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차가 전파되었습니다 (1)
그곳의 가을은 한국과 닮아있었다. 다만 나무들의 키가 몇 배는 높았다. ‘더티 댄싱’이었나 ‘슬리피 할로우’ 인가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는 소문을 호텔주인은 부인하지는 않았다. 홍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은 거로 보아 딱 그 호텔은 아니었지만, 비스름한 동네였다. 물 내리는 것도 일이기 때문에 안식절에는 똥도 내리지 않는다는 극보수 유대인들이 자주 모임을 하는 지역, 뉴욕시에 사는 사람들이 단풍놀이코스로 들르는 업스테이트 뉴욕의 캣츠킬 마운틴에 위치한 호텔은 일곱 명의 형제들이 힘을 합쳐 호텔 두 동을 세우고, 한때 스키장, 스케이트장 그리고 골프장까지 운영했다고 하는 명성에 무색하게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였고, 그중 왼쪽 반을 지금의 사장이 사들여 이름을 바꾸고, 리노베이션을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호텔 복도는 닳아버린 카펫의 곰팡내와 청소 약품 냄새가 뒤섞여있고, 걸을 때마다 삐걱거렸다. 복도 양옆으로 늘어진 객실은 너른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과 자줏빛의 가구가 어우러져 고즈넉하고, 소위 클래식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막상 침대와 소파에 앉으면 엉덩이가 바닥에 닿을 만큼 푹 꺼지고, 오래된 천의 쿰쿰한 냄새가 났다. 카드로 된 객실 키는 두세 번 중 한 번은 작동하지 않아 손님들은 카운터에 수시로 바꾸러 가야 했다. 호텔 뒤편의 호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짙은 옥색빛으로 악취를 풍겼고, 예전의 골프코스였다는 언덕은 수풀이 우거져 골프공보다 동물들이 많았다.
그 호텔에서도 차로 20분 숲 속으로 들어온 곳에 내가 지내는 숙소가 있었다. 나와 함께 뉴욕에서 비영리단체 설립을 준비하던 세진이 호텔에서 일하게 되면서 출퇴근할 위치에 임시로 구한 장소였다. 주차장을 통해 들어가면 주방이 딸린 반지하가 나오고, 2층엔 모델하우스처럼 정돈된 응접실이 있었다. 생활반경인 반지하엔 세진과 내가 쓰는 침대를 제외하고 가구가 없는 거실이 있었고, 벽면의 라디에이터가 유일한 난방이었다. 사람이 없는 집을 데우는 게 쉽지 않아 패딩을 껴입고 지냈다. 지상 높이에 있는 창문까지 팔을 뻗으면, 간신히 블랙베리 핸드폰에 버라이전 통신사의 신호가 한 칸 정도 잡혔기 때문에, 전화통화는 스피커폰으로 팔을 만세를 한 채 외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가장 큰 불편함은 내겐 차가 없다는 것이었다. 뉴욕주는 한국보다 넓다는 걸 그곳에 가서야 알았다. 업스테이트 뉴욕에서 뉴욕시까지는 차로는 2시간 반, 대중교통으로는 10시간 이상이 걸렸다. 그마저 하루 몇 번 없는 버스를 타려면, 숙소에서 차로 30분을 나가야 했다. 한 대 있는 차를 가지고, 20분 거리의 호텔로 세진이 출퇴근을 하는 동안, 나는 얼마나 걸으면 사람을 만날 수 있는지 무작정 걷곤 했다. 주로 왼쪽 아니면 오른쪽으로였다. 앞쪽과 뒤쪽은 물웅덩이들이 어디에 몇 개나 있는지도 모르는 울창한 숲이 있었고, 왼쪽 길은 호텔 가는 길, 오른쪽 길은 저 먼 동네로 가는 길이었지만, 몇십 분이 지나도록 큰길이며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기 신호가 닿지 않는 지역을 한참 걷다가, 덜컥 겁이 나면 숙소로 돌아오는 게 일과였다. 미국에 왔으니 영어로 생각하고 말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세진이 말했지만, 낮 동안 아무와도 말할 일이 없는 날이 대부분이라 한국어조차 희미해져 갔다.
게다가 그곳에서 나는 할 일이 없었다. 단체의 앞날을 계획하는 게 내 일이었지만, 오로지 공상 속에서만 이뤄졌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집을 관리하거나, 보수하는 건 더더욱 내가 할 줄 아는 일이 아니었다. 주차장 겸 창고에는 공구들이 가득했고, 카펫을 청소하려면 업자를 예약해서 불러야 했으며, 숲에 둘러싼 집의 실내에는 화초조차 없었다. 나는 종종 주차장으로 나가서, 주변의 동물들을 관찰했는데 하다 하다 나중에 노루에게 말을 걸곤 했다. 주은은 노루를 만지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는데, 노루의 바이러스가 옮아서 몇몇이 신경통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노루는 말을 붙이려고 들면 빠른 속도로 달아나버려서 대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노루를 만질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곤 했다.
