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이 공항과 비교적 가까워 낮게 나는 비행기를 자주 본다. 맑은 날이면 비행기 색깔과 항공사명까지 선명하게 보일 정도다. 낮게 나는 커다란 비행기를 볼 때면 유독 아이 생각이 난다. 하늘에 손톱보다 작게 나는 비행기만 보여도 좋아서 펄쩍펄쩍 뛰는 아이에게 이 커다란 비행기를 꼭 보여주고 싶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전에는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혹은 너무 흔하고 익숙해 그냥 지나쳤던 것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 풀발 위 벌레 심지어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까지도 이 작은 아이에겐 모두 처음인지라 아이가 만나는 모든 첫 순간이 내게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다. 그리고 자연스레 내가 어릴 적 마주했던 첫 순간을 떠올린다. 기쁜 순간, 즐거운 순간 때론 아픈 순간까지 내 곁에 늘 함께한 젊은 날의 부모님을 떠올린다.
그 시절 외벌이+독박 육아는 흔한 일이었지만 삼 남매를 홀로 육아하다시피 한 친정 엄마를 떠올리면 ‘어떻게 가능했을까?‘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는다. 아빠는 회사 일로 늘 바빴고, 엄하고 무서웠다. 엄마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도 늘 걱정이 앞서 “조심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부모님의 그런 모습이 이해 안 되고 때로는 싫었는데, 자기주장이 강해지는 3살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 행동들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2살 터울 삼 남매를 키우려면 집안에 서열과 규칙이 필요하다. 아빠는 본인이 집에 없을 때도 세 아이가 엄마 말을 잘 듣도록 엄격히 훈육했다. 우리 삼 남매는 아빠의 불호령이 무서워 되도록 혼날 짓을 안 했고, 덕분에 우애도 좋은 편이었다. 남편은 바쁘고 친정은 멀고 운전도 못하는 엄마에게 자식이 아프거나 다치는 상황은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 한 명만 아파도 집안일 마비, 멘털 마비가 되는데, 셋을 키운 엄마에게는 조심해야 할 경우의 수가 셀 수 없이 많았을 테다.
육아를 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세상의 아이들을 보는 눈이 달라졌고 아이 엄마와 아빠들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리고 내 부모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 변화는 앞으로 살아갈 시간은 물론, 지나온 과거의 시간까지도 새로이 보게 만든다. 부모님도 부모가 처음이었을 시간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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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엎어서 재워주세요“를 ”엎어줘 코자“나 ”안 깜깜하네“를 ”깜깜해 아니야“처럼 온전히 자기가 아는 단어를 조합해,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든 해내는 모습을 보면 사랑스러워 마음이 녹아내릴 것 같다.
‘부디 천천히 자라죠‘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을까?‘ 같은 말들이 크게 와닿지 않았던 지난날. 매일 육아에 치여 ’제발 빨리 자라서 말 좀 들었으면!‘ ’그때가 아니었어도 언젠가 태어났을 텐데...‘ 같은 무책임한 생각을 했던 순간이 한없이 부끄럽다. 지금 이 찰나들이 부디 느릿느릿 지나가길. 조금이라도 더 너의 어설프고 어눌한 말을 오래 들을 수 있길. 육아가 주는 행복을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어느 것과 맞바꿀 수 있을까? 행복이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 오늘 이 순간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끼게 해주는 존재. 이 대가 없는 사랑을 내가 받아도 되나? 내게 그럴 자격이 있나? 아이가 주는 사랑은 나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게 하고, 나아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든다. 평생 효도는 애기 때 다 한다는 말도 있지만 효도를 넘어 아이가 날 키우는 중이다.
불과 3개월 사이에 아이의 말이 몰라보게 유창해졌다. 아침마다 주어와 목적어, 동사 때론 부사까지 정확히 나열해 또렷한 발음으로 나를 깨운다. 언어의 확장은 세계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엄마가 마시는 검은 물이 ‘커피’라는 걸 배운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뽀로로 음료수 외에도 다양한 음료가 있다는 걸 알아간다. 커피가 쓰다는 걸 배운 아이는 세상에 달고 쓰고 짜고 신 게 있다는 것도 알아간다. 아이의 세계가 급속도로 넓어지고 있다. 누군가의 성장을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긴밀히 본 적이 있었던가? 3살 아이와의 일상은 매일이 놀라운 일로 가득 찬다.
여린 핏덩이가 서서히 사회의 일원이 되어가는 걸 볼 때마다 불현듯 ‘난 여전히 그대로인데...‘하는 불안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아이의 성장 속도에 맞게 나도 좋은 엄마로 성장하고 있는가 자문하면서 그렇지 못한 나에게 불만을 느낀다. 아이를 낳기 전과 현재, 나는 변한 것 없이(나아진 것 없이) 그대로인 것 같은데, 아이의 성장 속도는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내 열망을 번번이 앞지른다.
지나고 보니 너무 당연한 일인데 왜 그렇게 조급해했는지... 이런 조바심이 무상하게도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가장 사랑해 주는 존재는 바로 아이였다. “엄마는 왜 여전히 그대로야?”라고 따지지도 않고 “엄마는 왜 이렇게 서툴러?”라고 불만을 갖지도 않는다. 항상 나를 대단하고 멋진 존재로 생각해 주는 사람. 출산과 육아를 겪으며 자존감이 낮아졌다는 엄마들에게 “그건 생각의 차이일 뿐!”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한 사람의 우주가 된다는 건 돈으로도, 지위로도, 명예로도 살 수 없는 정말 값진 일이니까.
매주 금요일 발행
육아를 하면서 느낀 단상을 적습니다.
‘아이가 나를 키운다’는 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10년 차 엄마의 자아 성찰 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