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차가 전파되었습니다 (2)
익스큐즈 미. 플리즈. 플리즈 헬프 미.
대답이 없었다. 자세히 보니, 불빛은커녕 온기라고는 없는 건물이었다. 아무도 없나 보다.
마음이 다급했다. 나는 또 한참을 내려갔다.
긴 담벼락의 끝에 문이 있고, 안쪽에 너른 마당이 있는 곳이 나타났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입구에 있는 개가 컹컹 짖었다. 마당 안쪽에 건물이 두 채나 있었다. 그런데, 하나는 신식건물이고 하나는 마치 한옥처럼 생겼다.
뭐. 이런 곳에 한옥이 있다고. 안 보이는 눈을 찌푸려 적힌 글자를 읽어보니, 세상에 한국식 절이었다. 뉴욕에. 그것도 내가 있는 동네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저기요! 저기요! 좀 도와주세요!
한 몇백 평은 족히 되는 것 같은 마당과 건물 두 동을 뛰어다니며 나는 ‘헬프미’와 ‘도와주세요’를 번갈아 외쳤다. 내 목소리보다 더 크게 입구의 개는 쉬지 않고 뛰어대며 컹컹컹 짖어대었다. 줄이 없었으면 진작 나를 물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개가 저 정도로 짖으면 나와볼 만도 한데도. 문이 열린 건물 이 층에도 가보았지만, 누군가의 숙소처럼 보였을 뿐 사람은 없었다.
으으.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손이 얼어붙어 빨갛게 변해있었다.
다시 더 내려가 보자. 안경 탓인지 눈비나 눈물 때문인지 보이지 않는 눈가를 훔치며 나는 더 걸었다.
내려가는 길이어서 다행이다. 언젠가는 길 끝에라도 닿겠지. 추위도 오래되다 보니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초조한 마음을 넘어서 거의 포기하는 심정으로 걷고 있었다. 집이 한 채 보였다. 차로 다닐 땐 눈에 보이지도 않던 곳이다.
‘익스큐즈 미’하며 정원의 문을 슬쩍 밀었더니 열렸다. 아까보다 마당이 작은 집이었다. 몇 걸음만 가면 1층 입구 계단이었다. 그때 사방에서 개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한 대여섯 마리는 되는 중형견들이었다. 개들은 경쟁하듯 점프를 하며 왈왈왈 짖었다. 개들은 줄에 매여있지 않았다. 몇몇 개는 내 어깨만큼 뛰어올랐다.
아. 이렇게 사람은 못 만나고 개한테 물려 죽는 건가란 두려움이 스쳤을 때, 나는 갑자기 개한테 나는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개들을 쳐다보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도와줘. 눈물이 뚝뚝뚝 떨어졌다. 으엉엉엉.
난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으엉엉엉.
그때였다.
집 문이 열리며,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나왔다.
남자는 나를 쳐다보더니 개들을 조용히 시켰다.
으엉엉엉. 플리즈 헬프 미. 마이 카 브로큰 듀 투 스노우. 노 셀폰. 플리즈 콜 폴리스. 헬프 미. 어쩌고. 나는 계속해서 도와달라고. 나는 위험에 빠진 사람이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윽고 그 남자는 나를 거실로 들어오라고 하고, 코너에 앉힌 다음 경찰에 전화했다. 여자는 나에게 차를 한잔 내주었다. 여전히 낯선 인간이 해코지나 하지 않을까 반쯤은 긴장한 눈치였다. 내 몸에선 눈비에 젖은 물이 뚝뚝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콧물을 훌쩍이며 또 말했다. 원 모어 폰 콜 플리즈.
친구에게 전화했다. 자못 태연한 목소리로 ‘내가 니 차를 부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후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경찰이 왔고, 차는 견인되었다. 끝내 안경과 핸드폰은 살리지 못했다. 차도 살리지 못했다. 견인비와 수리비견적이 찻값보다 더 나왔다. 미국에선 차량 전파를 Total loss라고 한단다.
친구는 다시는 차를 빌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저녁에 돌아온 세진에게는 작은 사고가 났다고만 했다.
눈이 오는 데 운전을 했다고 얼마나 잔소리를 들었는지 모른다.
이것이 내 강력한 기억 중의 하나 첫 번째 Total loss가 있었던, 뉴욕주 Ellenville과 Wurtsboro 사이의 지명도 모르는 숲 속 집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얼마 후 두 번째 차량 전파, Total loss #2를 경험하게 된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 두 번째 Total loss 이야기도 하게 될지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