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 인류가 자연을 신성시하고 숭배해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인류학, 고고학자들은 기독교 문명 이전 고대문명에 대해 연구한 결과 자연으로서 여신을 주로 숭배해왔다고 밝혔다. 마치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처럼, 식량으로 쓸 수 있는 동식물을 제한없이 인류에게 생산해주는 모습을,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여성, 어머니에 비유하며 숭배하였다는 것이다. 동시에 자연재해로 생명마저 없애버릴 수 있는, 마치 거세하는 것과 같은 힘을 두려워 해왔다. 즉, 태초 인류는 자연을 숭배하면서 여성도 숭배해왔다는 결론이다. ‘프로이드’도 현대 인류 역시 그에 대한 기억이 아직 남아 있어 자연으로서 어머니를 뒤엎고 아버지를 상징하는 기술 문명으로서 건국해 온 데 대한 죄책감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이론은 ‘바바라 크리드’나 ‘줄리아 크리스테바’와 같은 현대 철학자, 심리학자들에 의해서도 증명되어져 태초와 마찬가지로 남성을 거세할 수 있는 여성의 힘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다. 그만큼 그동안의 인류 문화에서 자연은 여성으로 상징되 같은 여성을 보호하고 똑같이 재생산하는 능력이 없는 남성을 거세시킬 수 있다는 설화나 사고가 많이 자리 잡아 있다. ‘줄리 로하트(Julie Rohart)’ 감독의 단편영화 늑대가 온다를 보면서 연상됐던 생각이다
시골같은 어느 평야. 한 남자와 두 소녀가 자동차로 급하게 어디론가 달린다. 어느 지점에 도착한 한 소녀의 아버지는 딸 ‘사라’와 그의 친구 ‘안나’를 내려주고 숲을 가로질러서 기차역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다. 그렇게 숲을 거쳐 가던 안나와 사라는 끝없는 숲길에 지치고 되돌아갈 생각까지 한다. 그때 멀리서 트럭 소리가 울려 온다. 오히려 소녀들은 다급하게 숨는다. 곧 트럭에서 남자들이 내린다. 영화는 그들의 정체를 바로 보여주진 않지만, 독일어를 하고 군화를 입은 모습에서 그들이 독일군들임을 알 수 있다. 이어서 숨는 두 소녀들이 유대인이고 영화 속 시대가 2차 세계대전 때라는 점 역시 알게 된다. 소녀들은 가파른 언덕 바로 밑 틈새에 숨고 독일군이 그들 머리 바로 위로 다가온다. 숨을 죽인 끝에 소녀들은 위기를 넘긴다. 그러나 곧 늑대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다시 위기가 찾아온다. 소녀들은 한시라도 빨리 숲을 벗어나고자 뛰고 뛴다. 그 끝에 결국 소녀들은 늑대와 마주한다. 자칫하단 잡아먹힐 일만 남은 상황. 그러나 늑대는 마치 강아지 같은 눈으로 지긋이 소녀들을 바라보더니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나버린다.
한 숨 돌린 소녀들은 얼마나 걸었을까? 비바람이 몰아치던 중 소녀들은 오두막을 발견해 급히 들어가 허기를 달랜다. 그 순간 오두막 주인 할머니가 총을 들고 나타난다. 금새 소녀들이 유대인임을 알아챈 할머니. 자신의 집에 들어온 침입자에 당시 국가에서 적으로 삼던 유대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아델’ 할머니는 친절하게 소녀들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한다. 그렇게 다정한 식사 시간을 갖던 사이, 오두막으로 독일군 장교 두 명이 찾아온다. 소녀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 준 할머니는 평소에도 그랬다는 듯 장교들을 맞이하며 소녀들을 자신의 손녀들이라고 소개한다. 그에 당연히 소녀들에게 대쉬하며 와인과 춤을 권하는 장교들. 그러나 사라는 한 장교 손에 들린 아버지의 시계를 발견한다. 어쩌면 장교가 아버지를 죽였을까? 그럼에도 정체를 들킬까봐 울컥할 것 같은 감정을 멈추고 장교들의 손길을 뿌리치며 침실로 자리를 피한다. 그날 밤 장교들 역시 술에 취해 같은 오두막에서 잠든 상황에서 사라는 복수를 위해 칼을 든다. 그러나 이미 정체를 눈치챈 장교 한 명이 먼저 공격하고, 다행히 안나가 도와주어 위기를 넘긴다. 이어서 다른 장교 역시 총을 들고 미리 대치하지만, 이번에도 할머니 아델이 총으로 그를 위협하며 다시 구해준다. 그리고는 셋은 장교를 산 채로 숲 한가운데 묶어두는데......
