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하루키의 책은 막상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지만 에세이는 몇 권 읽어보았고, 그중에 이 오래된 책이 제일 좋았다. 이 책은 요약하면 스스로 선택한 과업에 대한 ‘태도’에 대한 것이다.
저자가 아무도 안 시켜서 선택한 직업인 소설가로서의 페이스메이커로 달리기를 선택했고, 그 달리기를 긴 시간 동안 사뭇 진지하게 이어나가는 내용이다.
‘일’과 ‘태도’라는 키워드 덕분인지 SNS 피드에서도 요즘도 자주 볼 수 있는 책이다. 까딱하면 라떼로 빠져버릴 만한 리스크가 있으면서도 기획자의 역량으로 꼽다 보면 항상 결국 마지막까지 남는 태도라는 마성의 키워드를 이렇게 모두가 만족할 수 있게 쓰다니 역시 대가의 글이다.
나는 종목을 막론하고 어떤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무조건 존경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기구나 경쟁 보다도 근성이 덕목인 분야에 더 큰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달리기, 걷기, 요가, 수영 정도가 이 범주에 속한다. 마라토너의 세계를 모르지만, 아무리 모르는 사람에게도 42.195km라는 엄청난 거리를 발로 뛰어서 무려 25회나 완주했다는 심플한 구절 만으로도 저자의 성정이 느껴졌다.
책의 말미에 [‘좋아, 이번에는 잘 달렸다' 라고 하는 느낌이 회복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앞으로도 기죽지 않고 열심히 마라톤 풀코스를 계속 달릴 것이다.] 로 시작하는 몇 문단은, 저자는 부인했지만 아름다운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가나가와 현 바닷가에서 출발하여 미국 보스턴의 찰스강에 자석처럼 이끌려 온 사람들과 개 산책러 무리들을 지나 마침내 어느 해지는 해안도로를 ‘자동 조종’ 같은 상태로 달리는 누더기 가방을 든 러너… 지난번 보다 조금의 개선이 있으면 그저 기쁘다니, 이게 바로 장거리 주자의 태도인가 싶다.
이 책을 수년만에 다시 꺼내서 읽어보았다. 그간 일 때문에 부침이 있을 때마다 아무도 시키지 않는데 내가 시간과 돈을 들여 굳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고, 그것은 ‘손으로 만들기’ 였으며 최근에는 그 존재감이 도자기처럼 보다 굳건해졌다.
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나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하루키의 ‘달리기’를 나의 ‘손으로 만들기’로 대체해도 크게 이질감이 없는 것 같았다. 뭔가를 계속 만들고 움직이게 해서 직접 쓰면서 수정해 나가는 행위는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고, 나의 주 밥벌이가 뭐가 되었든 문제 해결 과정에 있어서 나의 장단점을 멀리서 바라보며 조금이나마 객관적으로 개선해 나가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 믿어보자.
+ 이 책은 어떤 분의 추천과 선물로 알게 된 책이다. 사실 추천 해주셨을 때 바로 사서 봤지만 정말로 나중에 주셨다. 그래서 띠지까지 곱게 갖고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두었다. 오며 가며 책등을 볼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