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 켄야 지음, 서하나 옮김
이 책은 코로나 시기에 일본의 아직 유명하지 않지만 지방의 특성을 잘 품고 있는 여행지를 저자가 직접 방문해서 찍은 영상을 1분 정도로 만들고 글을 써서 블로그 포스팅을 한 것을 모아 책으로 낸 것이라고 한다. 직관적인 제목이다.
책의 앞부분에서는 국제 관광객 증가 그래프를 보여주며 이 트렌드에 올라타서 제조업에서 탈피하여 신성장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논리를 전개해나간다.또한 일본은 관광자원인 '기후, 풍토, 문화, 음식'을 다 갖췄다고 주장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삼림면적 67%의 화산섬, 수많은 강과 온천이 있는 일본 열도가 든든한 배경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아시아의 역사부터 메이지유신까지 다소 광범위한 시공간을 훑은 다음 현대 일본으로 돌아와 ‘일본의 럭셔리’를 정의한다.
자연을 두려워하는 자세
안과 밖의 소통
현관과 바닥의 전환
안식의 형태
공간의 다의성
수직과 수평
모서리와 테두리
물과 온천
살아 있는 초목을 놓다
돌을 두다
청소
책에는 컬러 사진이 몇 장 밖에 없지만, 웹사이트에 올라와있는 사진과 영상을 함께 보면 이해를 못 해도 끄덕이고 싶다. 대부분 사람이 없이 자연과 공간만 보여주는 영상을 보고 있으면 힐링이 된다.
인상적이었던 구절들:
모서리와 테두리의 폭주 공간'이 일본식 방이다. 따라서 다다미방에 침대나 소파를 배치하는 감각이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깨달았으면 좋겠다.
(p.143)
일본에는 "찬합 구석을 이쑤시개로 후빈다."라는 관용어가 있다. 쓸데없이 세세하게 굴고 잔소리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세부에 대해 자꾸 언급하는 게 자잘한 일에까 지 간섭한다는 인상을 줄지 모른다. 하지만 찬합의 품질이 '구석' 에 있다면 그곳을 확실하게 후벼 파야 한다. 기술과의 접점에 다실의 감수성을 요구하는 것은 오늘날 그리고 미래적 공간 설계의 요점이기 때문이다.
(p.145)
분명 일본의 럭셔리 요점에는 청소가 있다. 그저 반짝반짝 닦는게 아니라 자연과 초목 등에 마음을 두면서도 살아 있는 사람 으로서 긴장감을 느끼는 것 그리고 돌이나 나무, 회반죽이나 다다미와 같은 소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연스러운 양상을 맛보고 즐기는 감각이 청소다. 그런 행위 속에 일본의 럭셔리가 깃들어 있을지 모른다.
(p.200)
청소에 대해서는 나도 경험이 있다. 도쿄 도심 한복판에 있는 어떤 미술관에 오픈 시간 직전에 방문한 적이 있다. 거기서 타일바닥으로 된 건물 입구를 관리인 아저씨께서 가냘픈 플러스마이너스제로 청소기로 꼼꼼하게 밀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다. 청소기 하면 사이클론 기술이 적용되어 굉음을 내며 전투적으로 더러움을 제거하는 이미지였는데, 준 야외 공간을 실내용 청소기가 살살 다스려도 될 만큼 이미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위의 마지막 럭셔리 요건에는 공감이 된다.
저자가 실무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만큼 위의 개념을 구현한 예시를 찾아갔던 장소에서 찾았을 뿐만 아니라 본인의 실제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설명했다. 또한 가상의 개념이라도 구체적인 브랜드 네임이나 형상까지 스케치해서 첨부한 것도 있어서 상상력을 부추기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기획이 뾰족함에 대해 공감하는 정도는 예시마다 편차가 있었지만, 향후 더 큰 일을 빌드업해 나가는 데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화법인 것 같다. 이 맥락으로 뻗어나가 기획된 로컬 호텔 브랜드와 이를 잇는 ‘반도 항공’ 노선을 통해 저공비행을 하며 다닐 수 있는 패키지가 출시된다 하여도 꽤 자연스러운 전개로 느껴진다.
코로나 기간 동안 일본에 외국인 관광객이 없었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비어있는 시간 동안 허탈해하지 않고 가진 자산을 찬찬히 돌아본다는 점에서 이런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는 건 참 알차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나는 분명 코로나 내내 재택근무를 하면서 이후의 공간은 이전과는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내심 했으면서도 별다른 아웃풋을 내지 않은 채 오로지 이 생활에 몸으로만 적응해 버렸으니 이제 와서 한탄하여 어찌하리.
작년 말부터 해외여행을 다시 갈 수 있게 된 뒤로 일본을 새삼 다시 보게 되었다. 아직 서양까지 나서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고 나니 근처 지도를 확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중소도시 직항이 대부분 사라져서 쉽게 마음먹기가 어렵지만 시간이 해결할 일이고. 단기의 제약과 궁극의 방향성을 구분해서 멀리 바라보고 움직이면 될 일이다. 아마도 이 책이 좋은 가이드가 될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