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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세시 Aug 09. 2023

여자라는 이유로 부딪혀야 했던 편견들

그리고 극복 경험 - "Representation(대표성)"의 중요성

여성의 도전, 그에 따른 노력과 성과는 남성에 비해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가 이룬 모든 것들, 나의 가치가 과소평가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들의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했고 어쩔 땐 보란 듯이 그런 편견들과 상반된 결정을 내렸다. 비록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여성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이런 편견과 차별을 숨 쉬듯 겪는다. 나에게도 아직까지 생생히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시대순으로 자주 들은 (일명 ‘여자 후려치기’) 질문들을 추려보았고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이화여대는 여자면 쉽게 다 갈 수 있는 것  아니냐

10년도 지난 일이라 이야기하기 좀 쑥스럽지만 내 수능 점수는 언어를 제외하고 다 1등급이었다. 우리 과는 그 당시 언어/외국어 (지금은 국어/영어) 중에 하나만 반영이 되는 과라 안전한 합격을 위한 선택이었는데 알고 보니 내 성적은 우리 과 합격 커트라인이었다. 소위 말해 문을 닫고 들어갔다는 소리다. 수능 점수가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저런류의 질문에 굳이 일일이 상대하지 않았지만 여자라서 특혜 받듯이 여대를 간 것이 아니라 학교의 네임벨류, 비전, 나의 꿈 그리고 그에 맞는 수능 성적으로 정당하게 입학한 것이다. 단지 여대라는 이유로 저런 근거 없는 말을 들을 때마다 참 안타깝다. 역대 졸업생들이 이룬 업적들을 보면 저런 말 못 할 텐데 말이다. 



넌 이제 대기업에 입사했으니 이제 돈 많은 남자 만나서 시집만 가면 되겠다 

첫 회사는 업계 최고의 대기업이었다. 처음 입사하고 커리어를 키워나갈 생각에 설렜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당시엔 너무 어려서 그게 부당한 줄도 모르고 지나쳤던 순간들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명백한 직장 내 성차별이었다. 당시 25살이었던 나에게, (오직 20대만 만난다는) 40대의 남성을 소개해주고 싶다며 그를 만나면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아직도 신분제 사회였던가?) 그리고 팀 퍼포먼스 리뷰를 하는 자리에서 내 옆 남자 동료에겐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한 건설적인 피드백을 주더니 나더러는 돈 많은 남자 만나서 얼른 시집가라고 했다. 모두가 직속 팀장님께 들은 귀한 조언들이었다. 30대가 되면서 느낀 점은, 단순히 나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수입이 더 많은 상대를 만나는 것보다 나를 동등한 ‘파트너’로 생각해 주는, 궁극적으로는 나라는 사람을 만날 가치가 있는 상대를 만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 있는’ 상대는 단순히 경제적 우위보다 전체적인 ‘수준’이 맞는 사람을 의미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눈을 낮출 필요도, 양보나 타협할 이유도 없다.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나의 급에 맞는 파트너도 자연스레 만나게 되어 있다. 



‘여자가 다니기 좋은’ 회사

내가 처음 커리어를 시작한 대기업은 ‘여자가 다니기 좋은’ 회사라는 평을 듣곤 했다. 근데 그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큰 도전 없이도 오랫동안 무탈하게 편하게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정말 좋은 것이라면 왜 ‘남자가 다니기 좋은’ 회사는 없을까? 도전이 없다는 것은 실패가 없다는 것이고, 실패가 없다는 것은 배움이 없다는 것이다. 수많은 경쟁을 뚫고 힘들게 들어간 첫 대기업에서의 3년은, 내 인생에 가장 유해하고 무익한 3년이었다. 3년 내내 여기서 내가 배우는 것이 있을까 라는 생각뿐이었다. 퇴사를 만류하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가운데 손가락을 시원하게 날리고 나왔다. 그 회사에서의 3년 보다 그 이후에 혼자 한 사업, 외국계, 그리고 스타트업에서 보기 좋게 실패하고 울고 뼈저리게 현실의 벽에 부딪혔던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도전과 실패, 그리고 크고 작은 성공을 반복하고 나서야 “나는 어떤 실패에 부딪혀도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구나”를 깨달았고, 그 자신감으로 또다시 한번 영국으로 오는 무모한 도전을 할 수 있었다. 대기업이 다 나쁘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회사든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나의 ‘진짜 성장’에 도움이 되고 있는 지를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당장의 월급, 복지 등 떨쳐내기 힘든 유혹이 많지만 그 잠깐의 마약에 취해 허망하게 흘려보낸 시간은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많은 여성들이 도전하고 또 도전했으면 좋겠다. 그 내공과 경험치가 쌓이면 정말 소중한 나의 인생 자산이 된다.



영국으로 시집가니?

