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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치 Jun 14. 2022

오늘도 수고했어요

오늘의 인생(20220613월 17:31)

장비 점검 준비를 마치고, 이제는 편히 저녁 먹을 시간이다.


‘오늘 하루도 참 고되다.’


갑자기 화재 벨 소리가 울렸다.


“화재 출동. 서종면 명달리~”


다행히 내가 운전하는 차량은 출동에 안 잡혔다. 다행이다. ‘맛있는 저녁 먹어야지!’라고 생각할 때쯤 다시 화재 벨 소리가 들렸다.


“화재 출동. 화학차도 출동하세요.”

“아니~ 이것은 머선일인가?”


화학차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매고, 내비게이션으로 목적지를 확인했다.


“헉~ 재작년 겨울 새벽에 올라갔던 유명산 고갯길이다.”


재작년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처음 소방차를 운전했고, 그날은 추운 겨울이었다. 새벽에 화재가 발생했고, 유명산 고개를 아주 힘겹게, 그것도 손에 땀이 한 가득 차게 말이다. 당시 운전 경험이 없던 나는 유명산 고개는 보릿고개보다 더 힘들었다.


다시 그 유명산과 마주했다. 이번에는 나 혼자고, 차량은 더 커졌다. 다행히 초저녁이라 그때의 어두움보다는 한결 낫기는 하지만. 저 멀리 한화리조트 간판이 보인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고갯길이 시작된다는 표시다.


‘제발 철수하라는 무전이 들리기만을 기대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런 무전이 들리지 않았고, 내 옆에는 내게 힘을 줄 동료도 없다.


‘고갯길 올라가면 차가 커서 돌릴 때도 없는데. 에라. 모르겠다. 죽기야 하겠냐.’


25t 화학차의 액셀러레이터를 있는 힘껏 밟았다. 차량은 ‘우웅’소리와 함께 고갯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서 비상등을 켜고, 운전했다. 그런데 전과 다르게 고갯길 운전이 어렵지 않았다.


‘차가 달라서 그런가? 아니면 내 운전 실력이 늘었나?’


사이렌을 울리며 정상을 향해서 달렸다. 정상에서 현장으로 가는 내리막인 중미산 고개를 탈쯤, 무전이 들렸다.


“선착대를 제외한 전 차량 철수.”

“악~ 뭐지.”


이미 내리막 고갯길을 타기 시작했다. 전에 기억으로는 25t 큰 차가 회차할 지점이 없었다. 게다가 나를 도와줄 동료도 없다. 대략 난감이다. 미끄럼틀을 타듯 쭉쭉 내려가고 있는데, 반대쪽 차선에서 철수하는 차들이 보였다. 첫 번째는 구조대, 두 번째는 우리 팀의 펌프차.


‘다른 동료들과 함께 철수하는 소방차들을 보니 눈물이 찔끔 나왔다.'


내비게이션은 계속해서 회차하는 곳을 알려주지만 혼자 이 큰 차를 회차할 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선택의 순간이었다.


‘회차해서 다시 고갯길을 넘을 것인가? 아니면 양수리 쪽으로 크게 돌 것인가?’


‘그래 결심했어. 그냥 크게 돌아서 가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비게이션은 계속 회차할 곳을 알려주었지만 내 마음은 직진이었다. 그러나 시골길이 엄청 좁았다. 괜히 내 뒤를 쫓아오는 승용차에 미안했다. 잠시 멈춰서 비상등을 켜고, 뒤차를 먼저 보내줬다. 드디어 저 멀리 양수리와 서울 표지판이 보인다. 이제 살았다. 하지만 순간 길을 잘못 들었다. 다시 시골길이다. 내비게이션의 시간과 거리는 점점 늘어난다.


‘내 마음은 걱정으로 점점 늘어진다.’


다시 고갯길을 오르고, 황순원로를 지나고, 좁은 시골길을 지났다. 한 참을 운전해서 가다보니, 굴다리가 보였다.


'저 굴다리만 지나면 이제 끝을 볼 수 있는 것인가?'


그런데  굴다리가 생각보다 좁아서 속도를 줄였고, 굴다리를 통과했다.


“어, 양수역이네. 이 길이 옛날 길이구나.”


내가 아는 곳이 나오니 걱정으로 늘어진 마음이 기쁨으로 바뀌었다. 기쁜 마음을 두 손에 담아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 주파수는 이금희의 사랑하기 좋은 날로 맞췄다. 딱 지금 ‘만약에 우리’가 할 시간이었다. 나는 신호등에 차량을 잠깐 멈췄고, 나도 모르게 손으로 핸들을 치면서 리듬을 맞췄다.


'기쁨의 댄스인가!'


신호에 맞춰 좌회전 후 소방서로 가는 용담대교에 올랐다. 저녁 6시가 넘어 오랜만에 올라타는 용담대교다. 갑자기 자이언티가 부른 ‘양화대교’가 생각난다. ‘우리 아버지는 택시 드라이버.’ ‘우리 아버지는 소방차 드라이버.’


라디오의 사연은 사내 연애에 대한 내용이었다. 다행히 주인공 둘은 연인이 되었고, 지금은 딸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단다. 행복하겠다. 유명산 고갯길을 무사히 내려와 모르던 길을 통과해서 운전중인 나도 이 순간만큼은 라디오 사연의 주인공처럼 행복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용담대교 끝으로 저녁노을이 곱게 물들어 간다. 오늘의 라디오 사연도 곱게 물든 사연이었다. 내 마음은 유명산 고갯길의 두려움은 잊은 채 붉은 노을처럼 곱게 물들었다. 나는 곱게 물든 노을을 간직한 채 동료들이 챙겨준 도시락을 야외 벤치에 나와서 캠핑하는 기분으로 먹는다. 여전히 곱디 고운 노을은 도시락을 먹고 있는 내 옆에서 수줍게 인사를 건네며 어둠 속으로 천천히 사라진다.


오늘도 수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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