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노래

Swag. 오늘 우리는 스웨깅을 할 거예요

by 세나당

“Swag. 오늘 우리는 스웨깅을 할 거예요.”

양손 검지와 중지를 두 차례 구부리며 인솔자가 말했다. 그리고 인적 드문 길가에 참가자들을 내려주곤 밤에 불을 피울 장작들을 주워 나르라고 했다. 돈도 많이 냈는데, 이런 것까지 직접 하나란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나약한 동양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말없이 나무를 주워 날랐다.

힙합에서 나온 말인 줄 알았는데, 텐트도 치지 않고 맨바닥에 침낭만 덮고 자는 걸 ‘스웨그’라고 한단다. 캠핑의 끝판왕 같은 느낌이랄까. 호주 울룰루 투어 이틀 차, 침낭을 나눠주고 안에 들어있는 모래를 털라고 하면서 인솔자는 다시 한번 손가락을 두 번 구부렸다 폈다. 사실 우리가 숙박을 위해 자리 잡은 곳은 꽤 쾌적한 곳이어서 어감과는 약간 거리가 있었다. 매점도 있고, 비를 막을 수 있는 큰 원두막과 개수대, 화장실, 샤워실 그리고 캥거루와 낙타 체험공간까지, 웬만한 야영장보다 안락한 구성이었다. 다만, 차나 사람이 만든 인공불빛이 없고 비가 자주 오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라, 침낭에 들어가서 눈만 빼꼼하게 내밀면 쏟아지는 별들을 보는 낭만이 있다는 점에서 인솔자의 은근한 ‘스웨그’ 부심이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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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배꼽이자 아웃백 레스토랑 로고에 그려진 호주 울룰루를 탐험하겠다며 신청한 3박 4일 버스 투어였다. 몇십 년은 되어 보이는 15인승 버스는 짐칸에 자리가 없어 통로에 개인 짐을 쌓아놓아야 했다. 일행이 없는 나는 마지막 남은 자리였던 뒤에서 두 번째에 앉았다. 인솔이자 운전자는 20대로 보이는 금발의 백인 여자였는데, 톤이 강한 호주식 영어 혹은 그 동네 사투리를 구사하고, 잎담배를 수시로 말아 폈으며, 커다랗게 호주 록 음악을 틀어놓고는 우측 운전대에서 액셀을 밟았다. 나는 버스의 유일한 동양 여자이면서 제일 연식이 있는 참가자 같았는데, 그게 마음에 안 드는 건지 내가 무슨 냄새라도 풍기는지 내 뒷자리 여자는 들릴 듯이 투덜대며, 발로 좌석 등을 쿵쿵 찼다. 짜증을 내볼까 했지만, 딱딱한 의자에 앉아 속이 부글부글하는 게 사실이었던 데다 버스 자체가 워낙 덜컹거려 이 충격이나 저 발길질이나 매한가지였기에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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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개 차례가 돌아왔다. 영어로 급히 지어낸 이름을 말할지, 한국식으로 소개하는 게 나을지 고민하다가 한국이름의 중간글자 ‘Eun 에운(사실은 은이지만…)’이라고 말해버렸다. 열흘 일정으로 한국에서 멜버른과 울룰루를 보러 왔다고 하자 ‘그 짧은 기간에?’라는 반응들이었다. 미국, 캐나다, 오스트리아, 독일, 아랍 등지에서 온 참가자들은 대부분 한두 달 잡고 호주를 보러 왔단다. 레깅스나 민소매 같은 비슷한 인상착의의 미국과 캐나다 참가자들의 주도하에 그 또래의 젊은이들은 급속도로 친해졌지만, 영어도 수월치 않고 이름도 부르기 어려운 동양 여자는 무리에서 약간 겉돌았다. 그래도 독일에서 온 선생님들이자 커플인 여자 둘이 친절하게 한 두 마디 말을 건네주어 아주 소외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울룰루 앞에서 독사진 정도는 부탁할 만했다. 차마 점프 샷을 찍어달라는 말은 꺼내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날 밤에 있을 캠프파이어를 위해 한 상자씩 맥주를 사 오는 이들도 있었으나, 나는 혹시 몰라 맥주 세 캔을 준비해 놓고 불피우기를 기다렸다.


기다릴 게 아니었다. 장작을 줍고, 술을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피우기도 참가자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 불에다 음식을 해서 저녁을 먹는 것까지 우리의 임무였다.

나무에 불이 쉬이 붙지 않아 오스트리아에서 온 남자가 장작을 뒤적뒤적했다.

그때였다. 작은 불덩이들이 화르르 날아 여기저기로 튀었다.

‘앗’ 소리가 나고 한 여자가 손을 붙들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손을 잡고 물가로 데려가 식혔다. 그러고 보니, 내 윗도리도 불에 데 구멍이 나 있고, 손등도 따끔따끔했다. 종일 말 한번 섞어본 적 없는 이의 팔뚝을 잡고 있다는 게 갑자기 느껴져서 슬그머니 놓고는 응급의약품을 찾아 나섰다. 어딘가에서 담배를 피우던 인솔자는 거의 텅 빈 의약품 통을 내밀었고, 그럭저럭 연고를 찾아 다친 이의 손과 내 손등에 발랐다. 자연스럽게 저녁 준비에서 열외가 되어, 나는 물끄러미 모닥불만 쳐다보았다. 인솔자는 이틀 내내 들었던 호주 록밴드의 음악을 다시 틀었다. 거기 있던 대부분 사람이 후렴을 외워서 따라 부를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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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운. 무슨 노래 좋아해?”

갑자기 오스트리아 친구가 물었다. 아까 불똥을 튀게 해서 내내 미안한 눈치였다.

“요즘은 저스틴 비버의 ‘Life is worth living’ 듣고 있어.”

“무슨 노래? 아…. 저스틴 비버?”캐나다 출신 팝계의 문제아가 드디어 생각났다는 듯 대꾸하는 그의 표정을 보며 무슨 말을 덧붙일까 고민했다.

음, 말이야. 저스틴 비버가 매번 사고만 치던 시절이 아니라 착해지고 나서, 남들 표현에 따르면 재미없어지고 나서 만든 별로 안 알려진 곡인데, 올해 늦봄부터 그러니까 수시로 낙하에 대해 떠올리고, 메모장에 남길 말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갑자기 이 노래가 와닿더라고. 이런 말은 영어로는커녕 한국말로도 입 밖으로 쉽게 나오지 않았다.

“록은 안 좋아해?” 그가 다시 물었다.

“아. 록도 좋아하지. 참. 나는 이 투어 끝나고 멜버른에 가서 P!nk 공연 볼 거야.”

“핑크? 아. 미국 가수. 근데 여기까지 왜? 한국엔 록 가수가 없어?”

뭐라고 해야 하나. 있지, 그럼. 우리나라에도 좋은 가수들이 많은데. 어쩌다 보니 하던 일도 접고, 가보고 싶었던 데나 가서, 떠돌면서라도 살아가야 할지 결정해야겠다며 여기까지 왔다고. 그래도, ‘Life is worth living’ 삶은 살아볼 만하다고 하는 노래를 들으며 꾸역꾸역 콘서트를 보러 가게 된 참이라고. 입술이 달싹거렸다.

나는 대답 대신 맥주캔을 내밀어 짠하고 부딪히고는 한 모금 입에 털어놓고 컴컴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모닥불이 밝아 별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