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에게 보내는 편지

by 치치

내가 어쩐지 네가 ENFP일 것 같더라. 이제 출근 준비하겠군. 가고 싶지 않지만 가야 하는 곳으로. 전에 나는 이런 생각을 했지. 출근할 때는 ‘내 뇌는 정문에 잠시 꺼내서 내려놓았다가, 퇴근할 때 다시 내 머리에 집어넣는다’라고.

나는 지금 정우의 고민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물론 회사에서 힘든 사람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서 이런 고민이 더 빨리 온 거일 수도 있겠지.

같은 기질의 입장에서 우리는 늘 열정적이었다가 금방 식고, 다시 새로운 일을 찾는 유형이지. 그게 나쁘다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 기질이니까.

생각해보면 나는 진작에 이곳이 싫었고, 그렇다고 나갈 자신은 없었고, 그렇기에 나름의 만족함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피아노, 수영, 미싱, 캘리그라피 등등을 배웠지. 이곳에서 만족함을 찾을 수 없으니까.

정말 감사한 것은 소방은 싫었지만 일하는 부서의 팀원들이 정말 좋아서, 팀원들이 좋아서 버텨온 것도 있는 것 같아.

몇 년 전에 정우를 만났다면 바로 그만두라고 했을 거야. 지금은 조금 달라. 정우가 힘들게 공부해서 입사했는데 그것도 싫어하는 사람 때문에 이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정우의 손해가 막심할 듯. 다만 정우가 생각할 때 이곳은 나와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 그만두더라도 후회가 없을 듯.

내가 입사했을 때,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선배가 없었기에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야 했고, 그게 15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듯. 내가 정우의 고민을 들어줄 선배가 된 것에 감사할 따름이지.

이 고민으로 인해 정우는 한 뼘 더 성장할 테고, 이 길이 던 저 길이든 어떤 길을 가든 정우는 잘해 낼 거라 생각돼.

그냥. 아까 산책 겸 달리기하다가 정우에게 할 말이 생각나서 이렇게 적었는데 엄청나게 길어졌다.

p.s

스트레스나 고민을 타인에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푸는 것도 방법이지만 스트레스는 그때만 해소되고, 계속 쌓일 거야. 일기 쓰거나 산책하면서 사색하다 보면 생각이 나고,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희미하지만 풀리는 길이 보일 것 같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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