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기준 영국 런던 생활비 - 고정비 편
전 세계적으로 물가 높기로 악명 높은 런던으로 오기로 결심한 후로 가장 먼저 한 일은, 내가 지금 가진 전재산으로 런던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계산해 보는 것이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사실 정보는 많지만, 나이에 따른 소비습관이나 관심,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천차만별이라 오히려 더 헷갈렸던 기억이 난다. 나는 6개월 뒤에 만으로 34살이 된다. 한국에서 7년의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런던으로 왔고, 현재 영국에서 2년째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내 글을 꾸준히 읽는 독자분들은 나와 비슷한 연령대,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했을 때, 이 글은 나처럼 평범한 20대 후반에서 30대 중후반의 싱글 직장인이 런던에서 어느 정도 삶을 즐기면서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현실적인 생활비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쉬운 이해를 위해 괄호에 현재 환율로 한화를 기재했다.
내용이 꽤 방대해질 것 같아 1편 - 고정비, 2편 - 가처분 소득(저축과 개인 소비)으로 나누고, 마지막에는 현실적으로 런던에서 꽤 만족스러운 삶을 살려면 어느 정도의 생활비가 드는지, 그에 따라 현실적으로 필요한 연봉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이야기해 보겠다. 이 글은 소위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 - 고정비에 대한 글이다.
월세
런던에서는 살인적인 월세 때문에 대부분 하나의 집을 여러 사람이 셰어 하는 형태가 가장 흔하다. 한국에서는 성인이 되고 난 이후부터 쭉 혼자 살아왔던 터라, 런던에서도 돈을 좀 더 내더라도 혼자 한 번 살아볼까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비용을 알고 난 뒤로 조용히 셰어 하우스를 다시 찾아 봤던 기억이 난다. 동네마다 천차만별이고 일부 운 좋은 분들은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도 구한다고들 하지만, 2024년 기준 현실적으로 런던의 존 2-4 이내 (런던은 존 1에서 6까지 나뉘며, 숫자가 작을수록 시내와 가깝다.) 괜찮은 동네에서 혼자 원 베드룸에 살려면 월세만 최소 1600파운드(280만 원) 이상은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혼자 살면 카운슬 텍스, 공과금까지 내야 하기 때문에 월에 2000파운드(360만 원) 가까이 내야 하는 셈이다.
런던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존 2에 있는 셰어 하우스에 살았다. 런던 지리에 익숙하지 않고 어디로 취업하게 될지 확실하지 않아 최대한 시내와 가까운 곳을 선택했고, 여자 혼자 살아야 했기 때문에 안전도 중요했다. 그곳은 여자 4명이 화장실과 주방을 공유하는 형태였고, 월세는 950파운드(한화 약 170만 원)였다. (2년 전 가격이라, 지금은 아마 그 이상일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살다 보니 개인 화장실의 중요성을 깨닫고, 얼마 못 가 개인 화장실과 샤워실이 딸린 En-suite 방으로 이사했다. 보통 200파운드 정도 더 비싸지만, 나의 정신 건강과 삶의 질을 위해 흔쾌히 타협했다. 그렇게 월에 1300파운드(233만 원)를 내고 1년을 살았다. 주방은 여전히 2명과 공유했지만, 모두 직장인이라 마주칠 일이 드물어서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셰어 하우스는 보통 카운슬 텍스나 공과금이 월세에 포함되어 있어서 편리하다. (아닌 경우도 있으니 꼭 확인하시길!) 여기서 팁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셰어 하우스는 정말 추천하지 않는다. 냄새나는 냉장고와 더러운 주방에 매일 인상을 찌푸리고 싶지 않다면 최대 4인까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비슷한 연령대의 직장인과 사는 곳을 선택하길 바란다. 밤마다 젊은이들의(?) 파티, 시끄러운 음악과 고성방가에 깨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가장 좋은 옵션은 사실 파트너와 동거를 하거나 마음이 잘 맞는 1-2명의 친구들과 함께 사는 것이다. 지금은 남자친구와 함께 투 베드룸 플랏에 살고 있고 런던 브릿지역까지 기차로 20분이면 간다. (통근 시간은 도어 투 도어로 50분 정도 걸린다.) 텍스 공과금, 인터넷 등 포함 둘이서 월에 2300파운드(413만 원) 정도 낸다. 한 사람에 1150파운드(206만 원) 정도 선인데, 그동안 혼자 셰어 하우스에 살았던 것보다 저렴한 데다가 삶의 질이 훨씬 올라갔다. 싱글인 친구들은 가까운 친구 1-3명과 함께 사는데, 마음이 잘 맞는 친구만 있다면 친구끼리 같이 사는 재미도 쏠쏠한 것 같다.
