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호관광호텔

아직은 호텔 (1)

by 세나당

해가 건물 뒤편 산을 타고 슬쩍 올라온다. 한 줄기 내려오는 햇살에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빛깔이 난다. 나는 호텔 진입로 담벼락에 붙은 잡초를 쓸어내던 참이었다. 매일 반복해도, 잡초들의 잎새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살아난다. 금방 감은 듯 머리칼이 젖은 여자가 민소매에 반바지 차림으로 호텔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어제 한실로 입실했던 사람이다. 민소매는 이 고장에선 한여름에도 좀체 볼 수 없는 복장이다. 어젯밤과 달리 좀 부은 듯한 인상이었다. 한실 숙박이 괜찮았으려나. 아는 사람들은 이 호텔에선 한실에 묵지 않는다. 단체 손님이 있어 양실은 그곳에 주고, 갑자기 잡힌 어제 예약은 한실 온돌을 배정했다. 상대는 나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아 나는 하던 비질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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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호텔 앞다리에 서서 한참을 냇가를 쳐다본다. 산자락에서 흘러나오는, 희끄무레하면서도 미끄러지는 듯 흘러가는 회색빛 물은 석회질과 광물들을 품고 있어, 물놀이나 음용으로는 적합하지 않고, 물고기도 살지 못한다. 산맥을 타고, 암석 틈에서 물줄기가 늘 샘솟아서 흘러내리지만, 사람이 쓸 수 있는 물은 드문 곳이 이 고장이다. 여자는 다리난간에 아슬하게 기대어,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라도 들여다보는 듯 계속 개울을 내려다본다. 비록 무릎 높이밖에 오지 않는 물이지만, 쳐다보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회색빛의 태호의 물은 물귀신의 머리카락처럼 이상하게 사람을 홀리는 힘이 있다.


“아침 일찍부터 청소네. 대단하다.”

진수가 일어났는지, 나와서 담배를 한 대 물고 있다. 러닝 차림에 객실 화장실 슬리퍼를 신고 나와서는, 쌀쌀하다는 듯 피부를 연신 문질러대었다. 진수는 어제 서울에서 내려왔다.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나와 서울에서 직장생활까지 같은 업계였기에,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몇 안 되는 친구다. 차이점이라면, 나는 서울을 떠나 몇 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고, 진수는 고향에 이제 연고가 없다. 진수 부모님이 태호를 떠나신 게 한 40년은 넘은 듯하다. 우리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각각 다른 학교로 갈라졌을 때, 갑자기 집을 팔고, 가족이 다 타지로 떠났다고 아버지에게 전해 들었다. 진수가 성적이며 성격이며 워낙 뛰어났던 친구라 갑작스러운 이사에 대해, 진수아버지가 정선 카지노에 들락거려서라는 둥, 어머니와 이혼을 한다는 둥 동네 아이들 사이에도 소문이 돌았었다.


서울에서 증권사 선배 소개로 연락이 끊겼던 진수를 다시 만나 슬쩍 물어보았을 땐, 외가였던 청주로 가셔서 살다가, 어머니는 몇 년 후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그곳 요양원에 계신단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도 태호에 연고가 없는 건 매한가지다. 고향과 나를 이어주는 건, 어머님이 물려주신 이 낡은 호텔과 뒤편 산비탈에 모셔진 두 분의 묘소뿐. 아내와 딸은 여전히 서울외곽에 살고 있고, 주말부부라는 명목으로 시작한 별거 생활은 벌써 네 해째 접어들고 있다. 같이 증권 하던 동료들 몇이 초반에 왔다 갔지만, 이후 기별은 드물었다. 간혹 경조사나 퇴직 소식이나 건너 건너 들을 뿐이다. 우리끼리는 뉴스에서나 보지 말자는 농담을 하곤 했다. 그러다 어째, 진수가 날 보러 오겠다며, 엊저녁에 갑자기 내려와 방을 잡았다. 주말엔 카운터 보느라 바빠서, 끝나고 방에서라도 한잔하자고 했더니, 진수는 그새 술을 끊었단다.

“오늘도 바쁜가?” 담배를 두 개비째 피우며, 진수가 물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어제보다 좀 낫지.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진수와 이야기를 하는데 여자가 씽 하고 우리 앞을 가로질러 숙소로 올라갔다. 왠지 가슴이 철렁했다. 어디선가 본 표정이었다. 그래. 아내도 이 호텔에 왔을 때 한참을 저 다리에 서 저렇게 서 있었더랬다.

