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생(20230402일)
어제는 주말 근무였다. 토요일 근무자가 출동을 8번 했다기에, 오늘은 조용히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교대했다. 그러나 내 바람과 다르게, 17년 소방 생활을 하면서 처음 겪는 한 번에 다섯 건의 화재가 연이어서 발생했다. 나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운전하면서 이동했다. 세 번째 산불 현장으로 이동했고, 그곳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멀리서도 산에서 올라오는 흰 연기가 보였다. (나중에 사무실 복귀해서 전국적으로 산불이 어마어마했고, 산불 동원령이 내려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 이건 이럴 수가. 배가 고프다.’
배꼽시계는 이미 멈춘 지 오래다. 비상 소집된 직원들이 챙겨 온 빵과 우유를 먹고, 다시 현장에 투입됐다. 나는 산불을 진압하는데, 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대형 소방차를 통제하면서 멀리 떨어진 차량을 직접 살펴보고, 타 소방서에서 온 직원들 간식도 챙겨주고, 지휘관과 끊임없이 무전을 했다. 목이 아프다. 현장이 조금씩 마무리가 되어갈 때쯤에, 물을 마시러 휴식 장소로 이동했다. 그런데 처음 보는 타 센터 신입 직원이 내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 몇 달 전에 본서에서 신규 직원 교육할 때 부장님한테 인문학 강의 들었던 000입니다.”
“아. 미안해요. 제가 사실 기억이 안 나서요. 먼저 인사해 줘서 고마워요.”
힘들고, 어색할 텐데,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네온 직원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고마움에 빵을 더 챙겨줬다. 그리고 밤 8시쯤에 모든 화재가 마무리되고, 사무실에 도착했다. 오른쪽 눈이 계속 떨려온다. 정신 혼미 직전이다. 낮에 못 한 업무를 마무리하고, 샤워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내게 아는 척했던 직원에게 미안한 마음에 커피 쿠폰과 함께 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앗, 부장님 기억해주셨네요
오늘 일선에서 지휘하는 모습을 저번에 본 모습과는 사뭇 달라서 놀랐습니다ㅎㅎ
멋있으셨어요!’
내가 후배 직원에게 ‘멋있다’는 이런 문자를 받았니, 그것도 화재 현장에서 말이다. 정말 상상도 못 할 놀랄 일이다.
일에 대한 태도가 바뀐다는 것이 이런 것 아닐까. 내 일에(여전히? 표에서!로 바뀌지는 않았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 남이 알아봐 주지 않아도, 내가 모르는 누군가는 나를 멋지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 분명 나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내 모습에 나 또한 ‘사뭇 멋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진다.
‘어제 종일 운전하고, 현장에서 무전 열심히 하고, 직원들 빵 챙겨준 김종하 사뭇 멋있다.’