사실 영화를 보면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이하 <바스터즈>)이 연상되었다. 나치 군인들이 오두막에 오고 소녀들은 정체를 숨기며 침묵하는 장면은 <바스터즈>의 오프닝이나 카페 장면과 똑같다. 소녀들은 말과 감정을 아끼며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는 동시에 빨리 그들을 회유하기 위한 숨 막히는 심리전을 벌인다. 물론 <늑대가 온다>는 <바스터즈>처럼 거친 폭력이나 유희 같은 건 없다. 대신 보다 조용하고 건조한 편이다. 그럼에도 그와 비교할 수 있을 만큼 대사와 침묵 사이에 긴장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가 <바스터즈>와 차이나는 지점이자 특유의 본색은 결말에 나타난다.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소녀들을 장교로부터 구해준 아델 할머니는 장교를 자신이 사는 숲 한 가운데 묶어놓아 늑대 밥으로 던져준다. 결국 이 전쟁에서 살아남는 이들은 여성들이다. 그 중에는 숲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할머니가 있다. 이런 할머니의 모습은 학자들이 연구한 여성을 보호해주는 자연의 여신의 헌신과 같이 보여진다. 그와 함께 늑대-자연이 살육을 일삼은 장교를 심판한다. 이 역시 자연을 거르스려는 남성들을 거세하려는 자연의 힘과 같이 보인다. 사실 이러한 자연의 대한 묘사는 영화 앞에서도 늑대가 마주한 소녀들을 평온한 눈으로만 보며 지나치는데서 이미 드러난 셈이다.
어쩌면 이 영화가 최근의 젠더 갈등 이슈에 맞춰서 남성을 응징하는 여성적 연대라고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영화가 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동화, 설화 서사에 대한 애정과 함께 2차 세계대전이라는 서구에 있어 큰 죄의식으로 갖고 있는 역사에 그를 맞추며 통찰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감독도 같은 생각을 하고 앞서 언급한 연구 자료들을 참조하여 작품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그 설정부터 스토리만으로도 꽤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혹여나 영화를 보면서 동화가 연상되었다면 역시 같은 이유일 것이다. 유럽의 전래 동화들에서도 역시 자연과 문명, 그로써 여성과 남성 간의 갈등이 구축을 이루고 자연의 힘을 빌리며 승리하는 구조가 많이 나타난다. 특히 영화와 유사한 [빨간 모자] 동화에서도 자연주의적으로 사는 할머니와 소녀로서 여성적 연대와 둘을 해치려는 포악한 늑대로서 남성적 폭력 간의 갈등이 묘사된다. 왕자에 의해 구출되어진다는 이유로 가부장적이라 지적받는 공주를 주인공으로 한 동화들에서도 이러한 해석은 충분히 적용된다. 애초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고 숲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해쳐 나간다는 공통된 구성 서사가 그 지점이다. 심지어 그를 해치려는 마녀도 똑같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성의 힘에 대한 불안과 함께 그를 인정하고 수 있음을 역시 파악할 수 있다.
동화처럼 단순하지만 그만큼 강력한 서사, 원색감과 명암대비가 잘 묻어나는 그림같은 촬영, 타란티노 못지 않은 대사와 호흡 연출로 일궈낸 서스펜스, 그리고 상징성까지로 다양한 재미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게 해준 완성도 높은 단편이었다. 초기 단편임에도 여러 뮤직비디오와 TV 드라마 에피소드들을 연출해 온 만큼 미쟝센부터 연기 연출까지 안정되게 잘 다뤄낸 로하트 감독의 실력이 돋보였다. 무엇보다 계속 강조해 온 동화같은 서사성, 즉 신화 및 문학 학자들이 주장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원초적인 ‘원형 서사’에 대한 상상력을 다음 작품에서도 볼 수 있길 기대하는 마음이다. 그와 함께 가녀린 소녀에서 여전사 급으로 성장하는 두 주연배우 ‘알리지 란란데(Alyz?e Lalande)와 ’아니스 패렐로(Ana?s Parello)‘ 역시 훌륭하였다. 이 둘 역시 빠른 시일내로 할리우드에서 다시 만나 볼 수 있기를 기대할 따름이다.
Genre 장르 : 공포
Running Time 상영시간 :
Director/Writer 감독/작가 : 줄리 로하트 (Julie Rohart)
Cast 출연 : Alyzée Lalande, Alexis Loizon, Anaïs Parello
Production 제작 : MARCEL FIL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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