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관 감독 인터뷰
감독 김종관 (Kim Jongkwan)
시놉시스
1980년 5월 23일 계엄군의 총에 두 눈을 잃은 강해중 씨. 1980년 5월 20일 계엄군에게 남편을 잃은 정귀순 씨. 정귀순 씨는 남편 없이 살아온 지난 세월을 생각하며 ‘계엄군의 사과가 무슨 소용이냐’라고 말한다. 43년 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광주 시민들에게 5월은 상처와 아픔의 달이다.
광주가 고향인 김귀삼 씨는 1980년 5월 군부의 명령으로 광주에 출동했다. 김 씨는 당시 공수특전여단 소속의 계엄군이었니다. 고향 사람들에게 총칼을 휘둘렀던 김 씨는 그 날 자신의 손으로 상처입힌 사람들, 그리고 시민군이었던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싶어한다. 시민군이었던 김귀삼 씨의 동생은 계엄군의 폭행을 당하고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기도 했다. 김귀삼 씨의 동생은 그 때의 후유증으로 지금도 몸에 성한 곳이 없다. 계엄군과 시민군으로 갈라져썬 형제는 지난 43년간 서로를 피하며 지내야만 했다.
영화 속에는 항상 초인적인 영웅들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현실 속 역사는 평범한 사람들에 만들어진다. 위인들도 그들의 도움을 받고 그들의 입에 오리내리며 기억되며, 또 위인들도 똑같이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가슴아픈 역사가 많은 한국 근현대사도 예의가 될 수 없다. 가장 가슴아픈 5.18 민주화운동 속에서 폭압과 맞서 싸움 사람들도 있지만, 그와 무관하게 휘말려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여기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이분법적 경계가 무너져 버리게 된다. 김종관 감독의 다큐멘터리 <에피소드>가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특히 작품의 주요 ‘에피소드’인 계엄군으로서, 시민군으로서 서로 맞서는 사이가 된 김귀삼, 김귀식 형제 이야기는 이데올로기에 가족이라는 절대적 휴머니티가 무너지는 현실을 단번에 외친다. 그러나 이 비극 속에서도 김종관 감독은 희망을 놓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서로를 챙기며 함께 상처를 보듬어주는 형제의 현 모습으로 미래를 기대하게 만든다. 그들만의 미래가 아닌 계속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 모두의 미래 말이다. 가슴아픈 이야기들을 엮은 다큐멘터리 감독임에도 김종관 감독은 그의 낙관적인 철학을 들려주었다. 그 점에서 지금까지 치유되기 어려운 아픈 역사부터 종교, 문화, 젠더 등 여러 이유로 상처입고 있는 지금 세대에게도 아직 희망이 남아있음을 배울 수 있었다. 그것이 진정한 다큐 정신일 것이다.
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다큐 PD로 다큐멘터리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고, 동시에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감독 김종관입니다. ‘제작사 오월’이라는 제작사를 운영하고도 있습니다.
2. 이번 작품의 계기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처음에는 5.18 43주기를 다큐멘터리 작품을 기획하고자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원래 기획은5.18 과제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 시민 암매장 문제에 대해 다루려 하였지만, 관련해 취재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피해자들 위주로 취재하기 시작했고, 그중에서 계엄군 피해자들의 얘기를 다뤄보고자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몇몇 계엄군 피해자 출신분들을 선정해 취재를 요청했지만 협조가 잘 되지 않았고, 그러다가 마침 김귀삼씨를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3. 여러 다큐멘터리를 연출해 오신 입장에서, 그간의 제작되고 방영된 5.18 관련 다큐멘터리들과 차별점을 두고자 한 점이 있었다면?
