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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2020) - 돌고 도는 예술, 돌고 도는 세


누군가가 말하였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사실상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특히 예술계라면 더더욱 그렇다유명 영화평론가 한창호는 그의 저서 [영화그림 속을 걷고 싶다]의 서문에서 나는 영화가 도둑질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라 적은 바 있다다시 말하면 영화는 그 시작부터 다른 예술 분야를 모방해 왔고 지금도 그렇다는 뜻이다틀린 말은 아니다그의 주장대로 최초의 영화라 불리는 <열차의 도착>(1895)을 만든 뤼미에르 형제도 분명 클로드 모네의 그림 [생 라자르 역기차의 도착]를 보고 영감을 얻었을 게 분명하다이후 여러 영화들이 똑같이 기존의 시각 예술인 회화와 기록 사진들을 훔쳐왔고이는 하나의 유행이 되어 근래의 영화들과 대중문화에서 모방되고 패러디되어왔다그리고 이 개념은 영화들끼리도 오마쥬라는 이름으로 재사용되기도 한다그러다보니 최근의 <정이>(2022)나 <운수 좋은 날사례처럼 표절 논란이 자주 벌어지기도 한다물론 이가 부정적인 건 아니다미술도 그렇고 모든 예술이 선대 사조의 영향을 받아오고 그를 분해고 재조립하는 방식은 마치 입체파 회화처럼 분명 또하나의 창작법이기도 하다심지어 인류 최초의 예술인 선사시대 벽화도 자연의 풍경을 옮기고 싶은 욕망 아니었던가. 



그 욕망을그 아름다움을 따라 얻고 싶은 욕망은 어느 누구에게나 있지만그를 솔직하게 고백하여 내보인 작품은 거의 소수에 가까웠다이번 도영찬 감독의 <미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영화 시작부터 우울한 인상의 한 노인이 벼룩시장같은 광장 프리마켓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팔고 있다그러나 사람들은 훑어보고 지나가기만 할 뿐 아무도 한 푼이라도 내 사러 오지 않는다아이 어른가릴 것 없이 온 이들이 그림들을 보기만 해 실망하고 있던 순간 한 청년이 한 그림을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한다화폭 가득 미소가 도드라져 있는 한 컷의 캐리커처같은 그림이다청년이 유심히 그림을 바라보자 노인은 기대를 안고 청년에게 다가가 본다그러나 바로 그 순간 무언가 감명을 받은 청년은 바로 기쁜 얼굴로 자리를 떠 달려간다노인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자신의 화실로 되돌아 온 청년도 그림 작업을 시작한다시간이 흘러 젊은 천 작가는 그림을 완성해 사진을 찍는다화폭 가득한 노인의 미소 그림을 꽃밭에 둘러쌓인 여인의 얼굴로 약간 변형하여 그린 그림이다노인의 그림을 따라해 변주한 그림 사진 샘플을 갖고 천 작가는 기쁜 마음으로 한 화랑에 온다한창 분주한징 직원을 닦달하던 갤러리스트는 천 작가가 오자 그를 반기지 않는다새로운 전시 기획이 있다면 샘플 사진을 보여주려 하지만 갤러리스트는 나중에 보겠다며 테이블에 놓고 가라고만 말한다.


크게 실망한 천 작가가 떠나고나서 한 껄렁해 보이는 중년 남성이 바로 화랑을 찾는다오히려 갤러리스트는 그를 반갑게 맞아준다그는 인기 화가 이 작가로 해외에서 여러 전시들을 연 인물이다. 16년 만에 국내 개인전을 준비하고자 영감을 찾던 그는 갤러리스트는 커피를 내오는 사이 천 작가의 샘플 사진을 발견한다그에 역시 감명받은 이 작가는 무엇인지 묻지만 그냥 버릴 실력없는 작가의 작품이라며 보지도 않고 말한다그 사이 혼자 바로 떠나 버린 이 작가얼마뒤 똑같이 바로 작업에 착수한 이 작가는 비슷하게 미소 그림에서 눈입 등 일부만 딴 연작 시리즈를 그려 화랑에서 개인전을 연다급기야 기자들도 불러 오랜만의 국내 전시 테마로 주변 사람들의 표정에 대한 연작이라고 당당하게 홍보해 보인다그건 갤러리스트도 마찬가지다그 사이 관람객들 가운데 한 모자가 있다어린 아들은 어머니가 잠시 이 작가 인터뷰에 한눈을 판 사이 천 작가의 미소 그림에서 미소만 빼고 편안히 눈만 감고 있는 그림을 지긋이 바라본다그리고 마음에 드는지 미소 짓는다인터뷰가 끝나고 다시 그림에 집중하는데 갤러리스트가 경악하기 시작한다곧이어 이 작가부터 사람들이 경악하기 시작한다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아이가 지긋이 바라보던 눈 감은 그림에 립스틱으로 진하게 길게 확짝 핀 미소 낙서가 그려져있다그리고 영화는 플래시백으로 돌아가 첫 그림을 그린 노인과 미소 그림의 놀라운 기원을 보여주는데......