내가 처음에 영국으로 간다고 했을 때 몇몇 지인이 '영국으로 시집가냐' 혹은 '남자 따라가냐'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렇다. 그들의 생각에는 혼기가 찬 30대 여자가 갑자기 외국으로 나간다고 하면 그 이유는 보통 남편이나 남자친구 때문이니까. 여자 혼자 힘으로 외국에서 정착한다는 것은 보기 드물다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놀랍지 않게도(?), 이곳에 와서 정말 훌륭하고 멋진 여성들을 많이 만났다. 유학, 취업, 워킹 홀리데이 등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모국을 떠나서 타지에 정착하려 왔지만 공통적인 이유로는 보기 좋게 편견들을 깨고 ’더 나은 나’를 위해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설사 파트너로 인해서 처음 왔다고 하더라도 이 기회를 활용해서 더 멋지게 성장하는 여성들도 정말 많다. 그런 사람들을 주변에 두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게 된다. 나도 이 멋지고 선한 영향력을 널리 전파하고 싶다. 영국으로 시집오지 않아도 혼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비자는 현지인 남자친구 때문에 쉽게 해결되겠네

비자 이야기를 하면 주변에서 우스갯소리로 늘 따라오는 이야기가 있다. “현지인과 얼른 결혼을 하지 그래?” 물론 그 방법이 별로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평가절하하려는 목적은 더더욱 아니다. 비자가 가장 소중한 우리 외국인들에겐, 파트너 비자만큼 안정적이고 확실한 방법이 없다. 그런데 그 말이 특히, 나처럼 혼자서 해외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의 노력을 과소평가하는 데 쓰이는 게 문제다. 

영국 워킹 홀리데이 비자는 2년이고 연장이 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한국에 돌아가는 옵션은 생각하지 않았고 나의 목표는 우선 현지 기업에 취업을 한 다음, 성과를 인정받아서 정식으로 회사에서 정규 비자 스폰을 받는 것이었다. 2022년 2월에 런던에 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느라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나의 고생 이야기는 예전 글들을 참고…) 그렇게나 힘들었던 6개월의 ‘맨땅 헤딩’ 취준 끝에 2022년 8월에 지금 회사에 입사했고, 어느덧 1년이 흘렀다. 이제 6개월 뒤면 워킹 홀리데이 비자가 만료가 된다. 그리고 나는 능력을 인정받아서 회사에서 정식으로 비자 스폰을 해주기로 했다. 이제 여기서 5년을 유지하면 영주권 신청 자격이 부여된다. 나는 영국인 남자친구가 있고 서로 미래를 이야기할 정도로 진지한 사이지만, 단 한 번도 남자친구를 통해서 비자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물론 결혼을 하게 되면 나에게 워킹 비자, 파트너 비자의 2가지 옵션이 생기는 거지만 파트너 비자는 아직도 나의 ‘최후의 보루’ 같은 옵션이다. 나처럼 워킹 비자를 받든, 파트너 비자를 받고 살든 그 누구도 절대 타지에서 ‘쉽게’ 살아가지 않는다. 비자 이슈가 없는 현지인들도 취직이 안 돼서 고생하는 경우도 많은데, 더군다나 외국인으로서 현지인들처럼 정착해서 위해서는 2배 3배, 아니 그 이상의 노력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최근 실사화 된 영화 ‘인어공주 (The Little Mermaid)’ 에서 흑인인 할리 베일리(Halle Bailey)를 에리얼로 캐스팅하면서 기존의 작품을 재해석했는데 이가 시사하는 바는 ‘다양성’ 그 이상으로 중요한 바로 ‘Representation(대표성)”이다. ‘인어 공주는 다 백인’이라는 틀을 깬 덕분에, 어두운 피부를 가진 많은 아이들에게 그들도 '인어 공주'같은 마법 같은 작품을 대표할 수 있다는 상상의 가능성과 희망을 주었다. 


이 ‘대표성’은 어린아이들에게도, 그리고 20대의 젊은 세대들에게도 정체성을 형성하고 확립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대표성’은 가능성을 열어주고 본인의 자아와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특히 우리나라 여성들이 저런 케케묵은 편견과 싸워야 했던 이유는, ‘대표성’의 예시들이 아직 많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권장하는 모습과는 아무래도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많은 멋진 여성들이 울타리 밖으로 나가 멋진 ‘대표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나도 그런 멋진 예시들을 보고 꿈을 키웠고 용기를 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사람들과 친구가 된 것이 신기하고 감사하다. 내가 이렇게 계속 글을 쓰는 이유도 내 주변 사람들, 혹은 나를 ‘글’이라는 매개체로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좋은 예시’, ‘대표성’이 되고 싶어서이다.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서 낯선 곳, 모국어를 쓰지 않는 매일 이 전쟁터 같은 곳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편견을 극복하고 좋은 Representation, 예시를 남기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여성들에게 ‘우리 정말 멋지고 잘하고 있다’고 토닥거려주고 싶다. 그리고 지금도 어쩌면 무모한 도전을 할지 말 지 고민을 하는 여성들에게는 이 세상 모든 일, 정말 하고 나면 별 것 아니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도전은 사실 '실패' 아니면 '성공'인데 그 실패가 나중엔 성공의 일부분이 되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결국 도전은 100% 확률의 성공인 셈이다.


‘최초’라는 용기에서 힘을 얻어 여러 예시들이 모이다 보면 그게 하나의 ‘현상’이 되고, 그 현상이 지속되다 보면 사람들도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나는 지금 이 단계를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 현상이 계속 지속되어서 더 많은 여성들이 두려움과 편견을 깨는 데 동참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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