-기존의 5.18 관련 다큐들이 그로 인해 생긴 고통들이 여전히 이어나가고 있고 그런 것들이 긴 세월동안 피해자나 가족들에게 얼마나 괴로운가가 위주였었고, 또 최근의 몇몇 작품들은 계엄군 가해자들을 중심으로 그 사람들이 어떤 일을 했고 또 얼마나 사죄하고 있나 등 전형화된 식으로 다뤄진 작품들이었다고도 생각하고요. 그렇더라면 이번 작품의 경우는 피해자와 유가족분들이 이 트라우마들로부터도 계속해서 일상을 이어나가는 모습을 다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특히 취재하면서 가장 기억남던 부분이 (극중 인터뷰해주신) 정귀순 어머님께서 계엄군 분들게 사과를 받고 싶지 않다고 말씀주신 부분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무슨 무슨 잘못이냐, 시켰으니까 했겠지”라고 말씀주셨던 것처럼 실제로 계엄군 분들도 자기 트라우마가 있으시거든요. 특히 김귀삼 씨 경우는 동생 김귀식 씨가 시민군으로 활둉하였고 5.18이 끝나고 나서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셨고, 돌아갔어도 마을 사람들로부터 심하게 질타를 받으면서 고향을 떠나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그처럼 여전한 고통이지만, 정형화되지 않은 방식으로 다루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또 마지막으로 항상 5.18 다큐멘터리를 보면은 추도식이나 전야제를 보여주지 않곤 하였기에, 그 장면을 담아 엔딩으로 마무리 짓고자 했습니다.
4. 이번 작품의 주요 이야기를 차지하는 김귀삼씨, 김귀식씨 형제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두 분을 어떻게 섭외하셨고, 또 그렇게 형제라는 코드로 접근한 이유가 있으셨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5.18 진상규명 위원회를 통하여 계엄군 출신 중에서 취재할 수 있는 분들게 협조를 구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언론에 공개되어 있는 사람들이 몇분 계셨거든요. 그 중에서 이미 방송에 나오신 분들을 제외하고, 작년 초 5.18 단체와 특전사 간의 증언회가 열렸었는데, 첫 번째로 공개증언을 해주신 분이 김귀삼씨였습니다. 그렇게 김귀삼씨를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그 때는 동생 분에 대해 전혀 모르는 있었어요. 취재하던 중에 김귀식씨 이야기를 알게 되었고 매력적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만나 인터뷰를 제안드렸지만, 김귀식씨께서 자기 이야기가 어떻게 비춰질지 몰라 거절하셨죠. 그래서 설득드려야 했고, 그렇게 어머님과의 일상, 자기 일상까지 보여주시는데 한 달 정도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설득 후에도 인터뷰를 하였으니까 이제 다 된거 아니냐고 말씀하시길래 계속 설득을 드렸어야 했어요. 이런 사연들을 갖고 계신 점을 보여줘야 되지 않겠냐고, 이것이 진짜 5.18의 아픔을 보여줄 수 있는 적합한 사연이라고 설득드려 좀 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였습니다. 형제라는 코드에 대해서도, 계엄군들에 대한 얘기 중에서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시민들을 잡으러 왔다”고 하는 이야기가 만연한데, 실제로는 경상도 뿐만 아니라 전라도 출신의 계엄군도 많이 있었고 또 5.18의 희생자가 광주나 전남뿐만 아니라 전국으로 있었어요. 그 점에서 편협되게 어느 지역은 피해자고 또 어느 지역은 가해자라는 식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고, 계엄군 대 시민군이 아니라 우리 서로가 가족인 사람들이 이데올로기나 신군부라는 잘못된 정치 세력으로 인해서 피해를 서로 보게 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남의 일이 아닌 가족과 형제가 가해자, 피해자가 되고 결국 우리 모두가 피해자다 이런 면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5. 작품 초반부터 중간중간 5.18을 경험하신 어머님들을 위한 미술치료로 그려진 그림들이 트라우마이자 치유를 상징하는 인서트로 자주 등장하는 연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술이 역사와 치유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림을 그리신 5.18의 후유증을 갖고 계신 어머님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담고자 한 의도였습니다. 사람들이 “5월 어머니집” 하면은 주로 길거리나 청와대 앞에서 시위하는 이미지들만 상상하고 파생되는데, 그 곳 어머니들도 일상 속에서 자신의 힘듦을 이겨내기 위한 일상이 있으세요. 그 중 하나가 그림이고, 그림을 그리므로써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어떤 도구가 되죠. 그림들도 보면 일반 사람들이 그리는 것보다, 어머님들의 그림들이 자기 기억을 가지고 그리이에 각자 심리 상태와 기억들을 잘 표현한다고 느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의 인거트로 삽입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마침 촬영하던 중에 그 그림 전시회가 열리게 되었고, 이도 찍고 싶어 허락을 받아 촬영하게 되었습니다. 촬영하고 보이 그동안 어머님들 집안에 걸린 그림들로써만 봤었는데, 전시관에 전시된 모습으로 보니까 더 새롭게 느껴질 수 있었어요.
