면접만 자꾸 보다 보니 희망 고문에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일일이 세보진 않았지만 면접 횟수로만 치면 20번 정도 본 것 같다. 그래도 긍정적인 것은, 면접을 자꾸 보다 보니 나중엔 익숙해졌다는 것. 면접 후기는 따로 글을 쓰도록 하겠음.
그동안 무수히 많은 탈락을 경험했지만 결국엔 한 곳에 최종 합격을 했고, 이 회사는 나의 모든 체크 리스트에 부합하는 회사이다. (심지어 최종으로 떨어졌던 회사 보다 훨씬 좋은 곳 흐흐) 구직은 개인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운도 필요하다. 적절한 시기에 나에게 맞는 회사가 잘 나타나준 것 같아서 정말 감사하다.
아마 모두가 가장 궁금해하는 현실적인 부분이 아닐까 싶다. 아직 입사를 한 것도 아니고 영국은 수습 기간이 6개월이나 되기 때문에 아직 "우리 회사"라고 자랑할 짬은(?) 못되지만 계약서상에 적힌 내용들, 그리고 인사팀 통해서 전달받은 부분들만 팩트로 이야기해보겠음.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베네핏이 꽤 괜찮은 편이라고 했다.
연봉+보너스: 자세한 숫자는 기재할 수 없지만, 영국에 오기 전 2022년 목표를 세우면서 영국에서 이만큼 받아야지! 하는 목표 연봉보다 훨씬 상회하는 연봉을 받고 입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보너스도 나쁘지 않아서 영끌하면 꽤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스타트 연봉으론 나쁘지 않은 액수이지만, 영국에는 고액 연봉자들이 정말 많고 내 경력이 7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 테크 업계에선 평균 연봉인 듯하다. (이렇게 사람이 욕심이 끝도 없다..) 게다가 런던 물가 감안하면 이것도 사실 부족해... 이 회사는 연봉을 매년 리뷰 한다고 하니, 성과로 보여줘서 얼른 몸값을 더 높여야겠다고 생각했다. 5년 안에는 6 digit (숫자 여섯 자리) 연봉으로 받고 싶다.
하이브리드 (Hybrid) 근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인데, 주에 1-2회만 오피스에 출근하면 되고 나머지는 다 재택근무이다. 영국은 대부분의 회사들이 이 근무 형태로 전환하는 추세이다. 여하튼 이로써 디지털 노매드의 꿈에 한 발짝 다가섰다.
비자 스폰서십: 나는 2024년 2월에 비자가 만료되는 사람이라 회사와는 Fixed-Term Contract로 계약을 했다. 그리고 HR과 오퍼레터를 주고받을 때 향후 비자 스폰에 대해 물어봤는데 "개런티 할 순 없지만 비자 스폰을 해주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니, 비자 만료 6개월 전에 다시 리뷰 하자"라고 회신이 왔다. 영국에서 정규 취업 비자 스폰은 아무나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승인한 기관/기업 에서만 비자를 줄 수 있다. 그래서 나처럼 이후에 Tier 2 비자 (정규 취업 비자) 취득이 목표라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에 입사하는 것이 유리하다. https://uktiersponsors.co.uk/ 여기서 리스트를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이 회사에 얼마나 다니게 될지는 모르지만 (벌써부터.. ㅎ) 어쨌든 내 목표는 영주권 취득이기 때문에 최대한 비자 스폰에 문제가 없는 방향으로 계획해 볼 예정이다.
그 외: 25일 휴가, 스톡옵션, 사내 교육, Private 헬스케어 패키지, Insurance, 개인연금, 무료 점심, 목요일 무료 술 제공 등등
정말 지독하게 오래 걸렸다. 5월 말에 지원을 했고 거의 두 달 동안 5차 면접까지 거쳐서 8월 5일에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근데 친구들 말에 따르면 이건 평균적인 기간이라고..) 하필 동생이 6월 말에 놀러 왔는데 그 기간이 겹치는 바람에 2배로 더 힘들었다. 그동안 블로그에서 늘 언급했듯이, 해외 취업의 핵심은 첫째도 인내심, 둘째도 인내심임을 지난 6개월 동안 아주 뼈저리게 느꼈다. 여기도 7월, 8월은 여름휴가 기간으로 구직 시장의 비수기이고 담당자들이 휴가를 떠나서 면접 일정 조율하는 데 애를 많이 먹었지만, 이 회사는 상대적으로 피드백도 빨랐고 HR 담당자가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줘서 마무리까지 잘 할 수 있었다.
* 표시가 실제 면접 일정
5월 31일: 서류 지원
6월 20일: HR에서 서류 합격 이메일 받음
* 6월 21일: 1차 면접 - HR과 스크리닝 면접 - 30분 (Zoom) / 그 자리에서 바로 2차 면접 어레인지 함
* 6월 24일: 2차 면접 - Hiring Manager와 심층 면접 (Zoom) - 45분
6월 27일: 2차 면접 합격 통보 이메일, 3차 프레젠테이션 과제 수령
* 7월 7일: 3차 면접 - Hiring Manager 포함 3명의 임원들 상대로 프레젠테이션, Q&A (Zoom) - 1시간
: 이 사이 기간이 2주 가까이 되어서 솔직히 탈락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모두가 여름휴가를 떠나서 피드백이 늦었다는 후문 ^_ㅠ
7월 19일: 3차 면접 합격 통보, 4차 면접 안내받음
* 7월 26일: 4차 면접 - 같이 일하게 될 팀원 2명과 면접 (Zoom) - 45분
8월 1일: 4차 면접 합격 통보, 그러나 최종 2인 중에 고민이 된다며 5차 추가 대면 면접 제안
* 8월 4일: 5차 면접 - Hiring Manager, 그녀의 Magager와 굉장히 캐주얼한 커피 챗 (In person) - 40분
8월 5일: 저녁 6시쯤에 전화로 최종 합격 통보받음. 오퍼 조건 간단히 안내받고 입사일 조율함
8월 8일: Offer Letter 수령 + 연봉 등 처우 협의
8월 9일: Offer Letter 사인 완료, 여권과 BRP 사본 발송함
8월 10일: 최종 계약서 받음
8월 11일: 최종 계약서 사인 완료
오늘 최종 계약서까지 사인 완료했고 이제 출근하는 일만 남았다. 새로운 일, 새로운 업계, 새로운 사람들... 모든 것이 A whole new world라서 걱정 반 설렘 반이다. 게다가 이제 모든 일을 영어로 해야 하고 새로운 오피스 문화에도 적응해야 한다. 게다가 아직 비자에 묶인 외국인에 수습도 6개월이나 되지만 (영국은 수습 기간에 얄짤없이 잘려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함) 지금까지 잘 해 왔으니까 하던 대로 나답게 열심히 해야지 뭐. 한국인이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 보여주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