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깍지가 벗겨진 자리에 비로소 남는 것들
지금의 약혼자를 만나기 전, 나는 진지하게 미래를 생각한 연인이 2명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의 연애를 통해 나는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고 믿었던 적이 있다. 나에겐 나름의 징크스 같은 것이었다.
3년의 징크스
그 징크스는 묘하게도 만난 지 3년이 되는 순간, 권태기가 오면서 상대에게 마음이 확 식어버린다는 것이었다. 20대 초중반을 함께한 4년의 연애도, 그 이후 20대 후반에 만난 3년의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거짓말처럼 3년이 지나자마자 권태기가 찾아왔고, 뜨거웠던 마음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그 마음은 얼마 못 가 이별로 이어졌다. 장기 연애의 표본이라 해봐야 고작 두 명뿐이었지만, 나에게 '마의 3년'은 거스를 수 없는 사랑의 수명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굳건했던 믿음은 지금의 약혼자를 만나며 보기 좋게 깨졌다. 흔히들 20대의 사랑은 불같고, 30대의 연애는 열정보다 현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서른 중반에 결혼을 앞둔 우리를 보면 그 말이 무색해진다. 함께한 지 만 4년, 같이 산 지도 벌써 2년이 훌쩍 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깊이 아끼고 사랑한다. '이렇게 매일매일 행복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3년이라는 시간 앞에서 매번 무너졌던 그때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다른 걸까. 단순히 사람이 바뀐 것일까, 아니면 내가 정의하는 사랑이 바뀐 것일까?
사랑의 마법이 풀린 자리
돌이켜보니 유통기한이 다 된 것은 내 사랑이 아니라 '눈먼 콩깍지'였다. 20대의 나는 나 자신을 잘 몰랐다. 연애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어떤 점을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는지 조언해 줄 사람도 곁에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홀로 판단하고 감당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객관적인 단점이나 명백한 '레드 플레그'들 조차 깨닫지 못한 채 넘어갔고,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눈감고 참아왔던 것이다. 명확한 기준이 없었던 나는 늘 상대에게 맞췄다. "오래 만나면 다 그래", "남자들은 원래 그래", "결혼하면 바뀔 거야" 같은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스스로를 달랬다. 그 지독한 콩깍지는 오랜 시간 동안 나를 눈멀게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마음이 진짜가 아니었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고, 그 관계가 영원하기를 바랐다. 지독하게 싸우고, 화해하고, 다음 날이면 아무렇게 않게 열정적으로 사랑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평생의 파트너에게 바라는 성향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삶을 꾸려가는 방식도, 그리는 미래도 나와는 전혀 달랐다. 3년이 지나 이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사랑의 주문에 홀렸던 내가 그 마법에서 깨어났던 것뿐이다.
"원래 다 그래"라는 말
지금의 약혼자를 만나며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세상에 "원래 다 그런 것"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일상의 사소한 선택 앞에서는 그토록 까다로우면서도, 유독 곁에 둘 파트너를 정할 때만큼은 이상하리만치 관대해지곤 한다. 아마도 그것이 사랑이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평생의 시간을 함께 그려갈 동반자, 그리고 훗날 내 아이의 세계가 되어줄 부모를 선택하는 일에서만큼은 결코 타협은 없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이 진리는 그런 상대를 실제로 만난 후에야 비로소 체득하게 된다. 잘못된 인연과 억지로 보폭을 맞추며 고뇌하는 삶 보다, 차라리 혼자 걷는 길 위에서 오롯이 나를 지키는 편이 훨씬 더 풍요로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나를 아끼는 마음만큼 나와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 나만큼이나 '우리'라는 숲을 가꾸기 위해 기꺼이 땀 흘리는 사람을 만나는 것. 만약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나의 삶을 확장해 주기는커녕 조금씩 갉아먹고 있다면, 그것은 나의 인내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 사람이 나와 맞지 않는 조각이었을 뿐이다. 나는 이제야 나에게 맞는 조각을 찾았고, 그제야 나의 삶은 비로소 제 자리를 찾은 듯 평온해졌다.
유통기한이 없는 사랑의 조건
그렇다면 내가 찾은 그 '맞는 조각'은 어떤 모습일까. 나의 약혼자는 본인의 삶을 스스로 풍요롭게 가꿀 줄 아는 단단한 사람이다. 그는 누구에게나 예의 바르지만, 무례하게 선을 넘는 이들에게는 단호할 줄 아는 내면의 강인함을 지녔다. 바쁜 와중에도 세 개의 학위를 따낼 정도로 계속 공부하고 커리어를 쌓고, 매일 운동도 거르지 않는 성실함은 나에게 늘 신선한 자극이 된다. 무엇보다 그는 한순간의 요행이나 찰나의 성공을 바라기보다는 오늘의 노력이 훗날 '복리'가 되어 돌아올 것임을 믿는 인내심 깊은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늘 나를, 그리고 우리가 함께 꾸려갈 미래를 가장 우선순위에 둔다. 그의 모든 선택과 노력의 뿌리에는 언제나 '우리'라는 가치가 자리 잡혀있다. 우리의 관계가 이토록 평온한 이유는 그가 가진 건강한 갈등 해결 방식도 한몫한다. 그는 마음이 불편해지는 대화를 회피하지 않는다. 감정에 휘둘려 날카로운 말을 내뱉는 대신, 내가 왜 그렇게 느꼈을지 먼저 헤아려보려 애쓴다. 덕분에 우리는 소모적인 싸움으로 서로를 갉아먹는 대신, 대화를 통해 서로의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그는 가족의 가치를 누구보다 소중히 여긴다. 자신의 가족은 물론, 멀리 떨어진 나의 가족까지 지극 정성으로 살핀다. 서로 다른 문화를 단순히 '인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정서를 배우고 문화를 이해하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매일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 매일 아침 나의 안부를 묻고, 소소한 일상을 궁금해하며, "I’m in love with you", "I’m so lucky to have you in my life"라는 확신을 아낌없이 주는 사람. 이런 사람 곁에서 사랑의 유통기한을 걱정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매일 갱신되는 사랑
이제 나는 더 이상 흘러가는 시간에 마음을 졸이지 않는다. 사랑의 유통기한은 호르몬이 결정하는 생물학적 숙명이 아니라, 어떤 사람을 선택하고 그 관계를 어떤 태도로 가꾸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의지의 영역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콩깍지가 벗겨진 자리에 실망이 아닌 깊은 신뢰와 존경이 남는 사람, 나의 세계를 갉아먹는 것이 아니라 더 풍요롭게 넓혀 주는 사람과 함께하니, 이제 이 사랑이 "얼마나 갈까"가 아니라 "얼마나 깊어질까"가 궁금해진다.
다가오는 7월, 나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나를 늘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하는 파트너와 함께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시작한다.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 낡아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공들여 가꿔 나가는 집과 같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불안한 유효기간 대신, 서로를 대한 새로운 발견과 어제보다 분명해진 확신으로 채워갈 우리의 앞날이 무척이나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