6. 오랫동안 다큐를 연출한 입장에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점이 있으시다면?
-저 나름대로는 신경쓰는 부분이 있다면, 다큐멘터러의 전체적으로 흐름을 보면 큰 사건 혹은 어따ᅠ간 중요한 사회적 흐름에 소시민들이 따라가고 또 그를 극복하는 과정들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져요. 저는 그들을 최대한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촬영에서도 포작하고자 집중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예를 들어 이렇게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애요. 극중 초반 인터뷰해주신 강해중 어머님 댁에서 촬영을 할 때 어머님께서는 방에서 다른 일을 하고 계셨고 인터뷰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10년 전에도 하였고 20년 정에도 하였는데 이제 이런거 해서 뭐하냐며 더 하고 싶지 않다고 계속 말씀을 하셨죠. 그에 저는 좀 듣고 싶다, 오늘 날씨도 좋고 어머님의 5월에 대한 기억이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라며 계속 설득드리고 나서 잠시 나와 어머님을 기다렸죠. 그렇게 마당에서 기다리면서 촬영감독과 댁 앞의 풍경을 찍어보기로 했어요. 꽃들이랑 풍경소리 창문 밖에서 비치는 모습들을 찍으면서 1,2시간 정도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끝에 어머님께서 허락해 주실 수 있습니다. 비록 영상에서는 표현이 되어 있지 않지만, 그렇게 기다림의 시간들 속에서 최대한 그분들의 생각이나 어떤 상태의 이미지들을 담아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7. 제작 중 기억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방금 얘기드린 강해중 어머님을 기다리면서 앞마당 풍경을 촬영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이었고... 또 한 가지로 김귀식씨와의 촬영의 경우 계속 만나고 싶다고 요청을 드렸었는데 데드라인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촬영을 마무리 짓기로 한 5월이 바로 지나가 버릴 것 같은 상황이었죠. 5월이 지나가면 못 찍는 거였죠. 그래서 재촉하던 끝에 출발하기 전날이 되어서야 마침내 연락이 됐고, 당일 날 만나는 장소도 광주에서 보기로 했다가 신안 하의도로 바뀌게 되었죠. 그렇게 섬에 들어가니까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뭔가 아련하고 둘만의 공간이라는 느낌이 프레임에 잡힐 수 있었죠. 그래서 찾아가길 잘했다는 생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8. 그동안 <택시 운전사>, <26년> 등 영화부터 드라마까지 5.18에 대하여 많은 콘텐츠들이 만들어져 왔는데, 그에 대한 의견은 어떠신가요?
-이번 작품 외에도 5.18 관련해서 준비 중이 작품이 있어 올해도 제작지원 신청을 위해 프레센테이션을 하였었는데, 심사위원분들 중에서 처음 하시는 말씀으로 모두 “어디서 봤던 이야기들이다.” “특별한 거 없냐”고 얘기주시는 분들이 많으셨습니다. 5.18 이야기를 하면 심사위원들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너무 식상하고 재미가 없을 거라는 선입견이 있는 거죠. 그렇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너무 숨겨진 이야기들이 많고 아직 발굴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기에, 5.18이 각종 드라마나 영화나 문학이나 뮤직비디오까지로 계속 만들어지는 게 그런 이유라고 생각해요. 충분히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을 다룰 수 있는 것들은 굉장히 다양한 작품으로 만들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다양하게 시민들과 관객들과 시청자들한테 입에 오르내리고 다양하게 논의가 나오고 이런 일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요즘 유행인 K콘텐츠를 만드는데 어떤 기반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역사들을 이야기해 왔기에 더 좋은 작품들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9. 이번 제4회 5.18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시게 되셨는데, 소감은 어떠신가요?
