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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상명 Oct 02. 2019

독립잡지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고전을 다루는 잡지 <gusto>와 네 편의 영화

https://tumblbug.com/gusto3

올해 가장 많은 힘과 시선을 쏟아부은 독립잡지의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먼지 쌓인 고전 문학을 털어내어 꺼내 읽고, 부모님보다도 먼저 세상에 빛을 본 고전 영화를 볼 때마다 묘한 쾌감이나 숭고함을 느끼곤 합니다. 인상이 깊었던 문학의 작가나 영화의 감독ㆍ배우를 검색할 때면 이미 작고하였거나, 주름이 가득한 노존이 되어버린 현재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그들이 가장 빛나던 시절 세상에 남긴 그러나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작품 앞에서, 저는 엄숙한 기분으로 몸을 낮추고 숭고한 경외심으로 그를 우러러보곤 합니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Das Cabinet Des Dr. Caligari, 1919)
헤르만 헤세(1877-1962)

우연히도, 참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표현주의 기법의 효시가 된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Das Cabinet Des Dr. Caligari, 1919)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같은 날 감상하게 된, 그런 작지만 기이한 나만의 역사가 돼버린 날. 두 작품은 우연히도 1919년이라는 같은 해에 탄생하였고, 21세기의 나는 우연히도 같은 날 이 두 작품을 만난 것입니다.


그 여운이 가실 무렵, 괜스레 어머니께 그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 이 두 작품이 엄마가 태어나기 무려 45년 전에 만들어졌대요."

사실 그런 우연적 사건은 오직 나에게만 국한된 일이기에, 조금도 놀라지 않은 어머니께선 이런 물음을 던지셨습니다.


"그런 오래된 작품을 왜 봐?"


분명 어머니에게 그 물음은 호들갑을 떠는 아들에게 건넨 단순하고 형식적인 물음이었지만,

이는 제게 '고전'의 존재 의의에 관한 거대한 물음처럼 느껴졌습니다.


'먼지 쌓인 고전은 왜 현대에도 유효해야 하는가?'
'그 고전을 우리가 왜 접해야 하는가?'
더불어 '그렇다면 고전이라고 칭하는 것은 어떤 작품인가?'


어머니의 물음으로부터 파생된 이 거대한 질문들은 제게 깊은 사유의 기회를 안겨줬습니다.

곰곰이 사유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먼지 쌓인 고전은 왜 현대에도 유효해야 하는가?'

 -> 우리의 삶에는 시간이 흘러도 계속되는 가치들이 있고, 고전이란 이러한 영속적인 이상과 감정, 그리고 순간들을 담고 있다.


 '그 고전을 우리가 왜 접해야 하는가?'

-> 오늘을 사는 우리에겐 언제나 내일을 마주할 힘이 필요하다. 45년 전, 더 나아가 100년 전 사람들도 오늘의 나와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 힘의 원천과 해답을 어쩌면 고전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고전이라고 칭하는 것은 어떤 작품인가?'

-> 살아가며 마주할 모든 질문들을 함께 고민해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작품. 그리고 시간이 흘러 먼지가 쌓여도 변치 않고 끊임없이 재해석될 수 있는 무한한 원천.

gusto 3호_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어머니의 물음으로 피어난 작은 사유의 시작이 저를 'gusto'라는 독립잡지로 이르게 만들었습니다. 고전은 끊임없이 재해석될 수 있는 무한한 원천이기에 고전의 경험은 사람마다 각기 다를 것이며, gusto라는 잡지가 고전을 자유롭게 해석하고 표현하는 열린 플랫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지향점을 갖고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호의 주제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입니다. 시기는 다르겠지만 결국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나'에 대한 물음과 성장통을, 나의 20대 초반이 지나기 전 꼭 한번 다루고 싶었습니다. 특히 올해는 <데미안>이 출간된 지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에, 2019년이 지나기 전에 꼭 다뤄야만 했습니다.

영:감(感) l <친애하는 나의 괴물, 나의 흑조, 나의 압락사스>  진상명
그러므로 나는 아직 이 세상의 낭만이 있다고 믿는다. 무참한 수레바퀴 아래서 우리는 데미안을 외부에서 필사적으로 찾지 않아도, 투쟁하는 ‘나’가 모여 영원히 죽지 않을 시인의 사회를 꿈꾼다. (본문 中)

저는 이 독립잡지의 편집팀이자, 영화 비평 지면 '영:감(感)'이라는 코너를 맡은 작가로서도 함께합니다.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 두 작품과 함께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영화 네 작품(<몬스터 콜>, <블랙 스완>, <4등>, <죽은 시인의 사회>)을 엮어낸 글을 싣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gusto 3호는 시, 에세이, 그림, 비평, 인터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객원 에디터 20여 명과 함께 합니다. 다채로운 형태와 화법으로 담긴 소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기에, 이번 프로젝트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https://tumblbug.com/gusto3

이러한 뜻을 함께하는 저를 포함한 세 명의 편집팀이 함께 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gusto를 세상에 내놓는 일이, 오늘을 사는 우리가 어제를 읽는 시선을 공유하며 내일을 마주할 힘을 얻는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이번' gusto 3호_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는 현재 텀블벅에 소개되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천천히 읽어 보시고, 마음에 가닿는다면 gusto 3호와 함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잡지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여러분과 뵙길 바라며,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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