영화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아이러니다시작에서 끝으로가 한 바퀴 무한궤도처럼 되돌아오기 때문이다그러면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예술의 현실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노인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젊은 천 작가는 그에서 본 따 똑같은 미소 그림을 그리지만 화랑으로부터 무시받고인기 화가 이 작가는 이미 명성과 재력이 있음에도 멋대로 그를 훔쳐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성공한다그러나 정작 이 모든 시작은 막판에 유명작가 그림에 미소를 그린 아이의 터치로 되돌아온다이 궤도에서 함께 주목이 되는 건 우리 사회의 차가운 단면이다순수한 예술을 꿈꾸고 그림을 그리며 인정받고 그로 먹고 살고 싶어하지만 아무도 쉽게 인정해주지 않는다기존 권위와 그에 따른 인맥이 있기 전까진(이는 곧 돈과 연결되 있기도 하다;). 정작 정중하게 성공할 가능성있는 작품을 내놓아도 기회를 주긴 커녕 미뤄놓고 정작 다른 이에게 떠맡게 되어 같은 대신해 성공을 거두고 그 다른 이의 공으로 돌린다애초 같은 작품임에도 말이다그러나 사실 원안도다시 말해 시작인 것 같아 보였던 노인 역시 사실 가족에게마저 화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시부모로서만 취급받는 절박한 심정에서 영감을 찾고자 자기 손자의 그림을 훔친 것이었다그 점에서 마지막 아이의 미소 낙서는 원본의 창조자로서 주는 심판이 아니었을까?


이런 복잡미묘한 이야기를 끌어 나가는네 있어서 살아있는 캐릭터가 중요할텐데영화는 스타들을 캐스팅으로 이를 잘 해결하였다특히 작품의 시작이자 끝인 노화가 역의 대배우 장광을 캐스팅한 점은 놀랍다때로는 비열한 악역으로 또 때로는 연륜을 품은 푸근한 노인으로 또 심지어는 성우로서 앙증맞은 캐릭터들의 목소리까지 연기해 다양한 면모들을 보여준 그를 캐스팅해낸 점은 기적이다그와 함께 그 다음 주인공인 젊은 천 작가 역으로도 독립영화 스타 권해성을 캐스팅한 점도 신의 한 수다씨네허브에서 상영 중인 <독서충>(2016), <비 온뒤 차차>(2020)부터 <살인의 형태>(2021) <2퍼센트>(2023)까지 여러 작품들에서 정열적인 연기들을 보이며 주목을 받고 있는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열정으로 넘쳐나지만 절박함에 허덕이는그래서 우리 시대 청년상의 얼굴을 잘 보여주었다이들과 함께 이 작가 역의 박부건과 갤러리스트 역의 이주미’, 마지막에 뫼비우스의 띠를 연결해준 아역 이서준까지 모든 이들의 연기가 연극의 합처럼 훌륭한 작품이었다여기게 핸드헬드 없는그림을 소재로 한만큼 딱 그림 같은 정면 중심 구도의 깔끔한 촬영까지 더 해 시각적 큐까지 살려주니 어찌 더 할 말이 있을까.


리뷰 : 이동준 (씨네허브 PD)

출처 : http://www.cinehubkorea.com/bbs/board.php?bo_table=bbs04&wr_id=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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