<요약>
- 런던에서 혼자 살려면 월 2000파운드(360만 원)는 생각해야 함
- 여자 혼자 살기 괜찮은 동네 존 2-3 기준 셰어 하우스 월 900-1200파운드 (160만-215만) / 개인 화장실 및 샤워실이 딸린 방 +200파운드 (230만 원-260만 원선)
- 셰어 하우스는 4인 이하로, 가능하다면 마음이 맞는 친구 / 파트너와 함께 사는 것이 가장 이상적
기타 공과금
렌트 이외에 고정적으로 드는 비용은 카운슬 텍스 (Council Tax), 에너지/수도세, 인터넷 정도가 되겠다. 셰어 하우스 월세에 이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면 패스해도 좋다. 카운슬 텍스는 주거지의 가치에 따라 부과되고,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다. 지방 정부(Council)가 지역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세금이라고 보면 된다. 공공 서비스 (경찰과 소방, 공공도서관, 쓰레기 등), 교육과 사회 복지 (학교, 노인시설 등), 저소득층 지원 등에 쓰인다. 보통 지역 별로 월에 110파운드(19만 원), 많게는 180파운드(32만 원)까지 든다. 우리는 월에 116파운드를 낸다. 영국의 공과금은 크게 수도세, 에너지(전기, 가스) 빌로 나뉘고 수도세는 한 달에 30파운드(5만 원), 전기와 가스비는 한 달에 100파운드(18만 원) 정도라고 보면 된다. 그렇게 합쳐서 평균 130-140파운드 (25만 원) 정도인데 당연히 사용량에 따라 비용은 달라질 수 있다. 한국에서는 난방비 수도세 다 합쳐서 10만 원이 안되었던 것 같은데 그것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게 비싸다.
인터넷도 속도나 데이터 용량에 따라 달라지지만, 평균적으로 30-40파운드(5만 원-7만 원) 선이면 인터넷 속도로 골머리 앓을 일은 잘 없다. 우리는 한 달에 36파운드를 낸다. TV를 보고 싶다면 물론 수신료도 내야 한다. 공영 방송 수신료는 한 달에 15파운드 선이고 기타 케이블이나 스포츠 채널을 보고 싶다면 추가로 돈을 더 내야 한다. 그렇게 모든 공과금을 다 합치면 (TV 제외) 한 달에 300파운드(54만 원) 정도가 나간다. 한 달에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손 떨리는 금액이다. 한 달에 또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으로 핸드폰비도 있는데, 사실 핸드폰 비는 한국보다 훨씬 저렴하다. 나는 한 달에 12파운드(2만 원)를 내는데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요금제이다. 이렇게 한 달에 혼자 고정비용으로 162파운드 (30만 원) 정도를 지출한다고 보면 된다.
<요약>
- 카운슬 텍스, 에너지 요금은 한 가구당 금액으로, 여럿이서 살면 인당 비용은 낮아짐
- 카운슬 텍스는 110-180파운드 (19만 원-32만 원)
- 수도/전기/가스는 한 달 평균 130-140파운드 (23만 원-25만 원) (겨울에는 난방비 때문에 더 나옴)
- 인터넷 한 달 평균 30-40파운드 (5만 원-7만 원)
>>> 셰어 하우스는 보통 위 세 항목이 월세에 포함된 경우가 많다. 꼭 확인하기!
