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단편영화 리뷰] 파우스토 인 더 다크

고귀한 사랑과 안타까움

고귀한 사랑과 안타까움, 그리고 애틋함만이 진하게 남는, 가슴 절절한 아픔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라는 영화 은교의 대사처럼 늙고, 병들고, 추함이란 외적인 것을 의미한다. 마치 미녀와 야수에서 야수가 야수이기에 미녀를 탐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몰염치하고 나쁜 놈으로 묘사되는 것처럼. (엔딩에서 야수가 왕자로 변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노인이 젊은이들이 가지는 젊은 감정. 사랑한다고 추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외향이 더없이 추하므로 더 그렇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영화 트와일라잇에서 뱀파이어 에드워드는 여주인공 벨라보다 몇백 년은 더 산 죽은 송장이나 다름없지만 변함없는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사랑을 더럽거나 추하게 보지 않는 면도 있는 것이다. 만약 에드워드가 더럽게 못생기고 늙은 뱀파이어라면. 그들의 장대한 사랑 이야기는 일단 주변 사람들의 만류로 펼쳐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질병, 슬픔에 잠긴 기억, 무자비한 고독 속에 늙어가는 파우스트,

고통에 시달리며 고통스럽고 음울한 노인 주인공 파우스토가 자신의 낡고 허름한 집으로 오기 위해 복도를 느린 걸음으로 걸어오면서 시작한다. 치우던 물건에 아내의 웃는 얼굴이 사진을 무심히 본다. 그리고 노인은 옥상에 올라가 당장이라도 아래로 뛰어내릴 거 같은 표정으로 내려다본다. 그리고는 욕탕에서 목욕하는 그의 늙고, 병들고 추한 몸이 보인다. 음식을 준비하다 갑작스러운 기침에 입을 막고 욕실을 갔다 오는데, 음식은 이미 시꺼멓게 다 버렸다. 그 타버린 음식은 먹는 파우스토에게 이 세상의 삶은 이미 이무런 의미도, 희망도 없는 모습이다. 그런 가운데 이웃집 여자가 바람피운 남편 때문에 웃는 모습을 보고 집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여자의 상처 입은 손을 손수건을 묶어준다. 여자는 일어나 춤을 추고, 파우스토에 다가와 춤을 못 춘다는 파우스토를 이끌고 춤을 춘다. 파우스토 얼굴에는 처음으로 미소가 피어오른다. 키스하고 뜨거운 하룻밤을 보내고 여자는 떠난다. 공헌한 얼굴에 누워있던 파우스트는 창가로 가서는 아래로 몸 던진다. 왜 파우스토는 죽으려고 하는 걸까? 


우리의 복잡하고 애달프고, 행복했던 일상도 결국 우리가 온 무로 돌아갑니다.

영화는 주인공 파우스토를 통해서 노인들이 느끼는 감정을 섬세하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파우스토에 이입되어 나마저도 늙는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늙었다는 것 하나 만으로 치부가 될 수 있는 현 사회가 얼마나 우습고 처절한지. 자연의 섭리일 뿐일 진대. 모두가 늙는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나마저도 그렇다. 노인을 거추장스럽게 여기고 안개처럼 대할 때도 있었다.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멀리했다. 그리고 노인이 감정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불유쾌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노인에게 가지는 감정 이라기보다 추함에 갖는 감정인 것 같다.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의 외적 추함을 느끼는 파우스토가 가여웠다. 여자와의 사랑스런 춤도, 뜨거운 하룻밤도, 힘차게 쏟아지는 그의 오줌 발도 죽음에서 도망치듯 달아날 수밖에 없었던 파우스토가 너무 도 안쓰러워 고통스럽게 가슴을 울린다.


영화리뷰 더 보기

https://bit.ly/3lbJXOR

매거진의 이전글 [단편영화 리뷰]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