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칼바리에서
세 시간을 달려 퍼스의 북부 칼바리 해변에 도착한 소영과 진수는 저녁을 먹으려 숙소에서 나섰다. 볼드체로 지도에 쓰인 지명과 달리 동네는 소박해서 식당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호텔에서 200미터쯤 거리에 캥거루 스테이크와 커리 그리고 맥주를 파는 적당한 음식점이 있어 그곳으로 정하고 둘이 너른 호텔 부지를 막 벗어났을 때쯤 맞은편 웅덩이에서 한국에서와는 조금 다른 소리로 개구리가 시끄럽게 울었다.
“외국에선 개구리도 외국말을 하네.”
진수가 까욱까욱하고 소리를 따라내려 애썼을 때 소영은 오른쪽 크록스 바닥에 으깨지는 무언가의 감촉을 감지했다. 발을 들어보니 하얀 크록스 바닥 중간이 까맣게 변해있었다.
“으! 자기도 조심!”
소영이 깨끔 발을 내디디며 외쳤다. 한 발 한 발이 지뢰밭일 줄 몰랐다. 길엔 염소똥보다 조금 크게 동글동글하게 뭉쳐진 따끈따끈한 배설물들이 가득했다. 핸드폰 플래시를 밝혀 길을 비추자 몇 cm마다 하나씩 검은 구체가 가득했다.
“아니, 우리 호주 와서 캥거루 한 마리도 못 봤는데 똥은 왜 이렇게 많아?”
로드킬이 흔하다는 캥거루를 호주에 온 지 며칠이 지나도록 눈꼬빼기도 못 본 둘이었다. 대신 오는 길에 지겹도록 많이 파리에 시달렸다.
진수가 소영보다 한 발짝 앞서 걸으며 멀찍이 라이트를 비췄고, 그때 눈앞에 초록빛 섬광이 보였다.
“앗!”
마치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거대한 생물 여러 마리가 그림자 속에서 나타났다. 그중 작은 몇 마리는 좌우로 콩콩콩하고 뛰었지만, 중앙에 선 가장 거대한 아이는 불빛에 맞서 눈에서 레이저를 쏘듯 인간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깨가 진짜.”
소영의 말을 진수가 이었다. “넓다.”
과연 캥거루는 어깨깡패였다. 천진하게 좌우로 뛰어다니는 캥거루들의 아빠라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보디가드? 자세히 볼수록 그림자 속에 움직이는 생물의 숫자는 늘어났다. 잠이라도 자듯 가만히 있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풀을 뜯어먹는 아이, 서로 쌈박질을 하는 아이가 있었고 딱 봐도 수문장처럼 보이는 대장이 놀이터 입구를 막고 있었다.
“돌아가자”
둘은 맞짱대신 우회를 택했다.
인간은 자연을 보호해야 하니까. 아니, 사실은 그들이 이곳의 주인이라는 것, 특히 이렇게 어두운 밤에 그들의 영역에 들어가선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 돌아가 도착한 식당에서 그들은 캥거루 스테이크 대신 커리를 시켰다. 시원한 라거를 쭉 들이키고야 그들은 무언가 벗어난 기분이 들었다. 소영은 오른 발바닥을 바닥에 비벼 연하게 남은 흔적을 닦아내었다.
똥이 있는 곳에 생명이, 오랜 땅의 주인이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