- 휴대폰 비용: 월 12파운드-15 파운드면 (2만 원-3만 원) 충분함
교통비
존에 따라 금액은 달라지지만, 존 2-3에 산다고 가정했을 때 튜브(지하철) 비용은 한 번에 보통 3.30-3.80파운드 (6천 원-7천 원)이다. 다른 라인으로 갈아탈 때는 비용이 추가되지 않지만, 버스와 같은 다른 교통수단으로 갈아탈 때는 우리나라처럼 환승 제도가 없어 요금이 별도로 부과된다. 버스는 1.75파운드(3천 원)로 튜브의 반값이다. 예를 들어 매일 지하철로 통근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하루에 왕복 7파운드 x 5일 하면 일주일에 35파운드(6만 2천 원)이고, 한 달이면 교통비가 140파운드(25만 원)인 셈이다. 물론 재택근무가 가능한 유연 근무제의 회사에 가면 교통비는 더 줄어든다. 나는 주 2일 재택근무, 주 3일 오피스에 기차를 타고 출근하는데, 하루에 왕복 7.50파운드(1만 3천 원)가 교통비로 지출된다. 회사 출퇴근 하는 데만 한 달에 90파운드(16만 원)가 들고, 주말에 개인적으로 이동하는 비용까지 합치면 한 달에 130파운드(23만 원) 정도는 교통비로 꾸준히 드는 것 같다. 코로나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런던에서의 월세 지출을 줄이기 위해 런던 외곽, 혹은 런던과 가까운 다른 도시로 이사를 나갔지만, 재택근무를 지원해 주지 않는 회사라면 매일 출퇴근 교통비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해야 한다. 요즘은 꽤 많은 회사들이 스멀스멀 다시 회사로 돌아오기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번외로, 택시는 고정비용이 아니라 자세히 다루진 않겠지만, 런던에서 우버를 부르면 적게는 (10분 내외) 15파운드(2만 7천 원), 많게는 50파운드 (8만 원)까지도 나간다. 나도 한국에서는 택시를 정말 자주 타고 다녔는데, 런던에서는 지난 2년 동안 우버를 탄 일이 손에 꼽는다. 런던에 살다 보면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자연스레 걷는 것을 선택하는 일이 많아진다. 사실 걸어 다니면 돈도 아끼고 건강도 챙기고 일석 이조인 데다, 런던은 걷기에 정말 매력적인 도시이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만끽하는 것을 추천한다.
<요약>
- 매일 출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이라면 한 달 출퇴근 교통비만 평균 140파운드(25만 원) (존 2-3 기준)
- 주말에 자주 놀러 다니는 사람이라면 +20파운드(3만 5천 원) 정도 업
- 런던에서 우버를 부르면 적게는 15파운드, 많게는 50파운드(8만 원)까지
식비
여기서 식비는 외식비나 배달비를 제외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식비를 뜻한다. 점심, 저녁 최소 하루 두 끼는 챙겨 먹는다는 가정 하에 얘기해 보겠다. 우선 직장인이라면, 점심을 굶지 않는 이상 점심 비용은 필수인데, 만약 밖에서 간단하게 사 먹는다고 하면 평균 9-13파운드 (1만 6천 원-2만 3천 원) 정도 든다. 만약 정말 저렴한 Tesco(테스코)의 Meal Deal (샌드위치 등 메인 음식, 간식, 음료까지 세트 메뉴)의 경우엔 5파운드(9천 원)이다. 물론 선택사항이지만, 카페인 수혈까지 생각하면 추가로 3파운드(5천 원) 정도 지출해야 한다. 그럼 하루에 최대 13-18파운드는(2만 3천 원-3만 2천 원) 점심 비용으로 나간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 경우엔 한 달 260파운드(46만 원) 정도가 점심비용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정말 운이 좋게도 회사에서 아침, 점심 그리고 커피나 간식까지 모두 무료로 제공해 준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한 달에 200파운드는 아끼는 셈이 된다. 