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을 위한 5년의 첫 단추
* 커버 사진은 2022년 2월 23일, 편도 티켓으로 런던 가던 날
어제 매니저와의 면담에서 좋은 소식이 있었다. 바로 회사에서 나에게 Skilled Worker Visa (영국 정규 워킹 비자)를 스폰 해주기로 결론이 났고 인사팀에서 곧 공식 서류를 준비할 것이라는 것.
사실 비자 이야기는 올해 연초에 수습 기간이 끝나면서부터 매니저에게 이야기를 했고 매니저도 오래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며 비자 스폰을 받을 수 있도록 서포트 하겠다고 했었다. 고맙게도 그녀는 그 이후로도 내가 물어보지 않아도 계속 인사팀을 체이스 하면서 먼저 챙겨주었다. 운 좋게 정말 좋은 매니저를 만난 것에 감사한다.
다행히 우리 회사는 꽤나 규모가 큰 기업이고 외국인들이 많아서 비자 스폰이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인사팀에서는 나의 워킹 홀리데이 비자 기간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이유로 계속 우선순위에서 제외했다. 그렇게 상반기, 7월, 10월로 계속 미뤄진 상황이었다. 매니저가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영국에서는 100프로 확정될 때까지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취직 준비할 때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괜히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다.
다행히 매니저는 최근에 인사팀으로부터 확답을 받았고 인사팀장이 휴가에서 돌아오는 대로 바로 정식 절차를 밟을 것이라며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3년짜리 비자인데 그만큼 나의 목숨이 3년이 더 연장된 느낌이다. 적어도 앞으로 3년간은 비자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나도 이제 드디어 적법한 신분의 노동자다.
그러면서 그녀가 조심스레 인사팀에서 덧붙인 조건이 있었다며 운을 뗐는데, 회사에서는 아무래도 큰돈을 투자해서 비자 스폰서십을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자 기간 3년 이내에 회사를 관두게 되면 그 비용의 일부를 소급 적용해서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근데 그도 그럴 법 한 게, 생각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고 (대충 한화로 천만 원대까지 올라가는 듯) 회사에서 전액을 부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매니저는 나를 배려한답시고 당장 대답하지 않아도 되니 생각해 보라고 했지만 나는 생각 더 해보지 않아도 된다며 Absolutely Yes를 외쳤다. 우리 둘은 서로 웃으며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정말 정말 잘 하고 있다며 너에게 좋은 소식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제 비로소 영주권을 위한 5년의 여정이 시작되는 셈이다. 워킹 비자를 5년 유지하면 영주권 신청 자격이 된다. 2년 전에 워홀 합격했을 때부터 이 순간만을 상상하며 왔는데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이 좋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믿기지 않고 이상하고 그렇다.
회사를 그만두어도 주어진 비자 기간에 한해서는 거주 및 근무 자격이 유효한 독일, 스웨덴 등 다른 유럽 국가와는 다르게, 영국은 워킹 비자를 스폰 해준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그 비자도 무효가 된다. 그래서 이직을 하려면 사실 다음 회사에서 스폰을 또 새로 해주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많은 외국인들에겐 이 비자가 너무나도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고 어쩔 땐 족쇄이기도 하다. 행여나 그만두고 싶어도 비자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소식을 듣자마자 더 심기일전해서 긍정적으로 열심히 다녀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하게 된다. 나에게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는 것이 참 어렵다. 일단 지금은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내가 수년을 꿈꾸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순간.. 그동안 런던에서 아등바등 혼자 고생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가족들과 조에게 이 소식을 제일 먼저 전했더니 나보다 더 기뻐하는 모습에 괜스레 뭉클해진다. 이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앞으로 씩씩하게 더 잘 해내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 말대로 I deserve this 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