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하고 안타까운 가족 비극사
부덕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다. 결국은 우리 자신조차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증 장애인의 돌봄은 혹독한 현실과 세상의 편견, 경제적 문제를 헤쳐나가는 과정인데, 이러는 상황에서 죽기는 두렵고 살기는 더 두렵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경우에는 양육 비와 생활비 등으로 가정은 파산에 이른다는 것이며, 살아서 경험하는 지옥이라, 모든 원망과 허물을 자신과 가족이 다 감수하고 사라져 주는 것을 해결책으로 믿고 있다.
여기 한 여자가 누군 가를 죽이려고 목을 조르고, 반대로 천하태평으로 TV를 보며 들리는 소리에 짜증을 내는 남자가 대조적으로 번갈아 보여준다. 이후 우리는 남자는 아래층 남자임을 알게 된다. 동생 주희는 중증 장애인 언니 윤을 생활고에 시달리다 결국 더는 견디지 못하고 죽이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울리자 아래층 남자 동성은 화가 나서 뛰쳐 올라온다. 경계하던 동생을 본 남자는 동생이 맘에 들었는지 남자는 화를 내던 아까와는 다르게 정중하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는다. 동생은 이사를 준비 중이라고 둘러대자 아래층 남자는 이사를 돕겠다고 말한다. 도움을 준다는 남자의 말에 동생 주희는 벌벌 떨던 아까와는 다르게 싸늘하게 변한다. “도움? 이제 와서?”
동생은 남자를 쫓아낸다. 고통스러워하는 언니 윤 죽이고 목을 맨다. 아래층 남자는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119에 연락하고, 구급대원들이 급히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미 모두 죽은 뒤였다.
장애인 가족의 고통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비관이라는 쳇 바퀴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감독은 영화 안에서 서로 단절되고 소통에 부재 하여 비극을 맞이하는 현대 사회를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자기 가족 살피기도 어려운 우리는 제 한 몸 건사하기 힘들다며 내 이웃, 그들을 외면하고 있다. 잔뜩 핏발선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눈동자는 폐부 깊숙이 박힌다. 수많은 가족 가운데 가족 스스로가 해결하기 힘든 문제로 신음 하며 비참하게 방치되어 가고 있다. 빽빽하게 붙어 이웃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서로 단절되고 소통이 부족한 삭막한 세상이고, 사회의 극심한 양극화, 사회 안전망의 부재, 최소의 사회 복지도 보장 받지 못하는 가족들이 너무 많다.
영화는 처음부터 최고조의 긴장을 인물들을 죽음으로 몰아세우며 보여준다. 그리고 대조적으로 아래층 남성의 평화로움, 일상의 휴식 보여준다. 이미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 결말의 비극은 마련된다. 한껏 거리를 두고 찍은 아파트의 모습에서 돌연 사람의 목을 조르는 장면으로 넘어가는 편집은 이미 불행한 결말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 편집의 교차를 통해 영화는 긴장감을 조절한다. 극도의 긴장이 서린 채 크게 움직이지 않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모습과 긴장감은 크지 않지만 큼직한 움직임이 있는 모습을 교차하는 것이다. 두 모습은 극 중 긴장의 정도를 조절하고 동시에 움직이는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접합 면을 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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