“음. 날이 제법 쌀쌀하네. 아직 여름인데.” 진수는 대답을 뜸 들이다 묻는다. “정인이는 잘 있나?”

“아마. 그럴걸. 시내에서 부동산 한다.”

“그럼, 거기나 다녀올까.”

진수에게 주소와 연락처를 적어주고, 가서 합류하겠다고 하고 호텔 뒷길을 쓸러 올라갔다. 호텔 뒤편에도 작은 산책로가 있다. 여기 산책로가 있는 걸 아는 이도, 다니는 이도 거의 없지만, 늘 비질을 해야 마음이 편했다.


내게 남은 유일한 것.

호텔을 떠올리면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가 생각나기 때문이었다. 탄광에서 일하시던 아버지의 재산을 불린 건 어머니였다. 아버지의 얼굴이 씨꺼매질 때, 어머니의 얼굴은 뽀얗게 피었다. 태호의 부동산의 커피맛은 다 보셨을 것이다. 차곡차곡 모은 월급에 빚을 내어, 호텔이 자리한 이 땅과 집이 있던 뒷산까지 샀을 때, 입구의 저 다리 위에서 어머니는 내 손을 꼭 붙들고, “여기가 우리 꿈이야.” 하셨던 것을 나는 여태 기억한다. 표정이 늘 희미하시던 아버지도 그날엔 입가에 미소가 서리셨었다. 탄탄한 팔과 어깨에 비해 몸통이 가늘던 아버지가 땅을 한참 쳐다보시는 장면은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다. 물줄기가 흐르는 산비탈. 골짜기란 말이 더 정확했지만, 길이 들어서고 호텔부지를 평평하게 만들어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게 30여 년 전이다. 그리고, 호텔공사 첫 삽을 뜨던 날, 아버지는 쓰러져 영 돌아오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종종 아버지 아니었으면 호텔 두 동 다 못 지었다고, 아버지 폐 값이라며 씁쓸하게 웃으셨다. 아버지의 사망 보험금이 거기 다 들어갔다나. 그래서였을까. 어머니는 갑자기 쓰러지시기 전까지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호텔을 쓸고 닦으셨다. 호텔주인은 정작 여행 한 번 제대로 못 가시고는.


한때, 지역 TV에도 소개되고, 차 있는 젊은이들이 드라이브길에 들르던 태호관광호텔은 빛이 바래고, 요즘 호텔은 대체로 단체와 공사 달방 손님으로 채워지고 있다. 간혹, 주말에 타지에서 온 커플 손님들이 오는 데, 이게 무슨 호텔이냐며 입구에서 싸우는 일도 빈번하다. 미리 알아본 외지인들은 정선의 괜찮은 리조트로 숙박을 잡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예약이 아니라면 커플 손님은 거의 없다. 그래도, 펀드고객 응대하던 차분한 말투로 태호에 대해 짚어드리면 커플들은 대체로 한결 수그러진 태도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오르곤 했다.

진수는 깔끔한 차림으로 택시를 불러 나섰다. 정인이랑 점심 먹기로 했단다.

정인이. 어머니 돌아가시고, 한동안 비었던 호텔을 정비하고, 다시 열었을 때, 초등학교 동창 정인이가 찾아왔었다. 몇십 년만인데도, 쌍꺼풀이 찐한 눈매와 군살 하나 없이 까무잡잡한 피부는 바뀐 게 없었다. 다만, 자그마했던 목소리는 사회생활 탓인지, 아이 엄마여서인지 꽤 까랑까랑해졌다.

“오. 이제 호텔 사장님 되셨네. 여기 내려올 줄은 몰랐는데.”

그게 그 아이의 첫마디였다. 그리고, 설레는 내 마음과 상관없이 그 애는 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이 동네, 잘 안 될 거야. 팔아.”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 뜨끔했다. 그리고 잠시 흔들렸던 것도 사실이었고. 그렇게 생각해 보자고 하곤, 매달 수입 정산을 할 땐, 그 애의 말을 떠올렸고, 그다음 날이 되어, 아침이 면 빗자루질을 하노라면 잠시 잊어버리며 네 해째 살고 있다. 그리고 그사이 경기는 눈에 띄게 식어가고 있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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