집에서 재택근무를 할 때는 주로 장을 봐와서 직접 요리를 해 먹는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혼자 사는 경우에 대략 주에 20파운드(3만 5천 원) 정도를 장 보는 데 쓰면 주중 저녁, 주말까지 알차게 챙겨 먹을 수 있다. 영국은 한국보다 식재료비가 훨씬 저렴해서, 직접 집에서 해 먹는 것이 돈을 아끼는 지름길이다. 나는 평균적으로 한 달에 120파운드(21만 5천 원) 정도를 장 보는 데 쓴다. 만약 평일에 점심을 밖에서 사 먹고 나머지는 직접 요리해 먹는다면, 한 달에 최소 300파운드(54만 원)는 식비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요약>
- 런던 직장인의 하루 평균 점심값은 일반적으로 5파운드(9천 원)에서 13파운드(2만 3천 원) 사이
- 주중 저녁, 주말을 위한 장을 보면 주에 20파운드(3만 5천 원) 정도면 충분함
- 천차만별이지만 하루에 두 끼를 챙겨 먹는다는 가정 하에 월 별 최소 식비는 300파운드(54만 원) 정도
구독료 등 기타 고정비
이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한 달에 고정적으로 드는 비용은 운동과 여러 구독료가 있다. 내가 다니는 헬스장은 요일별로 인터벌 트레이닝이나 서킷, 크로스핏, 웨이트 등 여러 사람들과 그룹 운동을 하는 형태인데, 한 달에 8회로 100파운드를 지출한다. 그리고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챗 지피티, 유튜브 프리미엄 등 여러 구독 서비스까지 합치면 한 달에 66파운드가 나간다. (개인적으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4가지이다.) 만약 내가 꾸준히 하는 운동이 있거나 (예를 들면 테니스를 취미로 하는 사람의 경우엔 코트 예약비가 고정으로 들 수 있다.) 포기할 수 없는 구독 서비스(신문, 책 구독료 등)가 있다면 이것도 당연히 월 고정비에 들어간다. 물론 개인의 사정에 따라 아예 없애버릴 수 있는 카테고리지만, 나는 건강하고 편리한 라이프스타일을 위해 기꺼이 지출하는 편이다.
작가의 한 달 고정비
종합한 나의 한 달 고정비를 투명하게 공개해 본다. 운동/구독료를 제외하고는 사실 런던에 살면서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월세나 공과금은 같이 사는 남자친구와 함께 내고 있어서 다행히 부담이 적은 편이다. 위에 언급했듯이 혼자 살 생각이라면 1번과 2번을 x 2를 해서 계산하고, 셰어 하우스일 경우에는 2번이 보통 1에 다 포함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1. 월세 1000파운드 (180만 원)
2. 카운슬 텍스/공과금/인터넷 149파운드 (26만 7천 원)
3. 핸드폰 12파운드 (2만 1천 원)
4. 교통비 130파운드 (23만 3천 원)
5. 최소 식비 120파운드 (21만 5천 원)
6. 운동 100파운드 (18만 원)
7. 구독료 66.50파운드 (12만 원)
- 넷플릭스 5.50파운드
- 챗지피티 프리미엄 17파운드
- 스포티파이 12파운드
- 유튜브 프리미엄 17파운드
- 기타 애플 구독료(보험, 클라우드 등) 15파운드
총 1,577파운드 (283만 3천 원)
다음 글은 저축, 최소 식비를 제외한 모든 비용 (외식비 등), 쇼핑, 여행비 등 개인의 재량에 따라 충분히 컨트롤이 가능한 지출에 대한 글이다.
* 추가로 궁금한 점 있으면 언제든지 댓글 달아주세요. 다른 의견과 경험들도 언제든지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