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호관광호텔 (2)

아직은 호텔(2)

by 세나당

“퇴실이요.”

아까 그 여자가 키를 내민다. “네 다 되셨습니다” 하는데, “여기 어디 가볼 데 있나 요?” 한다.

“저기 초록색 꽂혀있는 게 태호관광지도예요.”

“아. 뭐 특별하게 추천해 주실 데는 없고요? 태백산 천제단에 오르고 싶긴 한데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아서.”

시내의 연못가와 물닭갈비, 연탄빵 맛집 몇 군데, 바람의 언덕, 최근 지어진 카페 몇 개 등 젊은이들에게 익숙할 법한 이름 몇 개를 들어도 시큰둥하던 여자는 검룡소라는 단어에 눈이 번쩍인다. 검룡소. 나도 오랜만에 불러보는 이름이네.

“주변에 뭐가 많진 않은데, 한강이 시작되는 곳이에요.”

여자가 떠나고, 청소직원들도 일을 마쳤다고 퇴근 인사를 한다. 아직 새로 들어온 예약은 없다. 아무래도 진수에게 합류를 해봐야겠다.

진수가 불러준 정인이 부동산 근처 식당에 도착했을 때, 진수는 이미 얼굴이 붉었다. “무슨 낮술이야? 술 끊었다면서?”

“끊었었지. 말짱해. 한잔해”

몇 번 권하면 마시려고 했건만, 한차례 손사래를 쳤더니, 진수는 벌떡 일어난다. “그러면 거기 가자.”

“어디?”

“우리 어렸을 때 둘이서 갔던 데 있잖아.”

휙 나가버린 진수를 따라나서는 내 뒤통수에 정인이는 “호텔 생각해 봐. 살 사람 있어.”라고 외친다.

다시 나는 복잡해진다.

나는 무엇을 붙잡고 있는 것일까.

“아이 전깃줄만 아니면.”

조수석 창문 밖으로 손을 뻗고 사진을 찍으려던, 진수가 중얼댄다. 끝없는 초록색 밭과 능선이 이어진다. 노랑 빛이 섞인 초록색은 배추. 좀 더 진한 회색빛 초록은 양배추. 드문드문 곰취. 그 사이를 가르는 전깃줄들. 산정상의 풍력발전소부터 이어지는 철탑과 전선이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초록의 땅과 푸른 하늘을 가르고 있다.

검룡소로 향하는 길.

진수는 배추밭의 초록색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우와. 나도 여기 이사 올까.”

“좋지” 하고 대답하는 끝 맛이 쓰다.


검룡소 주차장은 꽤 잘 단장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곳에 온 지 10년은 더 되었다. 수풀을 헤치고 가야 하니 긴 바지로 갈아입으라고 진수에게 차에 실려있던 작업복을 내밀었다. 진수는 차 안에서 쓱 쓱 옷을 갈아입으며, 여기가 거기 맞냐고 한다.

그래. 그땐 이런 입구가 없었지. 진수가 전학 가기 직전, 둘이 학교 땡땡이치고 왔던 그날의 이곳은 산에 눈이 소복이 덮이다 못해, 꽝꽝 얼어붙어 있었었다.

딸꾹질을 끅끅하며 진수는 말없이 앞장서 걷는다. 왜 왔을까. 굳이 그 사연을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알 것만 같은 기분으로 성큼성큼 걷는 진수를 뒤따랐다. 예전과 달리 등산로는 널찍널찍하게 잘 정비되어, 풀에 쓸리거나 뱀에 물릴 걱정 없이, 발목을 훤히 드러내고 걷는 이들도 많았다.

20분쯤 걸었을까. 평지에 가까운 오르막을 오른 끝에, 검룡소라고 쓰인 큰 돌과 함께 못 보던 다리가 나타났다. 어. 저 돌 위치가 저기였나. 그 옆엔 없었던 계단도 있다. 계단을 몇 발짝 오르니, 그곳이다.


한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는 곳. 눈과 얼음에 둘러싼 곳에 샘솟아 흐르는 물과 살아 움직이는 듯한 초록빛 이끼가 일렁이던 곳.

얼마나 많은 물을 속에 품고 있는지 아무도 정확하게 모른다고 한다. 이 물이 흘러들어 한강을 채우고, 서쪽 바다까지 흘러간다고. 그리고 그다음은. 어디까지 갈까.

“검룡이 검은 용인가?” 진수가 물었다.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네, 이무기네!” 하고 표지판을 보던 진수가 외쳤다. 검룡은 용이 아니라 이무기란다. 동해에서 이무기가 용이 되겠다고 이곳까지 왔다가 끝내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몸부림치던 자리에 물길이 생겼단다.

진수는 갑자기 흥분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이 봐봐. 검룡은 용이 아니야.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라고. 이무기가 이 땅을 지키는 거야. 이무기가 한강 물을 만드는 거라고. 용이 아니라!”

나는 대답 대신 어디서부터 인지 솟아오는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도 관광객들은 몇 차례 우리 앞에서 사진을 찍고 떠나갔다.

그래 내게 남은 건 그것밖에 없다. 그런데도 어쩌겠는가.

어떤 꿈은 물줄기를 만들기도 한다.

반백 살이 먹었어도, 꽉 말라붙은 우물 같아 보여도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는데. 뚝뚝뚝. 물방울 소리가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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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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