-이번 작품을 함께해 주신 최경아 작가님께서 이번 5.18 영화제를 추천해주셔서 이번 작품을 내게 되었는데, 솔직히 별 기대를 하지 않았고 상을 받는다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막상 오늘 시상식에서 우수상에 호명 안되고 최우수상에서도 호명이 안되니 떨어진 건가 아니면 대상인가 반신반의하다가 마침내 실제로 대상을 받게 되어 신기했습니다. 5.18 영화제이기에 이번 작품을 이렇게 잘 봐주신 것 같기도 하고, 또 이번 작품을 만들면서도 김귀삼씨 가족의 아픔들 그리고 5월 어머니의 집 어머님들의 아픔들이 공감이 돼서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10. 작품활동을 위해 평소 영감을 받는 곳이 있다면?
-글쎄요. 올해로 제가 이제 만으로 50이 되는데, 그렇게 기성세대다 보니 요즘 트렌드에 맞는 다큐멘터리는 어떤 것들이 좀 있나 많이 검색을 해보는 편이고, 제가 영향을 받은 다큐멘터리를 꼽는다면 대학원에서 연출전공을 하면서 보았던 <칠레 전투> 3부작(1975-1979, 파트리시오 구즈만)을 꼽을 수 있습니다. 총 5시간에 달하는 작품이라
하루 전체를 잡고 보았는데 굉장한 충격을 받았고 그때 이후로 소셜 이슈에 관심이 많아지게 된 것 같아요.
11. 이번 작품에 사용하신 카메라와 편집 프로그램은 어떤 기기였나요?
-소니의 FX3와 FX6, 캐논의 C500으로 촬영하였고, 파이널컷 프로로 편집하였습니다.
12. 이번 5.18 영화제와 이를 기획하고 온라인을 통해 독립 단편영화들을 상영해주는 씨네허브 플랫폼에 대한 의견 부탁드립니다.
-사실 씨네허브에 대해서 이번 영화제를 통해 이렇게 알게 되었는데, 이렇게 저희 작품 신경 써주시고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온라인 플랫폼을 제공해주시는 것도 좋은 기회지만 저희가 독립 단편영화를 제작하면 무료로 공개되어 볼 수 있는 것도 좋긴 한데, 상황에 따라서는 회원가입을 통해서 일정 부분 관람료를 받는 식으로 해서 적게나마 상영에 대한 저작권료를 받을 수 있는 플랫폼으로 될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저와 같이 독립 다큐를 제작하는 분들께서 방송 플랫폼이 아니면 상영이 어렵고, 사실 방송 플랫폼도 지방 방송국의 경우 제작비가 거의 없어 송출료를 줘야 방영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계속 어딘가에 제안을 하고 후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로 업을 이어나가기가 쉽지 않으니 플랫폼들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수입을 받을 수 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3. 차기 계획과 함께 마지막 인사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 촬영 막바지에 후반작업 중인 작품이 있습니다. 이도 5.18에 대한 이야기로 제가 5년 동안 취재한 이야기입니다. 5.18 기간 동안 어느 학교에서 벌어진 일인데 이 사건으로 인해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갈라지게 되었고, 이제 서로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 장편 다큐멘터리 작품입니다. 올해 8월 중에 완성될 예정이고, 내년 영화제를 통해서 뵐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인터뷰 : 이동준 (씨네허브)
http://www.cinehubkorea.com/bbs/board.php?bo_table=bbs04&wr_id=6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