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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세시 Jul 25. 2023

'한국인'이라는 힙한 정체성

영국에서도 늘 자랑하고 싶은 "I'm Korean"


런던에 살면서 늘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한국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정말 많이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한국'이라는 나라를 아는 것을 넘어서 우리나라의 문화, 음식, 콘텐츠 등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대한민국을 즐기고 소비한다.


2012년 영국 노팅엄에서 교환학생을 했을 때만 해도 상황은 전혀 달랐다. 동아시아인은 디폴트로 중국인일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고 그래서 그들의 눈에 나는 늘 중국인 아니면 (드물게) 일본인이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한국이 어디냐는 질문을 한 사람도 있었고, North 냐 South냐는 질문은 당연히 따라오는 옵션 같은 것이었다. 물론 길 가다가 칭챙총, 니하오 등 인종차별적인 말을 듣는 것도 예사였다.



10년도 넘게 지난 지금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한국에 이미 여행으로 다녀왔거나 혹은 본인이 얼마나 한국에 여행을 가고 싶은지를 어필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이 생겼다. 어떤 모임에 가더라도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혹시 너 한국인이야?'라는 말로 먼저 친근하게 다가오고,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엔 '한국인처럼 생겼다', '한국인들은 너처럼 다 스타일리시하지 않느냐' 등의 말을 칭찬으로 한다. 훗, 한국 사람들이 좀 멋지긴 하지.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예전의 한식당은 한국 사람들, 혹은 같은 아시아 사람들이 주로 가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인종,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들로 붐빈다. 금요일 저녁이나 주말에는 줄을 정말 길게 서는 것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요즘은 어딜 가든 "Korean Style" 이 수식어처럼 붙은 메뉴들이 정말 많다. "Korean Style Salad", "Korean Style Chicken", "Korean Style Rice bowl" 등 한국식 조리법이나 양념을 사용한 메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사실 아직까진, 막상 먹어보면 맛은 다 별로거나 진정한 한식 스타일이 아닌 경우가 태반이지만...) 얼마 전에 영국에서 가장 큰 프랜차이즈 카페 중에 하나인 프렛(Pret)에 갔었는데 이달의 메뉴로 "Korean Style Chilli Chicken Salad"가 있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그걸 구매하려고 줄을 서 있는 것을 보고 괜스레 뿌듯했었다. 이런 게 국뽕인가? (근데 솔직히 맛은 없었다... 공부를 더 해라 이놈들아...)

이게 바로 프렛에서 먹었던 Korean Style Chilli Chicken Salad


기본적인 한식 메뉴들이나 용어들도 이미 다 널리 알려져 있다. '김치(Kimchi)'는 이제 기본 중의 기본이고 예전에는 영어로 줄줄 풀어서 설명해야 했던 것들 - 예를 들면 예전에는 고추장을 Chilly Paste라고 했었는데 이젠 'Gochujang'이라고 해도 다 알아듣는다. 그리고 어제는 남자친구 플랏 메이트들 불러다가 떡볶이를 만들어 줬는데, 예전에는 또 굳이 Spicy rice cake with fish cake... 어쩌고 했었다면 이젠 '떡볶이'라고 말해줘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이게 다 틱톡의 효과다.) 그 이외에도 잡채, 불고기, 비빔밥, 그리고 더 나아가서 '불닭', '치맥'까지도 번역 없이 그 단어 자체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사실 나는 예전부터 늘, 왜 우리나라 음식을 항상 영어로 번역을 해줘야 하는지 불만이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괜스레 감격스럽다.

회사 Summer Party 뷔페 메뉴였던 Korean BBQ
스코틀랜드에서 먹었던 비건 코리안 비비큐 샌드위치. 아주 맛있었다.
이건 회사 점심으로 나왔던 정체 모를 Korean Fried Rice... 쌀부터가 한국쌀이 아니잖아요,,ㅠ
포르투갈 리스본 버거 맛집 레스토랑에 있었던 메뉴
로컬 마켓에서 산 김치!! 영국인 아저씨가 한국인 아내가 직접 담그신 거라고 했음.
하이드파크 윈터 원더랜드에 있었던 치킨 메뉴! "Gochujang" 글레이즈
동네 서점에서 발견한 한식 레시피 북



일상 속에서는 한국 드라마나 영화로 모두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 연초에 넷플릭스에 '더 글로리'가 나왔을 때, 정말 과장 하나도 없이 우리 회사 팀 전체가 떠들썩했다. (덤으로 'x발년아'가 유행어처럼 번져서 제발 그런 말 쓰지 말라고 사정해야 했음ㅠ) 그 외에도 정말 수많은 유명한 작품들 - '기생충', '오징어 게임', '킹덤' 등- 은 정말 안 본 사람이 없을 정도이고, 나도 보지도 않은 한국 콘텐츠를 역으로 동료들이 추천을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나도 영국에 오기 전엔, 관심도 크게 없었을뿐더러 특정한 연령대의 문화라고 생각하고 반신반의했었는데 BTS와 블랙핑크는 진짜 찐으로 글로벌 스타였다. 아직도 생각나는 정말 당황스러웠던 순간은, 처음 회사에 입사해서 동료들이랑 인사를 나누고 처음 점심을 같이 먹는데, "수, 너는 블랙 핑크 중에 누굴 제일 좋아해?"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였다. "나..? 제니^^,,,"라고 대답하고 더 물어볼까봐 자리를 피했던 기억이 난다. 블랙핑크는 최근에 런던에서 가장 큰 뮤직 페스티벌 중 하나인 "BST Hyde Park"의 메인 헤드 라이너로 공연한 슈스 중에 슈스이다... 내가 얼른 공부해야지..


그 외에도 정말 수많은 예시들 - 세계적인 브랜드 루이비통과 구찌에서 서울에서 메인 패션쇼를 연 것, 여러 글로벌 영화 시상식에서 한국인 그리고 한국 작품이 노미네이트 되고 수상하는 것 등 - 을 통해서 한국이 불과 지난 10년 전과 비교해서 얼마나 성장했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스며들었는지, 10년 전 내가 직접 겪었던 경험과 비교가 되어서 더더욱 그 변화를 확실히 체감하는 요즘이다.



어디선가 요즘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힙한 것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 있는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한국의 긍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요즘은 나도 일부러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기도 한다. 작년 10월쯤에는 다른 팀 동료가, 본인이 정말 한국에 관심이 많고 언젠간 한국에서 꼭 살고 싶다며 나에게 조언을 구했던 적이 있다. 나는 한국에 사는 게 답답해서 영국으로 온 건데 이제 '한국'이라는 나라가 누군가에겐 꿈이 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묘했다.

이 메세지가 인연이 되어서 지금은 유일하게 회사에서 한국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되었다.


결론은, 그 조그만 나라가 이렇게까지 되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을까라는 생각에 괜히 뭉클하다. (오늘 국뽕 최대치..)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한국의 모습도 분명히 있지만, 아직까지도 알려지지 않은, 널리 퍼트리고 싶은 '한국적인 것'들도 너무나도 많다. 나도 런던에서 그 가치를 퍼트리는 데 힘을 좀 더 보태리라 다짐 해본다.


아직도 해외에 나오기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야말로 한국/한국인 주가 상향 시즌이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한국, 싸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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