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역할도 있습니다

우성도 열성도 아닌 / 남극에서

by 세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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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세종과학기지 인근에는 펭귄이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펭귄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겨울에 떠났던 펭귄들은 초여름이 되면 하나둘 돌아와 자리를 잡고, 짝을 지어 함께 둥지를 애지중지 만든다. 그리고 1개에서 3개의 알을 낳고, 부부가 번갈아가며 부화할 때까지 알을 품는다. 생김새는 똑같지만, 암수가 구별되는데, 한쪽이 알을 품거나 새끼를 지키고 있으면, 한쪽은 바다로 가서 먹이를 먹고 오는 식이다. 펭귄의 언어로 배우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매년 먼바다에서 헤엄쳐와서 새끼를 낳고 키운 후 다시 멀리 떠나는 일은 반복된다.


펭귄마을에서 새로 태어난 새끼펭귄 개체 수를 세는 연구를 도울 기회가 있었다. 숫자를 세어보니 올해는 펭귄 개체 수가 다소 줄었다고 한다. 문득 궁금해져 펭귄 연구를 담당하는 박사님께 물었다.

“생물 배울 때 우성과 열성 이야기를 하잖아요. 어떤 펭귄이 우성이에요?”

“자연에선 살아남는 펭귄이 우성이죠.”

“그러면 어떤 펭귄이 살아남는데요? 힘이 센 펭귄? 똑똑한 펭귄? 빠른 펭귄?”

“새끼를 남긴 펭귄이 살아남은 거예요. 종족이 살아남는 거거든요.”

각각 개체의 능력치와 상관없이 종을 이어나가는 펭귄이 우성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펭귄들은 천적이 새끼를 공격하기 어려운 해변에서 떨어진 언덕에 대부분 둥지를 틀고, 짝짓기를 위해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간혹 자신의 알이 사라지면 남의 알을 훔치기도 한다. 그런데 모든 펭귄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럼 무리에서 떨어져서 해변에서 혼자 다니는 펭귄들은 왜 그런가요?”

“어떤 집단이든 꼭 저런 경우가 있어요. 짝짓기도 집 짓기도 크게 관심이 없는……. 그러면 새끼를 남기지 못하고 도태되는 거죠. 이유는 잘 모르지만, 어느 종이든 그런 개체가 꼭 있어요. ”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알 것 같다. 어쩌면 나라는 개체는 저 바닷가에서 방황하는 펭귄 같은 존재인가 보다. 어려서부터 어차피 삶의 끝이 죽는 거라면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생에 대한 치열함도 이성에 대한 흥미도 크지 않아, 스스로 생명력이라는 본능이 다소 적은 사람이 아니냐고 느낀 적도 있다. 그러면서도 반짝거리며 생명력을 뿜어내는 사람들이 부러워 따라가 보려 애쓰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냥 그런 무리가 있는 것이었다.

자연의 일부는 사라지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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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 중의 하나였다. 나란 존재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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