반강제의 수도 생활이 이어지던 무렵, 나에게 조금의 변화가 생겼다. 활동을 시작하려면 뉴욕 시내를 왔다 갔다 해야 한다는 나의 주장이 점차 힘을 받으면서, 차를 구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면허증도 없는 내가 어떻게. 별수 없이 친구 찬스를 쓰기로 했다. 때마침 새로 장만한 친구의 차를 내가 빌려 쓰기로 한 것이다. 파란색 기아 세단이었고,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모델이었다. 아반떼 보다 조금 더 작았던 것 같다. 이내 그 차는 내 집이 되었다. 나는 내 개인 짐들을 차에다 실어놓고, 뉴욕 시내로 나갈 일정들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한 달에 몇 번 그러다가 일주일에 한 번 뉴욕시를 오가면서 볼일을 보고, 시내엔 머물 곳이 없는지 알아보려 다녔다. 그리고 시내에 가지 않는 날엔 주유나 세차를 한다는 명목으로 식당과 카페가 있는 작은 마을까지 다녀오곤 했다.
가을이 나고 자란 곳과 비슷했으므로 겨울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눈이 없는 고장 출신인 나에게 그곳의 겨울은 생소했다. 사륜차에 스노타이어, 견인 고리가 필수인 지역이었다. 눈이 소복이 쌓인 날, 사람들은 일을 중단하고 제설차를 기다렸다. 제설차는 늘 있는 일처럼, 쓰레기차 등장하듯 때가 되면 나타났다.
그날도 눈이 왔다면, 나도 당연히 그렇게 제설차를 기다렸을 것이다.
나는 지나가는 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가 내리며 눈이 되어, 바닥이 얼어붙었다. 비처럼 내리는데 눈처럼 쌓여 옅게 얼어붙는 상태, 그런 걸 ‘슬릿 (아마도 Sleet)’이라고 부른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나는 차를 가지고 동네 작은 마을로 가려던 참이었다. 나름, 비가 와서 미끄러우니 조금 돌더라도 경사가 완만한 오른쪽 길을 택했다. 오른쪽 길을 한참 내려가면 옆 마을과 내가 가려는 마을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왔고, 그 아래부터 거의 완만한 각도의 코너로 이어지는 긴 내리막이 있었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내리막에서 속도를 줄이려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런데, 차가 느려지기는커녕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자기 부상열차라도 된 듯 미끄러지며 미친 듯이 하강했다. 사이드브레이크까지 올려도 소용이 없었다. 썰매 타듯 미끄러지며 코너를 지나니 눈앞의 벽이 보였다. 저기 박으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은데 하는 순간 나는 핸들을 꺾었고, 왼쪽 전봇대를 박고, 도랑으로 처박혔다.
빵. 하는 소리와 함께 타는 냄새가 났다. 얼굴이 얼얼했다.
에어백이 터지면 얼굴을 때린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손으로 얼굴을 더듬거리며 확인했다. 피가 나진 않은 것 같다. 눈코입이 제대로 있다. 그런데 앞이 안 보인다. 아. 안경이 없네. 고도근시라 안경이 없으면 가까이 있는 사람도 구별하지 못한다. 차에선 계속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왼쪽 운전석 문은 열리지 않았다. 조수석으로 넘어와서 안경을 찾아보았다. 손끝에 무언가가 잡혔다. 아 핸드폰이다. 그런데, 핸드폰 배터리가 분리되어 어디론가 날아가고 없다. 차에선 계속해서 타는 냄새가 났다, 이러다 폭발하면 어쩌지? 사지 멀쩡한 게 그나마 다행인데. 안경과 핸드폰이 문제가 아니다. 탈출해야 한다!
슬릿이 옅게 깔린 길은 사람 걸음으로도 힘들었다. 추워서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차만 믿고 옷을 제대로 안 입은 탓이었다. 하늘은 희뿌옇고, 누군가의 농장 경계인듯한 담벼락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어딘가 집이 있겠지, 사람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얼지 않기 위해 아래로, 아래로 걸었다.
얼마나 갔는지 모르겠다.
드디어 집을 발견했다. 무섭지만 문을 두드렸다.
익스큐즈 미. 플리즈. 플리즈 헬프 미.
(2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